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4일 마련한 기업구매자금 대출제도 방안은 새로운 상거래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해묵은 과제인 어음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현금지급방식을 전제로 한 구매자금카드 도입이 확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어음거래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음망령 없앤다
지난해 7월 대우사태가 터지면서 전국 어음부도율은 급상승곡선을 그었다. 대우사태에 따른 연쇄부도 소용돌이에 휘말려 애꿎은 중소 하청업체들이 줄줄이 간판을 내려야했다. 대기업과 중소업체간 대금지급 방식이 어음의 「족쇄」로 엮어있는 우리 상거래 구조상 필연적인 공멸의 수순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말 상업어음 취급 잔액은 17조원에 이른다. 어음관행이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 결제혁명 시작되나
기업구매자금 대출제도는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 물건값을 곧바로 현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 납품업체가 물품납품 후 환어음을 발행, 거래은행에 추심을 의뢰하면 구매기업은 거래은행을 통해 자기 대출로 구매대금을 납품업체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환어음을 발행하면 물품대금의 조기 회수가 가능한데다 지급청구서 형식의 환어음이 유통되지 않는다는 점때문에 약속어음과는 달리 연쇄부도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최근 대기업과 시중은행간 구매카드를 이용한 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구매카드 결제는 물품을 구입하는 기업이 납품처에 대금을 카드로 계산하면 납품기업은 은행에 카드 전표를 제시하고 돈을 찾는 방식. 최근 LG계열사와 한빛·하나은행 간 업무제휴를 시작으로 은행·카드사 등 금융사들이 기업구매카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 관건은 대기업의 참여
기업구매자금 대출제도 도입의 성패는 어음관행에 젖어있는 대기업(구매기업)의 적극적인 참여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납품업체로서는 대금을 조기 회수하는 이점이 있지만 구매기업에는 그만큼 자금부담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구매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금융, 세제상의 보완대책이 긴요하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금융기관에 3% 저리로 빌려주는 총액한도 자금 지원대상에 기업구매 자금 취급실적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구상중이다. 구매자금 결제에 따른 대기업의 여신한도 확대와 세제상 인센티브 부여 등 유인책도 검토하고 있다.
한은은 이와함께 어음발행요건을 크게 강화, 신용이 취약하거나 경영상태가 부실한 기업의 어음남발을 원천 봉쇄할 계획이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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