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좀 더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겠구나 기대했었다. 학기중 큰 아이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므로 자주 볼 기회가 없었고 작은 아이도 학교 끝나면 바로 학원에 갔다가 밤 12시나 돼야 돌아왔으므로 말이 한 가족이지 서로 얼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그런데 막상 방학이 되니 오히려 얼굴 볼 기회가 더 적어졌다.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채팅, 게임, 인터넷을 하느라 날이면 날마다 밤을 새웠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쩌다 그러겠지 했는데 이제는 아예 똑같은 생활 패턴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밤새도록 컴퓨터와 붙어있다 새벽에야 잠에 들었다. 어른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어있고 어른들이 귀가하는 저녁에는 컴퓨터에 넋을 잃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사정을 얘기하니 모두 비슷했다. 야단을 쳐서라도 자제시켜야겠다고 했더니 한결같이 놔두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었다.
앞으로는 컴퓨터를 모르면 전혀 행세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지금처럼 빠르게 발전하는 컴퓨터 산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컴퓨터로 무엇을 하든 놔두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학원에 보내 더 배우게 하라는 의견도 있었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안통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벤처산업이다 뭐다 해서 새파란 젊은이들이 코스닥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모습을 눈으로 보았으니 할 말은 없다.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을 빗대 요즘은 돈을 잘버는 사람은 젊은이들이고 나이 먹은 사람은 점점 빈곤해진다는 의미로 소익부 노익빈(少益富 老益貧)이라는 말도 있다. 컴퓨터를 이용한 새로운 사업은 젊은이 아니면 안되고 나이가 들면 따라잡을수 없는 게 현실이다.
신문 잡지는 어느덧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생소한 컴퓨터 용어로 가득차 있다. 새 천년을 이렇게 맞이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두려움이 앞선다. 전통적 가치관과 미래의 세계를 같이 생각할 때 어떻게 해야할지 혼돈스러울 뿐이다.
강신영·서울 서초구 서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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