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에 대한 새 내각의 계속된 강경 발언으로 재계 총본산인 전경련의 위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박태준총리는 『이제는 재벌 스스로 개혁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면서 『전경련 상공회의소 등이 나서서 스스로 개혁을 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헌재 재경부장관은 『정부가 재벌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재벌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재벌의 이익단체인 전경련도 더 이상 재벌의 기득권만 지키는 모습을 버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경련이 이익단체로서 회원사들인 재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재벌은 우리 사회 안에서 조직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힘이 그 어느 집단보다 막강한데다 외환위기 초래의 주역이었던 만큼 사회에 대한 책임 또한 막중하다.
전경련을 다른 이익단체와 같은 수준에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전경련 개혁에 대한 정부측 발언에 대해 재계가 헌법이 보장하는 민간단체 집회·결사의 자유 위배 등을 들먹이며 반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전경련은 IMF체제 이후 오너 중심에서 탈피해 업종단체별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회장단을 늘렸고, 정경유착을 근절하겠다며 기업윤리헌장을 선포했으며, 5개년 발전계획 성격인 「전경련 비전 2003」을 채택했다. 「재벌의 대변자」 「IMF 주범」이라는 국민들의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경련이 실제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국민들은 회의적이다. 세계적인 흐름인 벤처기업에 대한 거품론 제기 등에서 보듯 기득권층으로서의 자기보호가 여전히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재벌 개혁이 2년이나 진행됐지만 아직도 국정의 핵심정책으로 대통령과 총리, 재경부장관이 잇따라 재벌 개혁을 강조하고 있음은 그동안 재벌 개혁의 내용과 속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회전반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경련은 알아야 한다.
재벌 개혁을 놓고 언제까지 티격태격할 수는 없다. 새 천년은 이미 왔고, 시간은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 재벌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나 국민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전경련은 국민경제의 동반자로서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하드웨어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바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외부의 강압적인 힘에 의한 변화에는 한계와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전경련의 자율적인 대변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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