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대해 우리가 통상적으로 갖고 있는 개념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복사(複寫)이다.그러나 토머스 엘러(Thomas Eller)가 「더 키친(THE Kitchen)」 전(31일까지)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진의 이미지는 사진이 실물 이상으로 자극적이며 감성적인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체험케 한다.
새로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키친」 의 개관전을 겸한 이번 전시회에서 엘러는 그동안 자신이 널리 애용해온 다양한 음식재료들을 작품소재로 펼쳐보이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의 「98 부산국제아트페스티발」을 통해 이미 신선한 젊은 사진작가로 기억되고 있는 엘러(36)는 독일 출신으로 현재 뉴욕에서 활동 중.
전시장 문을 열자말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풍성한 과일과 채소의 사진이다. 파인애플 붉은 피망 사과 딸기 토마토 등이 실제보다 3-4배 크기로 확대돼 방금 밭에서 나온 듯 탱탱한 모습으로 각각 원근을 달리해 자리잡고 있다. 알루미늄 판 위에 「시바크롬」이란 형식으로 인화한 사진 이미지는 실물 이상으로 선명하고 반짝거린다.
입구에서 조금 옆으로 머리를 돌리면 이번엔 해산물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분홍빛 도는 속살을 살짝 비치며 야릇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홍합, 금방이라도 하얀 벽에서 튀어나올 듯 싶은 검붉은 전갈, 그리고 흰 벽면을 군데군데 채우고 있는 주방용 칼…. 모두 다 컴퓨터로 실물 이상으로 크게 조작된 사진 이미지이지만 토마스 엘러의 작품은 평면 이상의 입체감 있는 물성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너무나 크게 확대된 작품들의 이미지는 사실 관객들을 위압하고, 왜소함까지 느끼게 만든다. 더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작품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작가의 이미지 사진이다.
유일하게 확대 아닌 축소된 모습으로 서있건만 관객 너머 그 무엇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초리는 오싹하기까지 하다. 전갈의 힘찬 꼬리를, 홍합의 야릇한 속살을 찬찬히 감상하려는 관객의 은밀한 욕구를 알고 있다는 듯….
그래서 관객들은 애써 점잖은 표정으로 서둘러 발길을 돌리고, 그리고 마지막 입구에 놓여있는 제법 미끈하게 빠진 감자들을 보며 혼돈의 공간을 나온다. 앗! 하나 놓친 게 있다. 한쪽 벽면엔 진짜 주방이 보인다. 왜 이 새로운 전시공간의 이름이 스페이스 키친으로 정해졌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되는 순간이다.
스페이스 키친 공동대표 중 한사람인 장동조씨는 『갤러리가 갖고 있는 딱딱한 느낌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를 시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면서 미술, 음악, 공연, 음식이 함께 하는 퓨전 문화, 크로스오버 문화를 이끄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유엔빌리지라는 차 없이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공간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사진이라는 쟝르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늘 촉각을 세우고 있는 관객이라면, 꼭 가볼만한 전시회다. 갤러리 현대, 국제화랑을 리노베이션했던 옴니디자인 이종환씨가 설계한 스페이스 키친의 깔끔한 공간 자체도 흥미로운 볼거리이다. (02)517-2501
/송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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