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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15만 관객 1000회 대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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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15만 관객 1000회 대기록

입력
2000.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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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세요, 일호선. 시내에선 제일 빨라요, 일호선. 별별 사람 다 구경해 봐요, 일호선!』 강한 록 비트에 실린 우렁찬 합창은 몸속으로 파들고, 어쩌면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을 이 시대 무지렁이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언 마음이 녹는다.94년 5월 14일 발진을 시작한 이 별난 탈 것은 지금껏 모두 15만여 관객을 실어 날랐다. 극단 학전의 대명사,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2월 6일 1,000번째 출발 신호를 울린다. 어쩌다 공연 당일 보조석을 판다는 소식조차도 미처 못 본 사람들에겐 반갑다. 좌석 매진 소식, 연습 장면 관람 희망자 모집 공고 등까지 PC 통신을 장식하는 뮤지컬이다.

새벽 6시 9분, 서울역에서 지하철 1호선은 길을 떠난다. 기대와 좌절, 분노와 배신, 허세와 위선, 희망과 믿음으로 뒤범벅된 우리의 이웃들. 회사원 소매치기 창녀 수녀 청소부 잡상인 단속반 삐끼 과부 복부인…. 그러나 지하철내에선 모두 평등한 승객일 뿐이다. 극은 종로를 거쳐 자정에 청량리역에 도착하기까지 객차 안팎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풍경들을 담고 있다.

지금 무대는 뮤지컬 열기로 뜨겁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일식」, 서울 뮤지컬 컴퍼니의 「뮤지컬 콘서트 웰컴 투 2000」, 극단 새즈믄의 「남센스」, 극단 말죽거리의 힙합 뮤지컬 「백댄서」, 인터 C&A의 「황구도」 등등 . 그러나 이같은 뮤지컬 붐이 있기 오래 전, 「지하철 1호선」은 미래를 향해 쉼없이 달려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1,000회의 기록을 넘긴 작품으로는 「품바」「넌센스」가 있긴 하다. 그러나 단일 극단이, 단일 공연장에서, 단일 연출가로, 단일 작품을 이만치 공연한 것은 처음.

이 작품은 사랑 이야기에 안주하는 살롱 뮤지컬, 브로드웨이식 호화 뮤지컬, 복고풍 악극 등으로 나뉘어 온 우리 뮤지컬 소비 관행에 반성의 계기가 됐다. 서양의 그릇에 진솔한 우리의 삶을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새로운 지평이었다. 「모스키토」 「의형제」 등 뒤이은 작품들과 함께, 언론과 평단이 달아 준 이른바 「학전 뮤지컬」의 효시였다.

지금껏 출연 배우 66명, 연주자 20명, 조연출 무대감독 등 스태프 100여명. 방은진(94, 96년 걸레 역), 설경구(94년 안경 역) 등 지금은 내로라 하는 배우가 된 사람들이 한 번씩 거쳤던 무대다. 첫해 선녀 역으로 등장, 놀라운 절창을 선보였던 나윤선은 파리 재즈 스쿨을 졸업하고 현지 교수로 활동중이다.

1,000회까지 무대를 줄곧 지켜 온 주인공은 무대 안에서는 드러머 박진완, 무대 밖에서는 무대미술 이복배씨 등 두 명뿐이다. 무대와 객석을 내려다 보는 명당 자리에 있지만, 쉴 새 없이 스틱을 놀리느라 무대에 눈 돌릴 틈 없는 박씨의 진짜 소원은 이 소문난 작품을 제대로 한 번 보는 것이다.

리메이크작이 오리지널을 앞지른 역전극의 주인공이다. 86년 독일 그립스 극단이 서베를린에서 초연한 「Line 1_Das Musikal」(원작 폴커 루드비히)은 독일통일 전 서베를린 지하철 1호선의 풍경을 그린 음악적 희가극(뮤지컬 레뷔)일 뿐이었다. 그러나 대학시절 마당극 등 진보적 연희 양식에서 잔뼈가 굵어 온 김민기씨에겐 훌륭한 변용의 마당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군바리 정권』 『문민정부』 등 동시대 정권이 도마에 오른 것이 바로 마당극의 비판 정신. 통쾌한 야유는 객석을 휘어잡았다. 줄거리나 등장인물이 바뀔 때마다, 꼬박꼬박 봐 온 열성파 관객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있다. 「지하철 1호선 매니아」.

극단 학전은 그들의 고전 「지하철 1호선」을 기점으로 「모스키토」 「의형제」 등 학전뮤지컬 레퍼터리와 함께 2000년 여행을 출발한다. 극장의 인터넷 사이트(www.hakchon.co.kr)에는 「지하철 1호선」 관련 소식이 계속 버전 업되고 있다. 96년, 99년 제작한 음반 또한 관객을 반긴다. 이번 공연은 4월 2일까지 학전 블루 소극장. 화-금 오후 7시30분, 토 오후 4시 7시30분, 일 오후 3시 7시, 월 쉼. 1, 2부 합쳐 2시간 20분 공연. 10분 휴식 포함. (02)763-8233

장병욱기자 aje@hk.co.kr

*김민기가 말하는 '지하철1호선'

베를린에서의 초연 연출자 볼프강 콜레더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일본 경우에는 「지하철 1호선」의 개작을 시도할 작가가 없어, 공연이 이뤄지지 못하는 상태다』 즉 김민기씨 같은 연극인이 없다는 말이다.

김민기씨는 이 작품이 한국 연극계, 특히 뮤지컬계에 던진 의미를 몇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간헐적으로 시도되던 라이브 음악을 본격화하는 계기를 이뤘다는 점. 뒤를 이은 「모스키토」 「의형제」 등 학전 라이브 뮤지컬의 맹공으로, 우리 무대에서 플레이백 음악은 퇴출의 길을 맞게 된다.

둘째,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일방적으로 수입해 환상과 현실 도피를 부추겼던 여타 뮤지컬에 대한 강타였다. 우리의 밑바닥 삶을 생생한 언어로 뮤지컬화한 이 작품은 「뮤지컬 리얼리즘」의 길을 텄다.

셋째는 스타 시스템의 뒤집기다. 무명 배우들의 뜀틀이 됐다. 『뭣보다 우리한테는 돈이 없잖아요』 김씨가 열적게 웃는다.

장병욱기자

*지하철 1호선... 굵직한 개작만 6차례

「지하철 1호선」은 이제 한국 뮤지컬의 고전이다. 최대의 공신은 맛있게 씹히는 대사에다, 당시 상황을 발빠르게 수용한 기동성. 연극은 당대에 대한 발언의 양식이라는 연출자 김민기씨의 연출관과 바지런함 때문이다. 김씨에 따르면 굵직한 개작이 6차례.

특히 청량리 588에 몸을 숨기러 온 운동권 청년(안경)에게 벌어진 변화는 인상적이다. 94년판에서 진짜 운동권으로 588에 몰래 숨어든 지명수배자였던 그는 1년 뒤, 늙은 창녀 걸레가 허구로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이 된다. 그것은 구호의 시대에 대한 결별이었다. 또 우루과이 라운드(UR) 사태 때는 가사를 『UR 개방으로 손님들만 땡잡아』로 바꾸고, IMF 때는 극중 강남 「싸모님」들이 「환영, 아엠에푸」라는 플래카드를 내거는 등 기동전을 펼쳐 젊은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동시대의 리트머스 시험지 「지하철 1호선」은 머잖아 한국 연극 최초로 「공연 1,000회 기념」 행사를 벌인다. 2월 5-6일 오후 3시 역대 올스타들이 각각 배역을 맡아 등장하는 1,000회 기념 공연이 그 절정이다. 4-6일은 독일에서 제작된 영화 버전 「지하철 1호선」을 극장에서 상영한다. 6일은 또 감독 라이하르트 하우프를 초청, 대화의 시간도 갖는다. 한국 연극사에서 진기록이 수립되는 순간이다.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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