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접근이 점차 일고 있는 가운데, 최근 만화평론집 두 권이 잇달아 출간돼 만화읽기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박인하의 「누가 캔디를 모함했나」(살림)와 이재현의 「만화세상을 향하여」(푸른 미디어).「누가 캔디를…」는 국내 최초로 우리나라 순정만화의 50년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한 만화비평집. 「순정만화 변호사」를 자처한 저자의 「순정만화 사면복권론」이기도 하다.
이 비평집은 순정만화를 둘러싼 온갖 소문의 벽을 걷어내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흔히 텔레비전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테리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는 경우, 「극도의 소비주의와 순정만화적 감각을 바닥에 깔고…」라는 식의 비판이 제기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순정만화를 습관처럼 대중문화 죽이기의 희생양으로 삼아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캔디 캔디」는 고아원 출신의 여주인공이 강한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임에도 작품 자체에 대한 정당한 평가 없이 모함당해 왔다는 것이다.
또 그동안 비판의 대상이 돼 온 순정만화의 9등신 인물들은 남성의 욕망과 지배를 상징하는 아이콘에 짓눌린 여성들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더불어 순정만화는 숨막히는 입시지옥 속에서 여학생들이 숨쉬고 공감할 수 있는 해방구로 기능해 왔으며 그들 독자층의 보편적 세계관을 수용하고 대변해 온 장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전제 하에서 이 책은 순정만화가 50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훑으며 순정만화의 정당한 자리찾기를 시도한다. 최초의 순정만화인 한성학의 「영원한 종」에서부터 80년대 순정만화를 정착시킨 황미나, 순정만화를 부흥시킨 김진, 신일숙, 김혜린 등을 거친다. 이어 90년대 새로운 변화의 지평에 서 있는 원수연 이강주 천계영 등까지 한시대를 풍미한 작가와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며 그 공과를 비판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만화 세상을 향하여」는 문학평론가에서 문화평론가로 또 만화평론가로 변신을 거듭해 온 저자가 지난 3~4년 동안 써 온 만화관련 글을 모은 책이다. 그의 만화평론 밑바탕에 깔린 일관된 신념은 「만화의 진정한 주인은 독자」라는 것이다. 1부에선 무게 있는 글들을 실었다. 「일본 스토리 만화의 근대성과 식민성」은 일본 근대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츠카 오사무의 데뷔작 「신 보물섬」을 검토하며 탈식민주의적 시각에서 일본 만화의 근대성과 식민성의 뿌리를 밝힌다. 「낭만적 사랑에서 합류적 사랑으로」는 만화가 이정애에 대한 작가론으로, 본격적인 작가론이 드문 상황에서 의미있는 시도다. 2부는 오세영, 이희재, 탁영호, 양영순, 윤태호 등의 작품에 관한 짧은 글들을 실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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