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논술주제] 1월29일자 주제· 2월12일자 주제·입선자명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논술주제] 1월29일자 주제· 2월12일자 주제·입선자명단

입력
2000.01.22 00:00
0 0

(문제) 아래의 글은 영국철학자 카알 포퍼가 전체주의를 비판코자 사회철학적 내지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쓴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사상은 오늘날 산업화 및 정보화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비인간화의 현상을 반성하는 데에도 좋은 디딤돌을 제공한다고 생각된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밝혀 보고, 이러한 이른바 「비인간화」의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인지 그 방도에 대해 논술해 보시오.(제시문) 열린사회는 이와 반대로 유기체적인 특성이란 없는 추상적인 사회이다. 이 사회는 인간 상호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거의 없는 비인격적 사회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열린사회에서는 친밀한 인간적 접촉을 거의 갖지 않거나 익명과 고립 속에서, 그리고 그 결과 불행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사회는 비록 추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추상적 사회에서는 만족할 수 없는사회적 욕구를 갖고 있다. 닫힌사회에서 열린사회로의 이행이란 분명히 인류가 겪은 가장 심원한 혁명 중의 하나이다. 닫힌사회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이 이행은 참으로 철저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서구문화가 그리스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아야 한다.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중에서)

■ 2월12일자

(문제) 아래 소개되는 서정주의 시 「화사(花蛇)」를 읽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를 이미지 중심으로 논술하라.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무러 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석유(石油) 먹은듯…석유 먹은듯… 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 슴여라! 베암.

우리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숨여라! 베암.

■ 입선자 명단(5명)

대영고= 김경아 시지고= 정민혁 서령고= 강민구 여천고= 송동한 대원외고= 김지훈

-원고마감은 매주 월요일. 우편: 110-792 서울 종로구 중학동 14 한국일보 사회부 논술담당자앞 전화: (02)724_2313~8 팩스: (02)739_0266

*[논술강평] 김영민 연세대교수

논술 준비를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논술 준비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자료를 읽어 지식의 양, 정보의 양을 충분히 갖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을 갖추기 위해서 어떤 자료들을 읽어야 할까? 무작정 읽기보다는, 문학·과학·철학 등 중요한 지식의 영역을 몇 가지 정해 체계적으로 정리해 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식의 영역으로 나누어 접근하는 것이 어렵다면, 주제별 영역으로 나누어 접근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예를 들면, 환경보존과 개발의 문제, 정보화 사회와 개인보호 문제, 남녀평등과 성역할의 문제, 성장과 분배의 문제 등 자주 거론되는 문제를 하나하나 정리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의 영역 혹은 주제별 영역으로 접근해가다보면, 결국은 기본적인 문제 해결의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출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준비해도, 그동안 전혀 다루어보지 못한 문제가 출제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이번 입시에서 각 대학의 출제 경향을 보더라도 이런 질문은 생겨날 수 있다. 어떤 대학의 경우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익숙한 논제가 출제되었지만, 또 어떤 대학의 경우는 그 주제가 너무 커서 무엇을 답으로 요구하는지 쉽게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도 전혀 당황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주제가 크면 클수록, 그래서 요구하는 답이 선명해 보이지 않을수록, 많은 자료를 읽고 오래 준비한 수험생에게 결과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모든 논술 답안은 결국은 그동안 자신이 읽은 자료들과, 쌓아온 판단력, 그리고 연습의 결과 마련된 표현의 능력에 토대를 두고 작성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논술은 오래 준비한 만큼, 그리고 충분히 연습한 만큼 실전테스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이번주 논제는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삶』이다. 이 논제를 조선 초기 문장가 권근의 수필 「주옹설」에 토대를 두고 풀어가야 한다. 「주옹설」에는 뱃사람 노인의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비유적으로 담겨있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주관적 삶의 자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번주 논제와 같은 경우를, 범주가 큰 논제라 할 수 있다.

이번주 최우수작으로는 김선호(포항제철고)의 글을, 우수작으로는 정기원(서령고)과 안진숙(서천여고)의 글을 뽑는다. 김선호는 논지가 선명한 간결한 문장과 적절한 구성을 통해 논제를 잘 다루었다. 제시문인 「주옹설」을 활용해 논지를 전개한 것 역시 바람직한 방식이다. 제시문은 답안 작성 과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시문을 잘 활용하는 것이 논술 답안 작성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주옹설」에서 출발해, 오늘날 현대사회의 문제로 논제를 끌어간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정기원과 안진숙도 각각 개성적 내용으로 논제를 잘 이끌어 갔다. 정기원의 경우는, 글쓴이가 주장하는 바를 단계를 밟아 매우 자연스럽게 펼쳤다. 안진숙의 경우도 적절한 문단 나누기를 통해 논지를 뚜렷이 드러냈다. 단, 정기원과 안진숙의 경우는 제시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점이 아쉽다.

*[논술당선작]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삶이란

■최우수 김선호

사회는 인류가 이루어낸 거대한 조직체계이다. 사회에 참여한 사람은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다. 그리고 그 의견을 여론화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허위사회를 조직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어내면서부터 나타났다. 개인은 그 사회에서 도피해야하거나 참여하기를 강요받았다. 참여한 사람은 사회의 의견에 따라야했고, 독자적인 의견은 사회로부터 배격당했다. 「주옹설」에서의 노인은 그러한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어느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삶을 강조했다. 이것은 궁극적인 조화를 이루고 개인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노인을 「회색분자」라며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념을 앞세워 민족의 분단을 초래한 6.25를 돌이켜 볼 때, 노인의 생각은 설득력을 가진다. 김 구는 남북협상에서 서로의 입장을 수용하고 민족이라는 보다 큰 사회 아래에서 서로를 이해하자고 했다. 올바른 자신의 주관이란 바로 이렇게 중심을 잡을때 생긴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중심을 잡는 것이 어렵다. 보다 고도화된 사회는 사회에 참여하지 않은 자를 고립시키고 도태시키기 때문이다. TV같은 대중매체가 보급되면서 개인은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기 보다는 대중의 생각으로 획일화되었다. 그래서 마치 컴퓨터가 0과 1만을 인식하는 것처럼 인간들은 우리와 그들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의 주관을 따르기가 어렵다.

이럴때 주관을 가지기 위해 균형을 잡아야한다는 주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리고 그것은 중심이 되는 원칙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이를 기준으로해서, 중용을 지킨다는 굳은 주관에 따르는 삶이 더욱 요구된다.

전세계는 이제 제3의 길을 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종래의 편가르기식의 태도는 악영향을 줄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제3의 길은 서로 이해하는 중도적 태도가 전제되야 한다. 그럴때 노인이 말한 것처럼 사회는 평온하고 인간들은 안전한 삶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우수1 정기원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있다. 현대인의 삶을 단적으로 정의한 말이다. 집단과는 유기적 관계로 맺어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외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사회라는 물결에 휩쓸려가다 보면 어느덧 개인의 줏대를 잃어버리고 그만 종속적인 삶을 살게된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자기의 주관대로 소신을 지켜가며 사는 삶이 가장 이상적이다. 철퇴를 맞으면서도 단심가를 불렀던 정몽주. 사대부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릎쓰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동아시아 삼국에서 성서로 추앙받는 「동의보감」을 집필한 허준. 일생을 바쳐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고산자 김정호 등의 삶은 자기의 주관을 끝까지 지킨 몇 안되는 성공적인 삶들이다. 그러나 때론 자기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하기까지 한다. 조선조의 사육신들의 삶이 그러했고 수많은 혁명에서 피를 흘리며 자기의 주관을 지켜낸 이름 없는 민초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처럼 자기의 주관대로 흔들림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지난한 고통을 수반함은 물론 목숨을 바쳐야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과 안락함을 추구하려는 이기적 성향 때문에 자신의 소신을 굽히고 몰개성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란 참으로 어렵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학력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자기를 완성하기란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가끔 매스컴을 통해 이런 성공적인 사례들이 발표되기도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단일화되고 폐쇄적인 조직 속에서의 일탈은 곧 도태와 집단 따돌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어떤 조직 속에서 개성 있게 행동하거나 두각을 나타내면 미움을 받는다는 말이다. 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있다. 자기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 땅을 샀는데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어째서 배가 아플까? 이 말은 우리 민족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의 의식 속에는 남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이런 편협한 마음은 남의 개성과 능력을 인정하고 이끌어주려는 아량을 약화시킨다. 나와 다른 모습,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능력을 포용하지 못하는 옹졸함을 보이는 것이다.

결국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각자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선 부단한 자기 계발과 정진이 필요하다. 또한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강한 희생 정신이 요구된다. 아울러 지도층을 포함한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의식 변화도 함께 수반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우수2 안진숙

일제 강점기에 쓰여진 저항시는 어느 한 대상에 대한 염원과 희망, 기다림을 주제로 하는 것이 많다. 이육사의 「청포도」, 한용운의 「님의 침묵」 등이 대표적인 시라 하겠다. 그들이 시 속에서 기다리던 그 님은 아마도 조국 광복에의 강한 신념과 용기를 가진 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이 노래한 그 님들은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며 조국을 위해 싸웠고, 지금 우리는 그들이 성취해낸 광복의 뒷길에 서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처럼 목숨을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유사 이래로 자신의 중심을 가지고 절개를 지키며 살다간 이들에게는 항상 그 주변에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 투사들에게도, 역사를 남기기 위해 갖은 치욕을 견딘 사마천에게도, 그리고 중심을 지키며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더욱이 정보의 공유성과 개방성이 강조되는 현시대에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며 살기란 더 힘든 일일 것이다. 그들의 신념이 간섭받을 가능성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대중 사회의 여러 특질들 또한 우리가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사는 데 걸림돌이 된다. 첫째, 유행을 추구하는 대중들은 그들 속에 약간이라도 이질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이가 있을 때, 가차없이 그를 도태시킨다.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된 집단 따돌림 현상이 이것을 말해준다. 둘째, 대중 사회의 익명성 또한 우리가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삶이란 진실됨이 바탕이 되어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실천될 때 더욱 그 가치를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위대하고,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자신의 중심을 바로 세우고 그것을 지키며 살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의 삶에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들이 이들처럼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첫째로 자신의 자아 실현을 위해 필수적이며, 둘째로 그 바른 중심이 바탕이 되어 인류가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송한불개용(松寒不改容)이라는 말이 있다. 소나무가 추위에도 그 모습을 바꾸지 않아 사계절 푸를 수 있듯이, 우리도 각자의 중심을 지키며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