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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의 한 순간] (40) 이나명 「수련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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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의 한 순간] (40) 이나명 「수련 연못」

입력
2000.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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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소리가 들려주는 침묵의 말에 귀기울이기둥근 연못이다. 물빛이 검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수련은 넓고 푸른 잎을 수면 위에 띄우고 꽃봉오리를 조심스레 열고 있다. 아침 햇빛이 연못물과 수련 위에 듬뿍 뿌려진다. 내 등이 따뜻하다. 그렇게 골고루 햇빛이 세상에 뿌려지고 있다. 그런 세상이 눈부시다.

하지만 이것은 앞면일뿐 뒷면은 어둡다. 저 연못의 검은 물빛을 보라.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는다. 캄캄하다. 이 캄캄한 속이 갑갑하다. 다시 눈을 뜬다. 여전히 수련은 연초록 잎을 가볍게 수면 위에 펴고 자홍빛 꽃잎을 수줍게 열고 있다. 참으로 고운 그 자태가 내 눈길을 한없이 끌어당긴다. 사방은 고요하고 그 고요함 속에 내가 서 있다. 그리고 저 연못 위에 떠서 고요히 입술을 열고 있는 수련 꽃잎이 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있는듯하다. 아, 저것은 말 없는 말이다. 아니 말하는 침묵이다. 나는 감히 내 생각의 말을 떠올린다. 나는 그 말을 알아듣고 싶어. 그 말뜻을 전부 해독하고 싶다. 나는 끈길기게 꽃을 바라본다. 어느새 꽃이 내 안에 들어와있다. 꽃은 내 안에 있다. 그러니까 너는 나인가, 내가 너인가. 너와 나, 우리는 깊은 수심(水深)에 잠겨있다. 저 밑바닥에 닿아있다. 바닥은 끊임없이 우리의 뿌리를 적셔주고 있다. 나는 알아듣고 있는가? 나의 말들이 침묵의 표면에 자잘히 물주름을 접는다.

「너를 보는 내 밑바닥이 쩌르르 울리고/한 순간 마음의 물주름이 자잘히 접힌다//바닥, 저 깊은 수심에서 끌어 올린/그 말 뜻/내가 알아들을 새 없이/저녁이면/입 꼭 다물어버린/붉고 고운 입술을 가진/수련/연못」

잡다하고 소란한 일상에 잠시 눈을 돌려 사물들을 가만히 보면 그들 하나하나 제 세계를 열어보이고 있다. 야생꽃들과 나무, 또는 곤충과 동물들, 그들이 비비적대며 열어보이는 적나라한 세계 속에 나도 함께 서 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들이 뿜어내는 침묵의 말들에 귀 기울여본다. 때로는 종잇장에 베껴본다. 그렇게 모아보니 시집 한 권이 되었다. 그 시집에 「그 나무는 새들을 품고 있다」(문학과지성사 발행)라고 제목을 붙여보았다. 그러나 나는 두렵다. 그들의 말들을 얼마만큼 들을 수 있었는가. 감히 내 눈의 시점에서만 그들을 가늠하지 않았는가. 다시 한번 나를 추스려본다. /시인·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시집 「금빛 새벽」 「중심이 푸르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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