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우먼 성공학… 만화가 황미나황미나(39)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만화가중 한사람이다. 1980년 열아홉의 나이에 만화가로 데뷔해 올해로 꼭 20년을 맞고 있지만 「성공 보증수표」로 그의 위치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 그의 작품을 읽고 가슴설레던 청소년 팬들이 이제 어엿한 부모가 됐고, 그들의 자녀가 다시 황씨 작품에 빠져들며 사춘기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는 얼마전 어느 독자로부터 『일본 만화를 베낀 게 아니냐』는 항의 편지를 받았다. 이 독자는 『일본에 갔더니 황미나 그림체를 빼다박은 만화책을 보았다』며 『일본 만화를 슬쩍 표절해 독자를 속이고 있지 않느냐』고 따졌다.
이 독자가 일본에서 본 만화책은 황씨가 일본 출판재벌 고단샤(講談社)와 계약을 맺어 연재하고 있는 일본어판 「이씨네집 이야기」. 황씨 작품이 설마 「만화 왕국」 일본에 역수출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대표작은 2년전 18권으로 완간된 SF물 「레드 문」. 1993년부터 연재잡지를 옮겨가며 8년이상 장기연재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밖에 소년 액션물 「슈퍼 트리오」(전5권), 순정물 「굿바이 미스터 블랙」(전5권) 등이 그가 특히 애정을 갖고 있는 작품들.
일상 생활에서 겪는 사소한 일들을 거대한 이야기로 발전시키는 게 그의 만화 스토리 구상법. 대표작 「레드 문」에 나오는 민족간 종교 갈등은 이웃 집 아주머니들이 종교가 달라 말다툼하는 장면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그는 현재 일본어판 「이씨네집 이야기」, 「천국의 계단」, 그리고 또 다른 만화 월간지에 「B.S.T」등 3개 연재물을 맡아 서울의 어느 아파트에서 문하생 세사람과 함께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하며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잡지 편집자들사이에 「마감에 관한 한 최후의 보루」로 꼽힐 정도로 마감 시간을 잘 지키는 작가로 소문나 있다.
지난해 「레드 문」을 완결하고 출판사 양해를 얻어 한달 휴가를 떠난 것이 만화계에 작은 화제가 됐을 정도. 작가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만화계에서 그가 오랫동안 최고의 작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같은 프로 정신이 담긴 그의 작품은 항상 권당 1만부 이상 판매를 보장하고 있다. 이 정도가 팔리는 작가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던 해인 1980년 「소녀 시대」 창간호에 「이오니아의 푸른 별」을 처음 발표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히트작을 연속해서 냈다. 하지만 모두가 「여성 만화가 = 순정 작가」라는 통념에 젖어있는 것을 보고 여성의 벽을 절감했다.
갈등을 거듭하다가 1985년 「우리는 길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를 발표, 화려하고 환상적인 순정만화를 버리고 고통받고 소외받는 인물이 나오는 현실감있는 세계를 보여주었다.
『한동안 독자들이 등을 돌리더군요. 심지어 여성 작가가 만화를 이렇게 험하게 그려도 되느냐며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들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변신이 나의 저력이 됐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지요』
그는 섬세한 감성과 손놀림을 필요로 하는 만화가를 여성이 해볼만한 직업으로 추천하는 편. 단 자기 재능과 만화가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나서 덤비라고 조언한다.
만화가로 성공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 집에서 편하게 일하는 것같지만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마감과 싸우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지난해 만화를 그려서 벌어들인 수입이 1억원이 조금 넘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나눠 쓰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정도지요. 떼 돈 벌겠다는 욕심으로 만화가로 나서는 것은 금물입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직업가이드] 만화가… '문하생' 길 가장 권장
만화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팬시, 컴퓨터 게임 등으로 연결되는 고부가가치 산업. 90년대 이후 공주문화대, 세종대 등 14개 대학에 만화학과가 생길 정도로 인기업종으로 부상하고 있다.
만화가들의 모임인 한국만화가협회(회장 이두호)에는 5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있고 여성 회원은 60여명. 자기 이름을 내걸고 잡지 연재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업 여성 만화가는 40여명쯤 된다.
만화가가 되는 길은 크게 유명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는 것, 대학의 만화학과에 진학하는 것, 만화학원에 다니는 것 세가지가 있다.
전통적인 방법인 문하생 제도는 실기 위주로 현장감을 익힌다는 장점이 있지만 스승의 그림체를 따라하다가 독창성을 잃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대학의 만화학과에 가면 이론은 풍부해지지만 실제 만화 작법을 터득하자면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만화학원은 시설과 커리큘럼이 제대로 돼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황미나씨는 『유명 작가를 잘 골라 문하생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가장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요즘에는 만화 입문서가 잘 나와있어서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도 있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천계영(30)씨가 독학케이스이고 황미나씨도 일체의 문하생 과정을 생략하고 혼자 공부했다. /이민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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