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 「깃발」 하나가 논쟁거리로 등장했다.민주당 후보지명전에 나선 앨 고어 부통령은 16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사당 지붕에 내걸린 「남부동맹기」는 내려져야한다』며 『그러나 조지 W 부시 텍사스주지사는 이에 대한 입장표명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1860년 노예해방을 지지하는 미합중국에서 제일 먼저 탈퇴, 남북전쟁을 일으킨 남부동맹의 중심 역할을 했던 주. 텍사스주와 함께 전통적으로 보수주의적 색채가 강한 곳이다. 이 주는 공화당이 주의회를 장악한 1996년 이후 남북전쟁 당시 남군이 사용했던 남부동맹기를 미국기 및 주기(州旗)와 함께 주의회 건물 지붕에 내거는 바람에 흑인 인권운동가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고어의 비판이 제기되자 부시는 『깃발 제거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사실상 지지입장을 내비쳤고 존 맥케인 상원의원 등 다른 공화당 주자들도 이에 동조했다.
깃발 제거론자들은 남부동맹기가 「노예제도의 상징」이라고 평가하는데 비해 옹호론자들은 「북군에 대항했던 남부 정신의 유산」이라고 맞서고 있다.
흑인 등 소수민족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측이 제거론자의 쪽에 선데 비해 백인 중산층과 남부 지역을 표밭으로 삼는 공화당 주자들은 옹호론을 펴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인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주도(州都) 컬럼버스시에서는 2만여명의 유색인종 진보연합(NAACP) 회원이 모여 남부동맹기 제거를 관철하기 위한 집회를 갖고 주의회까지 행진했다.
참석자들은 『당신들의 유산은 우리에게는 노예제도』라고 외쳤다.
1963년 워싱턴 DC의 링컨기념관 앞에 모인 수십만의 군중에게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명연설을 토해내 「흑인인권운동」에 불을 붙였던 킹 목사가 테네시주의 멤피스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탄에 쓰러진지 32년이 지났지만 「풍요로웠던 노예시대의 영화」를 그리는 백인이 일부에서나마 목소리를 내고 있는게 오늘의 미국이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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