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방송 영화부에 입사하고 만 2년인 1966년 가을 중고 카메라 한 대를 장만했다. 사진이 될 만한 그럴싸한 것만 골라 찍을 게 아니라 한 가지 주제를 정해놓고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서울역 염천교 주변 행상을 좇았다. 그리고 몇 년 후 이들의 생활 주거지인 골목으로 따라 들어갔다』김기찬씨가 서울의 골목길을, 그것도 중림동 풍경을 가장 많이 사진에 담은 이유다. 사직동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 김씨는 방송사에서 오래 일했다. 동양방송과 한국방송공사에 제작 일을 보았고 그래서 사진 찍기는 최근까지도 점심 자투리 시간이나 일요일과 휴일을 틈타 이루어졌다.
그의 사진은 기교도 장식도 없기 때문에 아무라도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좁은 골목길의 풍경을 이렇게 찍겠다는 발상부터가 남다르다. 또 골목에만 들어선다고 이런 사진을 금세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70년대에는 사진기 들고 서울 골목길을 누비다가 간첩으로 신고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동네는 정말 내가 사진 찍고 간 뒤 며칠 안 돼 그 곳에서 간첩이 잡히기도 했다』 몰래 찍은 사진도 더러 있지만 그는 여러 골목길을 수년을 다니며 그곳 사람과 친해지고 난 뒤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골목문화는 한 15년 전부터 없어지고 있다』. 김씨는 집집마다 컬러 TV가 늘면서 낮이고 저녁이고 TV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했다. 여름에는 특히 집안이 더워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선풍기며 냉장고가 많아지면서 그럴 일도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골목문화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골목 자체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가 가장 즐겨 찍어온 중림동 골목은 97년 재개발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연세대 조혜정 교수는 『골목도 문화유산』 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기찬씨는 골목이 없어지는 것을 보고 그냥 『오랫동안 가졌던 무얼 잃어버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종로와 인사동 골목, 서울 구석구석의 재래시장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곳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지만 그의 사진 속에서는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이다.
김범수기자
*추억으로 멈춰선 찌든 일상의 흔적
궁핍뿐인 골목길 즐거운것은 아이들뿐?
뉴욕 브룩클린 3번가. 담배 가게. 주인 오기 렌은 어느 날 손님 폴에게 자신이 14년간 찍은 사진첩을 보여준다. 삼발이로 고정한 사진기의 렌즈 속으로 빨려 들어온 아침 8시 가게 앞 똑같은 거리 풍경. 남과 여, 겨울과 여름의 도시 아침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영화 「스모크」의 사진첩에는 「예술」의 화려함은 찾기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철학」의 냄새가 묻어난다. 긴 시간의 흔적이, 인생의 자취가 아무런 장식없는 그 사진 속에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다.
사진작가 김기찬(金基贊·62)은 30년 넘도록 서울의 골목길을 찍고 있다. 「골목안 풍경」(1972-1988)이란 사진전을 1988년에 열고 그때 열화당에서 같은 이름의 사진집을 낸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90, 92, 94년, 2년 걸러 계속 똑같은 제목의 사진집을 냈다. 이번 5집은 6년만에 나온 골목 사진집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기억에 지난 시절은 궁핍 뿐일지도 모른다. 추워서 잠 깬 새벽 판자집에서 부피만 컸지 거칠기 짝이 없는 외투며 바지를 주섬주섬 끼어 입고 나서던 기억. 너나 할 것 없이 누더기인 집들 사이 골목을 걸어 내려가 하루종일 몸 고생만 하다 몇 푼 손에 쥐지도 못하고 돌아오던 길. 세간살이 없어도 할 일은 많아 손이며 허리를 되는 대로 놀려야 감당하던 여인네들의 집안 일. 모진 남편 만나서 대거리하다가 두들겨맞기 일쑤던 고달픈 인생.
즐거운 것은 아이들과 강아지 뿐일까? 맑은 날이면 딱지치기며 카드 놀이, 아니 무슨 놀이거리가 없어도 우루루 몰려다니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행복에 겨워하고, 코 묻은 동전 몇 닢 받고 만화책 빌려주고 만화경(萬華鏡)을 보여주던 아저씨들을 둘러싼 아이들은 70년대 초 가난한 동네 골목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곁에는 영문도 모르고 촐랑거리는 강아지들.
추억이란 유별난 것이다. 쓰라렸던 옛 시절이라도 다시 보지 못할 일이라면 안타깝다. 불붙은 링을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곡예사처럼 무섭고 어렵던 시간도 지나고 보면 대견스럽다. 시간에는 이기지 못할 힘이 있다. 아무도 흉내내지 못할 예술을 세월은 만들어낸다. 사진집 「골목안 풍경」에는 지난 시절이 빚어내는 이런 마술같은 힘이 느껴진다.
김씨는 서울 도화동, 중림동, 만리동 달동네와 천호동, 사근동, 문래동 등 70년대까지 서울의 가장 변두리였던 곳의 모습을 담았다. 그의 흑백 사진 120여 점에서는 유별난 기교를 발견할 수 없다. 삶이 있는 공간에서 삶을 그대로 찍어내는 가장 「정직」한 사진의 모습만이 오롯이 살아있다.
60년대 말 - 70년대 초 서울 변두리 모습이란 빈곤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가난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여러 장의 사진이 보여준다. 거기에는 아무런 수사(修辭)가 없다. 블럭조차 깔려있지 않는 흙길 골목, 차라리 움막이라고 불러야 적당한 천막집. 그 가운데 서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의 무덤덤한 얼굴,
그리고 일상. 70년대와 80년대 중림동, 만리동, 도화동 풍경은 좁고도 가난하지만 삶이 살아있는 모습이다. 볕 좋은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동네 여인들. 낡은 기와며 판자 지붕을 뒤로 해서 끼리끼리 어울려있는 꼬마들의 모습. 그 좁은 길의 시멘트 담벼락과 불켜진 낡은 창문을 지나며 실연한 청춘은 이런 시구도 떠올렸을 것이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낡은 집들은, 그 집들이 마주하던 골목은 90년대 들어 하나둘 사라진다. 나즈막한 일반 주택들이 번듯하고 높다란 아파트로 바뀌는 시대다. 시멘트 철골조들이 앙상한 뼈를 드러내고 담은 반쯤 허물어진 모습의 중림동 골목 집들은 최근까지도 그냥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없다. 그 자리에는 재개발 아파트가 버티고 서 있고, 추억의 현장은 이제 사진에서 밖에는 찾을 길이 없다.
사진집 첫 장을 열면서 사람들은 꺼내본지 20년은 족히 되는 낡은 앨범을 뒤적이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골목의 후미진 구석구석, 낡은 집안 여기저기를 비추는, 때론 한 자리에서 반복하는 그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인생이란 어쩌면 담배연기 같다」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무게를 알 수 있는.
골목안 풍경 1969-1999
김기찬 사진집
눈빛 발행, 3만원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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