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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방 협진' 신의학 뿌리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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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방 협진' 신의학 뿌리내려

입력
200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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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의료원 동서신장센터를 처음 찾은 환자들은 잠시 당황하게 된다. 진료실 분위기는 여느 병원과 다를 바 없지만, 흰 가운을 걸친 의사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기 때문이다. 동서신장센터는 98년 8월 국내 최초로 환자 1명을 한의사와 양의사가 함께 진료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현재 양의사인 신장내과 이태원, 소아과 조병수와 한의사인 신계 내과 두호경, 안세영교수 등 4명이 함께 진료를 담당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진단한 뒤 서로 의견을 교환, 처방을 내린다. 약도 양약과 한약을 함께 투여한다.

소아 신(腎)증후군을 예로 들어보자. 신증후군은 신장이 알부민 등의 단백질을 걸러내지 못해 단백질 등이 소변으로 빠져나오면서 인체 면역기능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질환. 양방에선 주로 스테로이드제제를 투여한다. 치료효과는 70%로 높지만, 오랫동안 사용하면 성장장애, 골다공증, 당뇨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 반면 한방치료제의 경우 부작용은 없으나 치료효과가 35%에 불과하다.

그런데 소아 신증후군 환자들에게 소량의 스테로이드제제와 황금, 백출 등 12가지 한약재로 조제한 시령탕을 함께 투여했더니 90%가 완치 또는 호전됐다고 한다. 부작용이 거의 없고 재발률도 80%에서 20%로 줄었다.

이처럼 양·한방의 장점을 결합한 협진시스템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양·한의사가 서로 불신하고 상대방의 치료능력을 무시하는 풍토가 심했으나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협진이 늘고 있다.

협진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관절염과 같은 통증질환과 암. 대표주자는 경희의료원이다. 최근 동서협진센터를 개설한 경희의료원은 신장병, 암, 척추, 관절, 통증, 다한증 등 6개 분야의 클리닉을 갖추고 본격적인 협진을 시도하고 있다.

경희의료원의 협진사례가 성공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주대, 포천중문의대 등 일부 대학병원도 앞다퉈 협진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동서한방병원, 문곡한방병원 등은 내과, 방사선과 등 양의사들을 고용해 협진을 하고 있다.

의대에서도 한의학을 이해하기 위해 관련과목을 잇따라 개설하는 추세. 연세대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한의학개론」을 의대의 정식과목으로 채택했고, 이화여대, 경북대, 계명대의대 등에서도 한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동인천길병원은 지난 해부터 만성 관절염 환자를 동국대인천한방병원 의료진과 공동 진료하고 있다. 수술장에 한의사가 동참, 침으로 통증 유발부위의 기혈을 소통시킨 다음 수술에 들어간다. 동인천길병원 정형외과 이수찬교수는 『수술만 받은 경우 환자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 60-70점 정도에 머물렀으나, 협진치료를 시작한 뒤로는 평균 20점 정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아주대병원도 최근 양·한방 전문의가 동시에 암환자를 상담하는 진료실을 열었다. 양방치료를 받는 암환자들이 원하는 경우 항암 및 면역력증진 효과가 있는 한약을 병행 투여한다. 암절제 수술 후 항암화학요법만 받는 경우에 비해 약값이 20만원 정도 더 들지만 환자 만족도는 크게 향상됐다고 한다.

이 병원 방사선과 전미선과장은 『많은 암환자들이 한약을 함께 복용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양·한방 협진의 효과를 검증한다는 차원에서 상담실을 개설했다』며 『치료효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바람직한 암치료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경희의료원 동서암센터 유기원교수는 『암 덩어리를 수술로 떼어낸 뒤 항암제와 함께 면역력을 증강하는 한약을 투여하면 통증은 물론 위장장애, 탈모와 같은 부작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재활병원장 전세일교수는 『질병에 대한 접근방법은 양·한방이 서로 다르지만 장·단점을 보완하면 획기적인 치료결과를 얻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신의학을 창출할 수 있는 훌륭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의대 서정선(생화학)교수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치료법을 적용해온 서양의학이 개인의 유전자 특성을 중시하는 치료로 바뀌게 될 것』이라며 『21세기에는 몸 전체의 저항력을 길러서 병을 낫게 하는 한방의 원리가 과학적인 분석을 토대로 하는 서양의학과 결합, 체질분류에 따른 새로운 통합의학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재학기자

hee@hk.co.kr

*[두호경교수 인터뷰] "협진은 고부가가치 의료상품"

『양·한방 협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21세기 의학은 양·한방이 만나고 대체의학이 결합되는 제3의학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최근 경희의료원 동서협진센터 초대소장에 임명된 두호경(56·사진)교수는 『양·한방 협진을 통해 암, 당뇨 등 난치병 정복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두교수는 1997년부터 경희대 한방병원장과 한의대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세계 최초로 양의사와 한의사가 함께 진료하는 신장병센터를 개설하는 등 양·한방 협진을 적극 추진해 왔다. 두교수는 『양·한방 협진의 가장 큰 장점은 치료효과는 높이고 재발과 부작용은 줄이는 데 있다』며 『이질적인 두 의학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해 환자가 편안하고 경제적으로 진료받을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치료약물 연구, 제3의학적 관점에서의 진단 및 치료법 개발에 적극 투자할 계획』이라며 『동서협진을 통한 신의료기법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할만한 고부가가치 의료상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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