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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못할 일] 기 죽어 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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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못할 일] 기 죽어 사는 일

입력
2000.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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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 일이다. 어지간히 어수선한 어느 망년회 자리에서 저만치 떨어져 앉아있던 점잖은 문인 한분이 제자로부터 질문을 받고는 『그것은 기가 센 저 사내에게 물어봐』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를 지목한 것이가 싶어 얼핏 돌아다보니 눈치가 나를 두고 한 말이 분명했다.나는 뜻밖의 말에 속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과연 그랬을까하고 자문해 보았지만 스스로 사실 여부를 가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물으니 그 분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긴 셈이었다. 집안 식구중 누군가의 기가 별쭝맞게 세면 다른 식구들은 그 기세에 치여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기가 십상일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다 며칠 뒤 새해부터는 맏아이가 고3이 되고 그 이듬해에는 둘째 아이가 또 고3이 될 판이었다.

한창 기가 나야할 아이들 앞에서 이미 쉰줄을 넘어선 아비가 기고만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없이 기만 살아 아이들에게 과연 무슨 득이 될 것인가 싶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늘 일러왔다. 우리 아이들이 저 가고 싶은 대학에 가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게 해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거기까지는 몰라도 첫째는 기가 죽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내가 스스로 기 죽어 사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났다. 하루는 누가 와서 어떤 문학상을 주면 받겠느냐고 넌지시 떠보는 것이었다. 나는 펄쩍 뛰며 후배작가를 추천해 받도록 했다.

몇달 뒤 맏아이가 가고 싶어한 대학에 들어갔다. 다시 해가 바뀌었다. 가을이 되자 또 누가 와서 어떤 문학상을 줄테니 받으라고 했다. 나는 깜작 놀라서 다른 후배를 추천하여 받게 했다. 몇달 뒤 둘째 아이가 가고 싶어했던 대학에 들어갔다. 나의 「기죽기 작전」이 마침내 소기의 성과를 낸 셈인지도 몰랐다.

또 해가 바뀌어 문화의 달이 되니 새로 생긴 어떤 문학상의 첫 수상자가 돼 달라고 전화로 조르는 이가 있었다. 나는 다시금 사양했다. 나의 기죽기 작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내 기죽기 작전은 자식들을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알고 있는 것이다. 애시당초 기세등등해 살 건덕지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이문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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