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자와 29일자는 김영민(金榮敏)연세대 교수와 손동현(孫東鉉)성균관대 교수가 각각 출제해 주셨습니다. (답안은 1,000자이내)22일자
(문제) 다음 글은 조선 초기 문장가 권근의 수필 「주옹설(舟翁說)」 가운데 일부이다. 여기에는 뱃사람 노인의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비유적으로 담겨있다. 이 제시문을 참고로 하여,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삶』이라는 주제로 논술하시오. 아울러, 오늘날의 현실에서 자신의 주관에 따라 행동하며 사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함께 서술하시오.
(제시문) 아아, 손(客)은 생각하지 못하는가? 대개 사람의 마음이란 다잡기와 느슨해짐이 무상하니, 평탄한 땅을 디디면 태연하여 느긋해지고, 험한 지경에 처하면 두려워 서두르는 법이다. 두려워 서두르면 조심하여 든든하게 살지만, 태연하여 느긋하면 반드시 흐트러져 위태로이 죽나니, 내 차라리 위험을 딛고서 항상 조심할지언정, 편안한 데 살아 스스로 쓸모 없게 되지 않으려 한다.
하물며 내 배는 정해진 꼴이 없이 떠도는 것이니, 혹시 무게가 한 쪽에 치우치면 그 모습이 반드시 기울어지게 된다.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끔 내가 배 한가운데서 평형을 잡아야만 기울어지지도 뒤집혀지지도 않아 내 배의 평온을 지키게 되나니, 비록 풍랑이 거세게 인다 한들 편안한 내 마음을 어찌 흔들 수 있겠는가?
또 무릇 인간 세상이란 한 거대한 물결이요, 인심이란 한바탕 큰 바람이니, 하잘 것 없는 내 한 몸이 아득한 그 가운데 떴다 잠겼다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한 잎 조각배로 만리의 부슬비 속에 떠있는 것이 낫지 않은가? 내가 배에서 사는 것으로 사람 한 세상 사는 것을 보건대, 안전할 때는 후환을 생각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느라 나중을 돌보지 못하다가, 마침내는 빠지고 뒤집혀 죽는 자가 많다. 손은 이로써 두려움을 삼지 않고 도리어 나를 위태하다 하는가? (「동문선(東文選)」 중 「주옹설(舟翁說)」에서)
29일자
(문제) 아래의 글은 영국철학자 카알 포퍼가 전체주의를 비판코자 사회철학적 내지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쓴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사상은 오늘날 산업화 및 정보화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비인간화의 현상을 반성하는 데에도 좋은 디딤돌을 제공한다고 생각된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밝혀 보고, 이러한 이른바 「비인간화」의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인지 그 방도에 대해 논술해 보시오.
(제시문) 열린사회는 이와 반대로 유기체적인 특성이란 없는 추상적인 사회이다. 이 사회는 인간 상호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거의 없는 비인격적 사회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열린사회에서는 친밀한 인간적 접촉을 거의 갖지 않거나 익명과 고립 속에서, 그리고 그 결과 불행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사회는 비록 추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추상적 사회에서는 만족할 수 없는사회적 욕구를 갖고 있다. 닫힌사회에서 열린사회로의 이행이란 분명히 인류가 겪은 가장 심원한 혁명 중의 하나이다. 닫힌사회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이 이행은 참으로 철저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서구문화가 그리스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아야 한다.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중에서)
입선자 명단(5명)
단대부고= 오주동 백암고= 우병훈 한우용 포항고= 이경우 여천고= 송동한
원고마감은 매주 월요일. 우편: 110-792 서울 종로구 중학동 14 한국일보 사회부 논술담당자앞 전화: (02)724-2313-8 팩스: (02)739-0266
*[논술당선작]
최우수 정연경
인간의 삶은 한 세기를 채우기 힘들다. 반면 한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는 무한하다고 볼 수 있다. 전통은 이러한 유한의 인간이 만들어낸 역사의 산물이다. 영구한 역사의 앞날을 예측하기엔 인간의 삶이 너무 짧다. 그만큼 역사 속의 전통을 계승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이 보다 성공적으로 전통을 이어갈 수 있을까? 먼저 우리는 그 전통의 유래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전통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그러나 전통이 계승되는 동안 그 본래의 의미를 잊고 겉모습만 따라한다면 오히려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중국의 전족은 본래 화장과 비슷한 역할로, 발을 천으로 곱게 감싸 신을 신었을 때 보기 좋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전족의 목적은 발의 성장을 억제하여 여성으로 하여금 가출을 막고 남성의 눈요깃감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전족은 중국이 근대화를 맞기 전까지 그 나라 여성을 고통과 파멸의 길로 내몰았다. 한편 올림픽 경기는 그 반대의 경우이다. 그리스의 올림픽 정신은 단결과 화합이었다. 오늘날 다시 부활된 그 경기는 내용은 많이 변했지만 그 본래의 목적, 단결과 화합의 정신은 변치 않고 세계 평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처럼 전통의 근원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전통계승의 또 다른 길은 현재생활과의 조화이다. 엘리엇의 「전통과 개인적 재능」 중에서 그는 『전통의 역사적 의식은 과거의 과거성 뿐만 아니라 과거의 현재성에 대한 의식도 내포한다』라고 했다. 과거의 현재성이란 무엇일까? 이는 과거를 지나간 일로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연관시키는 작업을 의미한다. 과거의 전통을 옛 것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전통은 우리의 현재 삶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전통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개량한복은 훌륭한 본보기이다. 한복의 장점인 곡선의 미는 최대한 살리고, 현대적 개성과 효율성을 고려해 소매와 치마의 폭을 줄이고 저고리의 길이를 늘린 것이 바로 개량한복이다. 이처럼 과거의 전통과 현재를 조화시킨다면 소중한 우리 고유의 전통을 훌륭히 계승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현재 삶도 더욱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전통을 계승하는 일은 역사에 대한 마땅한 임무이다. 이것을 훌륭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통의 근원을 바르게 파악하고 또 현재의 생활과 조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칠 때 우리는 비로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멋있게 장식할 수 있을 것이다.
우수1 박기환
전통의 계승은 다른 나라 문화의 도입과 함께 문화를 발전시키는 방법 중 하나이다. 따라서 각 나라별로 전통을 성공적으로 계승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왔다. 그중 하나가 T. S. 엘리엇에 의하여 발표된 개인적 재능에 의한 전통 계승 방법이다.
전통은 앞세대가 남긴 성과를 맹목적으로, 혹은 고식적으로 고수하여 앞 세대의 방법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비상한 노력으로써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 노력에는 개인적인 재능이 포함되는데, 이는 자기의 세대를 깊게 의식할 줄 알아야 함과 동시에 자국의 문화 전체가 동시적으로 존재하여 동시적인 질서를 구성하고 있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시대에 있어서의 자기의 위치, 자기의 현대성을 날카롭게 의식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말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 하나 하나가 역사적 의식을 갖고, 전통적인 사람이 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요즈음은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것보다는 발달된 외래 문화를 수용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우리 문화와 외래 문화의 적용에 어려움이 있고, 급격한 변동은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 환경에 맞춰서 발달해온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행동이다. 따라서 전통 문화의 계승은 문화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이 저절로 계승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의 계승을 원한다면 비상한 노력, 즉 개인의 능력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통 문화의 계승과 개인의 능력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개인의 역사적 의식이 전통문화 계승에 필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우리 개개인이 역사적 의식을 잘 파악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우수2 구동성
전통은 우리가 버려야 하는 인습과 달리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앞선 세대의 문화이다. 그런데 전통도 받아들일 때에 아무런 반성 없이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또한 우리의 생활에 해가 되는 인습과 같아져 버리고 만다. 그러면 앞선 세대가 물려준 전통을 성공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기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전통의 계승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먼저 전통은 옛날의 것이기 때문에 그 존재만으로도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과거의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도 사용되어 그 당시 사건을 그 사람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전통은 그 당시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은 개인에게 있어서 과거의 역사에 대한 재해석 뿐만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비판하며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바로잡게 하고 옳은 것에 대해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준다. 또한 전통은 자칫 잘못하면 옛 것만을 고수하고 새로운 것은 무조건 배척하는 극심한 보수주의를 낳게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통의 성공적인 계승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분별력과 비판력이라고 할수 있다. 현재 우리의 삶에 대하여 받아들여야 할 전통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전통을 잘 구별할 수 있고 과거나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비판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면 전통의 계승은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을 올바르게 받아들여 우리 생활의 적재적소에 활용한다면 우리는 옛 전통을 계승한 것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에도 물려줄 수 있는 자랑스런 전통을 창조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논술강평]
금년도 주요대학의 논술문제를 출제한 교수들이 발표한 채점기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시문의 정확한 이해를 통해 출제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과 자신의 논지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훌륭한 논술문을 쓸 수 있는 주요한 관건이 된다. 그러나 이번 주에 응모한 논술문들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의 학생들이 위에서 언급한 문제를 정확히 지키지 못했다는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주의 예시문으로 소개된 T. S. 엘리엇의 비평문인 『전통과 개인의 재능』은 쉬운 글이 아니다. 그러나 쉬운 글이 아니기 때문에 논술시험을 앞둔 학생들은 그것이 지닌 의미 파악에 더욱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을 것이다.
엘리엇이 이 글에서 「전통의 유일한 형식, 즉 전달의 유일한 형식이 바로 앞선 세대가 남긴 성과를 맹목적으로 혹은 고식적(姑息的)으로 고수하여 앞 세대의 방법을 추종하는데 있다면, 전통은 적극적으로 저지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썼듯이, 이 글의 핵심인 전통을 성공적으로 계승하는 방법은 결코 과거의 것을 있는 그대로 현재에 답습해서 되풀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이러한 방법을 택한다면, 인류의 역사적 문명은 조류가 모래 속에 파묻히는 것과도 같은 결과만을 가져왔을 것이며, 미래에도 우리는 더 이상의 문화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전통은 단순하고 맹목적으로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재능을 통해서 재창조되는 것이기 때문에 비상한 노력으로써 획득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전통은 과거의 것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성 뿐만 아니라 현대성에 대한 의식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역사의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역사의식이란 일시적인 의식이자 또한 항구적인 것이며, 동시에 양자(兩者)를 합한 의식이기도 한데, 이것은 작가에게 바람직한 전통을 부여한다. 즉, 이것은 현재가 과거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처럼 과거 역시 현재에 의해 수정되고 발전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작가 혹은 개인의 입장에서 이러한 바람직한 역사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재능을 통한 과거의 것들을 재창조해서 현대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엘리엇이 기존의 기념비적인 예술작품이 이룩한 전통적인 질서는 새로운 작품의 탄생으로 수정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통과 개인 재능의 관계를 아는 시인은 이와 같은 진정한 전통계승의 어려움과 책임감을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최우수작으로 뽑은 정연경(일본 동경 세이센 국제학교)의 글은 나름대로 전통의 성공적인 계승방법을 훌륭하게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전통과 개인적 재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발췌한 역사의식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앞선 강평에서 밝혔던 개인재능의 역할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의미파악을 위해 이 예시문이 실린 원문을 참고하길 권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논지를 구체적으로 논하는 능력과 구성 및 표현능력은 다른 글들에 비해 상당히 돋보였다.
우수 1로 뽑은 박기환(백암고)의 글은 구성과 언어선택 및 표현능력이 돋보이는 글로서, 예시문의 논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무척 노력한 흔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주제를 확대시켜 글의 초점을 흐리게 만든 것은 오히려 흠으로 지적되었다. 다시 말해, 이 글은 출제자가 요구했던 직접적인 문제인 전통과 개인재능간의 관계 속에서의 바람직한 전통계승의 문제를 넘어서, 이 문제를 외래문화 도입문제 등으로 지나치게 확대시킨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다시금 예시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압축된 글을 쓸 수 있도록 연습을 거듭해야 하겠다.
우수 2로 뽑은 구동성(백암고)의 글 역시 나름대로의 논리와 훌륭한 구성을 지닌 글이지만,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예시문의 논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논리보다는 지나치게 교훈적으로 글을 전개시켜 나갔던 것은 감점요인이 되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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