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금기없는 실명비판강준만(44·전북대 교수)씨는 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물론 대체로 긍정적 맥락에서 그렇다. 그는 95년에 낸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을 통해서 은퇴한 노정치인을 정치적 담론의 한 가운데로 끌어냈다.
그는 언젠가부터 한 달에 한 권꼴로 쓰는 초인적 집필 노동으로 세밑이면 어김없이 그 해의 최다 집필가로 꼽혔다.
현학적 수사를 최대로 자제한 그의 대중적 문체는 그 경쾌한 속도감과 유리알 같은 명료함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열광시켰다.
그가 97년 초에 「인물과 사상」이라는 일인 무크(강준만씨의 표현을 빌면 「저널룩」)를 창간했을 때, 사람들은 과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무크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13호가 나왔다.
더 놀라운 일은 그 이듬해 봄에 일어났다. 얼추 계간 주기로 나오던 「인물과 사상」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는지, 강준만씨는 그 무크와는 별도로 「월간 인물과 사상」을 내기로 했다.
그것은 출판 활동으로 저널리즘에 맞서겠다는, 더 정확하게는 출판을 저널리즘화하겠다는 그의 의욕과 결심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는 무크 「인물과 사상」을 내던 개마고원에 「월간 인물과 사상」을 낼 의향을 물었으나 출판사가 난색을 표하자, 아예 자신이 인물과 사상사라는 출판사를 차렸다.
98년 4월호로 창간 준비호가 나오고 5월호로 창간된 「월간 인물과 사상」은 지금까지 별 탈 없이_그러니까 놀랍게도 결호 없이_나오고 있다. 창간호의 독자는 702명이었지만, 지금은 독자가 1만명을 오르내린다.
「인물과 사상」과 「월간 인물과 사상」은 그 나오는 주기를 빼고는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사람이 같은 아이디어로 주관하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다만, 「인물과 사상」은 듬성듬성 외부 필자들의 글이 들어가도 아직은 강준만씨 개인의 일인 잡지라는 성격이 매우 짙은 데 비해서, 「월간 인물과 사상」은 독자들과 외부 필자들에게 넓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이 창간 준비호에서 밝힌 이 잡지의 3대 목표는 언론의 위선과 월권 비판, 모든 종류의 부당한 차별에 대한 투쟁, 성역과 금기가 없는 실명 비판의 문화 정착이다.
「월간 인물과 사상」은 그 동안 이 목표를 위해 열정적으로, 흔들림 없이 싸워 왔다. 싸움의 형태는 물론 비판이다.
그리고 이 잡지가 수행하는 비판의 화살은 주로 조선일보를 향해 겨누어졌다. 실상 강준만씨는 언론에 휘둘리고 기생하는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꼿꼿이 고개를 쳐들고 거대 언론에 싸움을 건 첫번째 사람이다.
그는 또 한국 사회의 문제는 곧 언론의 문제고, 한국 언론의 문제는 곧 조선일보 문제라는 것을 처음으로 공론화한 사람이기도 하다.
「월간 인물과 사상」의 조선일보 비판은 강준만씨만이 아니라, 외부 필자나 독자들도 제각기의 몫을 나누고 있다. 예컨대 이 잡지의 고정 필자인 홍세화씨가 지난해 10월호에 기고한 「한국의 지식인에게」라는 글도 그렇다.
「극우 조선일보의 진지전과 한국의 지식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글에서 홍씨는 한국 사회의 가장 커다란 문제를 극우 헤게모니로 요약하고, 한국에서 극우 헤게모니의 문제는 곧 조선일보의 문제라고 부연한 뒤에 조선일보와의 싸움을 선언했다.
성역 없는 실명 비판은 비판받는 측의 역습도 초래했다. 「월간 인물과 사상」과 강준만씨는 지난 해에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로부터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고, 1심에서 패소한 상태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에 대한 조선일보사의 「사상 검증」 사건 이후 강준만씨가 「월간 인물과 사상」 98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한우 기자를 『모교의 존경받는 교수의 등에 칼을 꽂는 비정한 청부업자』라고 표현한 것이 그 발단이 되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의 재정적 버팀목은 참여자들의 헌신적 「무급 노동」이다. 이 잡지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고료가 없다. 강준만씨 역시 마찬가지다.
군살을 최소화함으로써 그 가벼운 몸 안에 최대의 기동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홍세화씨의 말처럼 한국 사회에 극우 헤게모니가 관철되고 있다면, 이 잡지의 갈 길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정이 적적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불공정과 소외와 차별이 남아 있는 한, 수많은 길동무들이 기꺼이 손을 건네며 동행을 청할 테니 말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창간사」에서
『신문들이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정치적 편향성을 밝힌다면 그 신문이 전국적으로 많이 팔리겠습니까? 그래서 신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정치적 중립과 불편부당을 주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일부 신문들은 겉으로는 그렇게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특정 정치 세력을 후원하면서 「대통령 만들기」를 시도하는, 매우 교묘한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문들의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바로 우리 사회 지식인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대중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그런 이중적인 문화를 바꿔 보자는 겁니다… 이 잡지가 아무리 초라하고 문제가 많다 해도 이 잡지는 그 누구에게나 반론권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만큼은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투명하고 열린 잡지」, 그것이 바로 「월간 인물과 사상」의 기본 정신입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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