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씨는 골프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도 골프공포에 싸여 있다. 골프보다는 공포를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그는 골프약속을 해놓고는 흥분에 들떠 골프장의 온갖 장애물들을 머리 속에 떠올린다. 골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OB말뚝을 숨긴 러프와 턱이 높은 벙커, 워터해저드, 빠른 그린 등을 그려본다. 하지도 않은 OB샷과 트리플보기, 3 퍼트 등을 상상하며 겁에 질린다.
골프장에 도착해서는 정도가 더 심해진다. 첫 홀 티잉그라운드에 서면 얼굴은 상기되고 심호흡을 자주 한다. 러프와 벙커, OB지역을 피하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덫에 걸리고 만다. 그에겐 쉬운 홀이란 없다. 18홀을 끝내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다. 대신 이런 공포감 속에서도 장애물을 잘 피해 용케 파나 버디를 건지면 그가 느끼는 즐거움은 짜릿하기 그지없다. 아마도 그는 온갖 장애물을 헤쳐나가는 데서 골프의 묘미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P씨의 경우는 극단적인 예이지만 많은 골퍼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골프에 대한 공포감을 갖고 있다. 이런 공포감을 극복했을 때 골프의 묘미와 쾌감을 더해주기도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공포의 포로가 되기 쉽다.
미국의 한 의사는 훅이나 슬라이스, 짧은 퍼팅 미스 등 반복되는 실수가 단순한 육체적 부적절성 때문이 아니라 공포에 가까운 마음의 복작한 반사작용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의학용어로 「신경성 경련(The Yips)」이라는 증세로, 배우의 무대공포증, 학생들의 시험공포증, 잠수부의 잠수공포증과 비슷한 것이다.
어느 날 나스루딘의 당나귀가 없어졌다. 이웃이 모두 나서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하나도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군요. 혹시 당나귀가 결코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나스루딘이 말했다. 『저쪽 언덕이 보이지요? 아직 아무도 그 곳을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저기에서도 당나귀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때부터 걱정하기 시작하겠소』(오쇼 라즈니쉬의 이슬람 유머모음집 「지혜로운 자의 농담」중에서)
여기서 나스루딘은 정말 걱정할 때까지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땅이 꺼지지 않을까,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한 중국 주(周)나라 기라는 사람의 걱정(기우·杞憂)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걱정이란 닥치고 나서 해도 결코 늦지 않다.
방민준 편집국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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