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보도를 현재의 상업주의적 경마식 보도에서 벗어나 정책중심으로 이끌고 가기 위해 90년대초부터 미국 신문에서 자리잡아가고 있는 「독자주도적 선거보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한국언론재단 유선영(柳善榮·41)객원연구위원팀은 미국과 한국의 선거보도 행태에 대한 사례연구를 토대로 최근 발표한 연구논문 「한국언론의 정치·선거보도」에서 이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논문에 따르면 경마식 보도, 피상보도, 왜곡 편파보도, 언론의 파당성 등 우리나라 선거보도에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점들은 정치권이 선거과정에서 정보생산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구조적인 현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독자, 즉 유권자 중심의 선거정보 생산구조가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 이 논문의 내린 결론이다. 쟁점과 내용 관점 방향성은 물론 기사수준과 편집 기사스타일도 독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 제도가 처음 실험된 것은 1990년 캔자스 위치타카운티의 작은 신문인 위치타이글에서였다. 이 신문은 주지사 선거보도에서 독자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역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12개 쟁점을 선정, 유권자 표본조사를 통해 검증을 거친 뒤 선거캠페인 기간 내내 이 쟁점들이 어떻게 생성·발전돼가는가를 보도했다.
대신 기자들이 후보자들의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는 선거취재활동은 비중을 낮첬다. 또 유권자 토론회를 개최, 12개 쟁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이 결과 신문의 열독률과 구독률은 눈에 띄게 향상됐고 투표율도 급상승, 기존 선거보도방식보다 경쟁력이 있음이 입증됐다.
위치타이글의 성공에 자극된 미국 언론연구재단 포인터연구소는 1991년 캐롤라이나주의 중간규모 신문인 샬로트옵저버에서 좀더 세련된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1992년에는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도 1년간에 걸쳐 기자들을 4개 도시로 파견, 직접 유권자를 만나면서 중요한 쟁점을 뽑아내 이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선거보도를 했다.
논문은 미국신문들의 실험을 바탕으로 대중주의적 패러다임에 입각한 새로운 선거보도 준칙을 마련했다. 먼저 공중에게 쟁점의 선정권을 돌려주고 이 쟁점에 대해 공중이 참여하는 공적 토론을 벌이며 취재방향 시각 접근방식 등도 공중으로부터 조언을 얻는다.
공중뿐만 아니라 후보자도 시민이 제안한 쟁점에 관심을 갖게 복속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행사나 사건도 그대로 보도하지 말고 독자들의 쟁점을 중심으로 재구성해 보도한다. 사실을 중시하는 기존의 기사작성법을 버리고 사실과 정황을 동시에 고려해 독자의 감정, 연대기적 상황, 전체 사회에서의 맥락이 확연히 드러나게 한다.
후보자 토론회에서는 독자가 직접 질문할 수 있게 하고 불가능할 경우 독자의 요구대로 질문을 한 뒤 해당 독자의 이름을 밝혀준다.
논문은 이같은 선거보도를 위해 언론사들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사내에서 더 이상 경마식 보도는 안된다는 자각을 확산시키지 않으면 얼마되지 않아 다시 기존의 보도태도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이뤄진다.
워싱턴포스트도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차 경마식 보도방식이 등장했다. 아울러 정치부기자들은 다른 부서와 자신의 텃밭을 나눠가져야 하고 편집자들은 늘어난 업무량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강력한 통합조직과 리더가 만들어져야 한다. 또 정황을 정확히 일러주는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조사연구 부서와 자료실을 강화해야 한다.
유위원은 『언론이 정치인과 같은 서클에 속한 엘리트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려 하면 결국에는 독자들의 무관심 속에 정치와 함께 몰락할 것』이라며 『언론인은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메신저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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