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는 없어요. 그냥 「보는 재미」죠』 정년 퇴임 기념 공연을 준비중인 김우옥(66)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원장의 말에는 장난끼마저 묻어 있다.「겹기괴담(Double Gothic)」. 별다른 줄거리는 없다. 무대에 남는 것은 이미지와 구조뿐. 기이한 무대 장치. 괴기담이 갖고 있는 공포의 요소들이 최대한 변용된다. 거리감, 시각차에 의해 상황들이 멀어졌다 가까와졌다, 중첩되거나 분산된다.
어떤 여자가 차를 몰고 밤길을 가다 고장 나, 하룻밤 묵기 위해 외딴 집에 몸을 맡긴다. 휠체어 신세의 주인과 벙어리 하인은 그녀를 집안으로 들게 한다. 그녀가 여러 방을 드나들며 겪는 일이다. 1.2㎙ 간격으로 서 있는 5개의 막이 무대를 거실, 침실, 주인의 방 등으로 분할한다. 6명의 배우들이 1시간 40분 동안 공간 사이를 오가면서 극장을 공포로 물들여 간다.
한 가운데 설치된 무대를 좌우 각각 50명의 관객들은 6㎙ 4㎙의 공간을 통해 본다. 좌석 배치 구조를 완전히 뜯어 고쳤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개관 이래 가장 큰 이변이다. 관객들이 무대 앞이 아니라, 무대 옆으로 관람하는 것.
78년 실험극의 대명사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마이클 커비가 발표했던 작품이다. 당시 뉴욕대 연극과 수학중 그 공연을 본 김씨는 82년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국내 초연, 충격을 던졌다. 그러나 미숙했던 무대였다. 작품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그는 92년 뉴욕에 가 무대막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무대 장치전문점에서 20 야드의 그물 스크린을 사 왔다. 학교일 등으로 그늘에 썩혀 두다, 이번에 비로소 무대에 올렸다.
이런 걸 왜? 『관객에게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고 싶어서죠. 일상과는 물론, 여타 공연장과는 절대 다른 체험을』 극장이라고 와 보니, TV나 딴 연극판에서 했던 것을 또 보게 되는 관객들이 얼마나 딱하냐는 말이다. 그같은 「연극성」의 현재 도달점이 이 구조주의 연극이다. 관객에게 특별한 체험을 조직적으로 경험하게 하자는 것이다. 의미 해석의 문제는 관객의 몫.
미국서 연극 공부하고 돌아 온 80년 직후 계속되고 있는 실험극 작업의 현재다. 또 다른 축은 청소년 연극. 85년 동랑 청소년 극단을 만든 후 계속되고 있다. 「방황하는 별들」 「꿈꾸는 별들」 등 결손 가정, 조기 유학 등 당시 떠오른 청소년 문제들을 발빠르게 연극화한 것들이다. 지금까지 다섯 편을 헤아리는 「별」 시리즈에 다섯편을 더 보태 모두 열 편으로 채우겠다며 의욕에 넘쳐 있다. 『「랩하는 별들」이 나올지도 모르죠』
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정년을 채우고 2월 29일 퇴임한다. 그러나 학교일을 벗어 버렸다고 연극에서 놓여 난 것도 아니다. 아직도 국제 아동 청소년 연극협회(ASSITEJ) 세계 본부 부회장이고, 한국 본부 이사장이다. 세계 본부 일은 91년부터, 한국 본부 일은 86년부터 맡아 오고 있다. 딸 지영(27)은 연극 배우로 베를린에서 공연중, 아들 진표(23)는 그룹 「패닉」의 래퍼.
「겹기괴담」은 27-30일 오후 4시, 7시 30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02)958-2696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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