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극복의 중추역할을 담당했던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은 상당부분 달성되었고 앞으로도 추진해야 할 과제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부의 재정적자란 희생양이 숨어 있다. 1997년 이후 계속되어온 재정적자의 누적으로 올해 국가 채무는 1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는 국내총생산(GDP)대비 20%에 육박하는 큰 규모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지급보증한 채무도 GDP 대비 20%정도로 실질적인 국가채무는 약 200조원, GDP대비 40%에 이르는 막대한 수준이다.
재정적자가 한번 누적되기 시작하면 정부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노력 없이는 국가채무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속성이 있으므로 체계적인 중장기 계획 아래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
재정적자를 체험하고 있는 대다수 선진국은 적자규모가 GDP의 40%수준에 이르렀을 때 그 심각성을 인식하여 「재정건전화 특별법」을 제정하고 실천함으로써 안정적 경제성장을 뒷받침한다.
미국의 경우 1985년부터 재정적 한도를 설정하고 이를 준수하지 못할 경우 강제적으로 감축을 실시하는 법을 제정 운영한 결과 작년부터는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재정적자가 흑자로 반전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이 지속적 호황을 유지시키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정부세출의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노력의 일환으로 1979년부터 재정증가율의 강제적 규제를 중심으로 하는 예산회계제도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한국조세연구원도 재정적자 누적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지난해 11월 재정건전화를 위한 특별법제정을 건의했으나 정부의 재량적 재정정책의 여지를 축소시킬 것이란 우려와 총선을 앞둔 정치적 고려에서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투자활성화와 실업축소를 위해 정부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줄여 적자재정으로 대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적자재정은 국민의 호응도가 크므로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이 손쉬운 정책대안으로 채택한다.
재량적 재정정책이란 불황에는 적자재정으로 대처했더라면 호황시나 누적 적자재정이 심각한 수준일 경우 세금을 늘리고 정부지출을 삭감하는 흑자재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량적 재정정책은 이론적으로는 합당하지만 세금을 인상하고 정부지출을 줄이는 일은 시민들로부터 반발을 사게 되어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정치적 제약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제어하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경제정책을 입안하는데 순수한 경제적 요인만을 고려하기 위해 균형예산을 입법화하거나 재정건전화 특별법을 제정하기도 한다.
GDP 대비 국가 채무비중이 외환위기 이전인 10%이하로 도달하는 데는 일러야 2014년경에라야 가능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재정적자가 누적될수록 이자지급액이 늘어나 재정지출구조의 경직성이 심화되며 이는 재정정책의 경기대응기능을 크게 약화시킨다.
또한 누적적자재정은 물가오름세 심리를 부추길 위험은 물론 금리인상으로 인한 민간투자위축을 초래할 가능성도 크다.
국민의 64%가 대통령의 신년사를 적자재정의 당면한 어려움을 무시한 총선용 선심정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균형예산으로의 복귀가 얼마나 지난(至難)한 과제인가를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역편중인사가 지역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말로만 지역감정극복을 주장할 게 아니라 공무원인사에서부터 지역별 인구비중을 고려하는 인사정책의 입법화로 최소한의 실천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적자재정의 심각성을 제대로 치유하는 길은 재정건전화 특별법의 제정에서부터 그 첫 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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