「독야청청」 경영의 시작인가. 외국계 대형시중은행인 제일은행이 벌써부터 국내 시중은행간 「공조」에서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자 기존 은행들은 「역차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십년간 이어져온 관치금융의 맥을 끊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30일 금융계에 따르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기업인 갑을에 대해 27일 열린 채권단회의에서 신규자금 지원 및 출자전환 등 주요안건이 제일은행 등 일부 은행의 반대로 부결됐다. 제일은행은 이날 회의에서 2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손실보전 확약을 해주기 전까지는 10억여원의 신규자금 지원을 할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텼다.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 고위관계자는 『31일 2차회의가 열릴 예정이지만 비록 이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많은 공조업무가 순탄치 않을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제일은행은 한때 주채권은행 역할을 했던 대우그룹의 워크아웃 작업에도 「비토세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우전자, 쌍용자동차 등 이미 채권단회의를 통해 신규자금 지원을 결의한 업체에 대해 10% 미만의 지원실적을 보이고 있는 것. 나라종금 사태 발발 직후 종금사 유동성 지원을 위한 은행과 종금사간 짝짓기에서도 제일은행은 「예외」로 인정됐다.
초반부터 심상찮은 제일은행의 행보에 대해 기존 시중은행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 외국은행의 몫까지 떠안는 「역차별」로 인해 국내은행의 경쟁력만 저하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제일은행의 독자적 행보는 그동안 정부 눈치보기에 익숙해진 금융기관의 체질개선에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록 당장은 공조업무에서 삐그덕거림이 많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금융계가 시장의 논리에 충실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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