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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시청률 때문에 휴머니티를 포기할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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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시청률 때문에 휴머니티를 포기할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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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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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작가 이금림(드라마 '은실이')& 김정수(드라마 '파도')TV를 켜면 하루에도 10여 편 이상의 드라마가 방영된다. 공감하면서 때로는 욕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박장대소하면서 사람들은 TV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 한 편이 사회 분위기는 물론 소비 패턴과 유행을 바꾸고 사람들의 정서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인기 드라마를 쓰는 작가는, 탤런트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 누구 못지않은 「문화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문화 화두의 정점에 있는 영상시대를 맞아 봇물처럼 쏟아지는 방송사 드라마들. 소비와 불륜, 그리고 갈등을 조장하는 드라마가 주요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휴머니즘과 삶의 진정성을 담보한 드라마는 보기 힘들다.

지난해 「은실이」와 「파도」라는 드라마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꿈, 그리고 감동을 주었던 50대 초반의 작가 이금림과 김정수 두 사람이 만났다. _두 사람은 소위 「잘 나가는」 작가다. 두 사람이 쓴 드라마가 지난해 안방 시청자를 웃고 울렸다. 자신들의 드라마를 보고 사람들이 일희일비하는데 대한 생각은? 자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이금림=젊었을 때는 시청자의 관심 유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요즘은 시청률로 성공여부와 방송사의 손익이 매겨지기 때문에 인기도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가 나에게는 중요하다.

드라마에 성폭행 장면이 나간 뒤 지나가는 여자를 범하고 드라마를 흉내냈다는 청소년의 말을 듣고 드라마가 사람들의 세계관과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이제는 극본 쓰는 일이 무섭기까지 하다.

김정수=똑같은 생각이다. 요즘 극본을 쓰는 시간보다 지우는 시간이 많다. 드라마가 칼이나 망치보다 더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드라마가 방송되는 순간 가끔 아파트 베란다에서 앞 아파트 단지의 거실을 바라보곤 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내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것을 거실 불빛으로 감지하게 될 때 두렵기까지 하다.

_우리나라는 드라마 왕국이다. 특히 주부들이 생산적인 활동보다는 TV 앞에 앉아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낭비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금림=이웃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민족 기질 때문에 드라마를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주부들이 마땅히 여가 선용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시설,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는 상황에서 드라마가 자녀교육, 세대간 이해 등 유익한 정보와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낭비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드라마는 특수한 상황이나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데 사람들이 극중 상황을 일반화해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다.

김정수=드라마에서 애인이 있는 유부녀를 그리면 주부들 대다수가 『아!많은 사람들이 애인이 있구나』라면서 이것을 일반화하고 기정사실화한다. 그리고 자신이 애인이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표하는 일부 주부들을 보면서 걱정이 앞선다. 정말로 애인을 두고 있는 유부녀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주부들이 드라마를 통해 인생 상담도 받고 현재의 어려움에 대한 위로도 받는 것은 드라마의 긍정적인 효과로 평가해주어야 한다.

_드라마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은실이」 나 「파도」 등 가족 중심의 홈드라마를 유독 고집하는 이유는?

이금림=일부에서는 가족 드라마는 낡았다고 생각한다. 또 젊은 작가들은 싫어하는 장르다. 연출가나 일부 작가들은 나를 「노땅」 이라고 자주 놀려먹는다. 나는 갈등조장적이고 감각적인 트렌디 드라마에 동조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 드라마를 쓴다. 드라마는 뭐니뭐니해도 휴머니티가 있어야 한다. 인간의 따뜻한 사랑을 담을 수 있는 가족 드라마로 많은 시청자들이 위안을 받고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고 느끼지 않는가.

김정수=나는 가족밖에 모르기 때문에 가족 드라마만 쓴다. 한 나라의 정치수준은 유권자 수준이라는 말이 있듯이 드라마 수준은 시청자의 수준과 맞물려 간다. 자극적이고 표피적인 드라마를 봐주니 그런 드라마가 양산된 것 같다.

처음 「파도」가 반응이 없었을 때 중견 작가들끼리 모여 이제 우리들은 작가 생활을 폐업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나눈 적이 있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격려해주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인간냄새 나는 드라마를 쓰자고 내 스스로 각오를 다진다. 문화는 다양해야 발전할 수 있다. 드라마를 비롯한 TV프로그램이 너무 10~20대 위주로 흐른다. 이 원인 중 하나가 시청률 지상주의다.

이금림=300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시청률에 방송사가 목숨을 걸어야 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시청률이 10%만 나와도 몇백만이 본다는 이야기인데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작품성있고 건강한 메시지를 주는 드라마여도 시청률이 10%에 그치면 방송중단 위기에 몰린다.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드라마 작가 중 일부가 표절, 도용 등 무리한 수를 쓰게 된다.

방송사는 시청자들이 청소년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년층 장년층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장년층 시청자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문화적 흡인력을 갖춰야 방송사도 무서워한다.

김정수=이선생과 달리 나는 시청률에 신경 쓰는 작가다(웃음). 죽을 고생해서 쓰는데 많은 사람들이 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청률이 저조하면 방송사 대책회의(공식명칭은 아니지만 작가들이 통칭해 부름)가 즉각 열린다. 이것 저것 주문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한다. 이렇게 되면 작가는 당초 생각했던 작품 방향을 잃게 되고 엉터리 드라마로 전락하게 된다.

_통합방송법 통과로 방송환경이 크게 변하게 될 전망이다. 드라마는 현재보다 더 많이 제작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드라마의 문제점과 환경은?

이금림=가장 큰 문제는 인기 연예인에게만 의존하는 스타 시스템이다. 연기를 못해도 얼굴만 예쁘고 인기만 있으면 엄청난 출연료를 주고 드라마에 출연시킨다. 연출과 대본보다는 스타 연기자 잡기에 혈안이 돼 드라마의 질이 향상되지 않는다.

김정수=나 역시 동감한다. 그리고 졸속으로 제작되는 방송 환경도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사전 제작은 못하더라도 작가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방송 직전 대본을 넘길 정도로 여유없이 작업한다. 배우들이 조각대본(완성된 대본이 아니라 일부만 나온 대본)으로 연습을 하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대본이 방송 직전에 출고돼 연습조차 못하고 녹화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런 드라마의 질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_요즘 미혼여성 뿐만 아니라 기혼여성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직업이 드라마작가라는데?

이금림=우선 영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또 집안 일을 하면서 극본작업도 할 수 있고 고수익이라는 잘못된 편견도 큰 작용을 한다. 나의 두 아들은 세월이 키웠으며 어렸을 때 놀이라고는 극본 쓰다가 버린 파지로 만든 딱지치기밖에 없었다. 가사를 하면서 극본 쓸 생각은 정말 사치다. 목숨 걸고 하지 않으려면 작가 생활을 안하는 것이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좋다.

김정수=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딸이 다른 일은 다해도 드라마 작가는 않겠다고 했다. 두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나가 놀아』 『조용히 해』라는 것이었다고 말할 때는 가슴이 아팠다. 남편이 이해하지 않으면 이혼을 당해도 수십번 당했을 것이다.

_인기작가인 만큼 고수입으로 알려져 있는데, 얼마나 버나.

이금림·김정수=많이 번다(웃음). 그러나 우리를 일반화하면 안된다. 우리는 작가 중 0.1%에 속하는 고소득 작가다. 구체적으로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5~8개월 정도 방송되는 드라마 한 편을 집필하면 수억원을 받는다.

_두 사람은 이제 50이 넘었다. 요즘 「아줌마」들의 활동이 화두이기도 한데 아줌마에 대한 평소의 생각은?

이금림=아줌마란 용어에 경멸이 포함돼 있어 나 자신도 아줌마라고 부르면 무시당하는 느낌이다. 잘못된 편견으로 소비지향적이고 낭비적인 존재로 전락했는데 아줌마 문화를 형성해 인식을 높여야 한다. 일본을 6개월 정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환경운동 소비자운동 등 자원봉사 활동으로 아줌마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

김정수=염치없는 뻔뻔스러움과 이중적 가치관에서 초래된 아줌마의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인간성 좋고 성실한 남자가 사윗감으로 적격이라고 말만 하지 막상 고를 때는 돈 잘 벌고 지위가 높은 사람을 고집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런 이미지 말고 아줌마는 적극적이며 강한 생활력을 가진 우리의 엄마들이기도 하다. 나를 포함한 아줌마들의 에너지를 선용하는 기회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면 폭발적인 힘으로 사회가 개선될 것이다.

■ 이금림(李錦林)…드라마 '은실이' 작가

1948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전주여고를 거쳐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0년부터 10년간 인천 인성여고와 서울 명성여고 등에서 국어 교사를 한 뒤 1980년 KBS 단막극 「소리나팔」로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호랑이 선생님」 「고교생 일기」 「일출」 「옛날의 금잔디」 「당신이 그리워질 때」 등 교육과 가족 관련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높은 호응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녀의 성장을 건강하게 그린 「은실이」로 사랑을 받았다. 1995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드라마 극본상, 1999년 한국방송대상 등을 수상했다.

■ 김정수(金貞秀)…드라마 '파도' 작가

1949년 전남 여수에서 출생했다. 여수여고를 거쳐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9년 MBC 개국 10주년 극본공모에 당선돼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청소년 드라마 「제 3교실」 로 드라마 작가로서 명성을 쌓았고 오늘의 그를 만든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 를 12년 동안 500회를 집필했다. 「엄마의 바다」 「그대 그리고 나」 「자반 고등어」 등 인기 드라마의 극본을 썼다. 지난해에 생명력 있는 어머니상과 중년들의 맑은 사랑을 그린 「파도」 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1983년과 1998년 각각 한국 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진행·정리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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