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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에 우리가 사네](9)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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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에 우리가 사네](9)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입력
2000.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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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강은 더이상 세속을 간여치 못하고…강물에 마음이 홀린 사람이 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유(流)이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연(連)이다. 맹자에 나온다. 끝까지 가버린 사람들의 뒷소식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물을 따라간 사람들의 실종사건은 영구미제다. 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강은 상류와 하류 양쪽으로 인간을 유혹한다. 상류의 끝은 시원(始原)이고, 하류의 끝은 소멸이다. 물은 시원에서 소멸 사이를 잇대어 가면서 흐른다. 하류의 소멸이 상류의 시원을 이끌어내서, 신생은 소멸 안에 있다.

그러니 흐르는 강가에서 유와 연은 흐르고 싶은 인간의 자기분열일 뿐, 강물 속에는 다만 진행중인 흐름이 있을 뿐이다. 「흘러가는 것은 저러하구나」라고 공자는 강가에서 말했다. 흘러가는 것은 그러하다. 젊은 날에는 늘 새벽의 상류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류의 저녁 무렵이 궁금하다. 자전거는 하류로 간다. 하류의 끝까지 가겠다. 거기서 새로운 시원과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맹자의 책을 덮어 두어도 좋을 것이다.

잠실구간에서부터는 강의 양쪽 들판으로 공룡 같은 세속도시의 수직구조물들이 가득하다. 한강은 족쇄에 채워져 인간 앞에 무릎을 꿇은 공룡의 표정으로, 이 공룡같은 대도시의 한복판을 기어서 통과한다. 이긴 공룡은 우뚝우뚝 서있고, 진 공룡은 바닥에 엎드려서 흐른다. 이제 한강은 굽이치지 못하고 한강은 여울지지 못한다. 한강은 산모퉁이를 허물어내지 못하고 들판을 적시지 못하고, 굽이침의 저쪽 물가에 반짝이는 모래톱을 키우지 못한다.

상류는 수많은 댐으로 막혔고 도심구간의 유역은 콘크리트 뚝방으로 막혔다. 잠실구간에서 한강의 표정은 동물원 우리에 갇힌 맹수가 구경 온 사람들을 구경하는 표정과 닮아있다. 중생이 병들어서 강이 또한 아프니, 이 강은 유마(維摩)의 강이다. 이 강에 가해진 억압의 총화가 서울이 건설한 문명이고 진보일 수도 있겠지만, 진실로 눈물겨운 것은 이 강의 부자유가 아니라, 그 부자유의 유역을 씻어내리며 기어이 흘러서 바다로 가는 이 강의 생명이다. 강은 아직도 겨울이면 시베리아로부터 새들을 불러들인다. 새들은 영동대교 교각 밑둥 시멘트 바닥

위에 모여 앉아서 강 건너 대도시의 수직구조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새들이 시멘트가 좋아서 그 먼 길을 날아오는 것인지 알 수 없고, 새들의 눈에 비친 이 대도시의 의미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이 강은 아직도 새들이 긍정할 만한 그리움을 키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륙을 건너온 새들의 가슴은 힘세 보였다. 새들이 이 강가에서 벌어진 인간의 역사를 긍정할 리 없으나, 그 가슴 속에서 한강의 추억은 피와 함께 순환되고 있을 것이었다. 날갯짓으로 겨울의 대륙을 건너가는 여정은 멀고도 험했으나, 그리움을 피로 순환시키는 그것들의 목숨은 감미로워 보였다.

강은 바다를 내륙 깊숙히 끌어들여, 바다가 하구로 밀려드는 만조 때 한강은 워커힐 앞까지 부풀어 오른다. 바다의 갈매기들이 역류하는 소금기를 따라 압구정동 앞 강까지 거슬러 올라와서 끼룩거린다. 호기심 많은 갈매기들은 폐허에 흩어진 낱알을 추스리는 고고학자 처럼, 이 번쩍이는 세속도시의 한 복판 강물 위에서 먹이를 쪼고 있는데, 압구정동(狎鷗亭洞)은 그 이름처럼 본래가 내륙 깊숙히 날아오는 갈매기들의 놀이터였다.

잠실구간에서는 도봉산 선인봉이 우뚝하고 서강구간에서는 북한산 노적봉이 우뚝하다. 이제, 산들의 신성(神聖)은 세속도시의 변방으로 밀려나 아득히 멀다. 빌딩의 들판 맨 가장자리에서 선인봉의 골세(骨勢)는 단호하고 가파라서 가히 신성이 깃들만한 위엄을 보이는데, 그 걸출한 봉우리는 늘 신기루처럼 도시의 스모그 속에서 어른거리고, 산은 더 이상 상징의 힘으로 인간의 마을에 간여하지 않는다.

이 산과 강이 조선개국의 엘리트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이 설정한 세계의 중심 축선(軸線)이었고, 산과 강 사이의 서울 들판은 그의 유토피아였다. 그가 불(佛)에서 유(儒)로 세상을 전환시킬 때 그는 새로운 삶을 안아 줄 상징체계를 산과 강에 의탁했던 것인데, 그의 상징 체계 속에서 삶은 강처럼 흘러서 새롭고, 산처럼 우뚝해서 영원할 것이었고, 그 수평과 수직이 교차하는 십자로가 정치권력의 자리였다. 그의 유토피아에서 상징은 현실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다.

도심구간에서 한강은 상징과 결별한 들판을 흐른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수직구조물들의 외곽선 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울은 시카고가 아니고 뉴욕이 아니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빌딩의 외곽선이 끝나는 구간마다 산의 능선들이 나타난다. 상징은 스모그 속에 어른거리지만,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 육안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서울의 가시적 표정은 없다. 여기는 누구의 고향도 아니다. 서울은 어떻게 생긴 마을인가. 태백산맥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듯이 서울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산의 높이는 다만 숫자로 표시되는 해발고도일 뿐이다. 가시적 풍경 속에서, 강북 쪽에서는 남산타워가 가장 높고 강남 쪽에서는 63빌딩이 높다. 이 높이는 성(聖)과 결별한 속(俗)의 높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3빌딩은 하늘을 향해 합장한 거대한 손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남산타워는 찌를 듯이 높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 세속도시에도 기원할 일들은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것들은 그것들이 몰아내버린 상징의 부활을 기원하는 것 같았다. 누구의 고향도 아닌 이 강가가 당신들의 고향이다. 여의도를 지나서 강물은 느릿느릿 하류 쪽으로 간다. 한강가에서 자전거의 속도는 강물처럼 느리다. /김훈 편집위원

■[자전거기행] 밤섬의 역사

밤섬은 여의도 개발의 제물이 되어, 1968년 2월10일에 폭파되었다. 여의도 북쪽 기슭을 압박하는 강물의 흐름을 거세하기 위한 대수술이었다.

한강의 수만년 흐름은 1968년에 바뀐다. 단군이래 최대의 토목공사가 벌어졌다. 여의도에 윤중제가 건설되었고 한강강변도로와 마포대교가 착공되었다. 폭파와 건설은 군사작전처럼 전개되었다. 밤섬을 헐어내서 윤중제를 세우는 공사는 매스컴의 요란한 축복 속에 5개월 만에 끝났다.

불도저와 포크레인의 시대였고,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金玄玉)은 그 개발에너지의 신화적인 정상이었다. 그는 이 토목공사를 「한강정복사업」이라고 불렀다. 그는 한강변에 임시 시청을 차려놓고 공사를 진두지휘했다.

밤섬폭파에 즈음하여 그는 자작시 한 편을 발표했다. 「여기 한강 여의도에 우리의 지혜 열정 의욕 희망, 그리하여 우리의 혼마저 뭉쳐있다…」는 그의 시는 한강 정복을 위한 출정의 노래였다. 이 출정가는 영문으로 번역되어 외국언론기관에도 배포되었다.

밤섬에 사람이 거주한 역사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경영하던 목장이 있었다. 섬주민들은 누에치기, 어업, 조선업을 생업으로 삼았다.

마포 쪽으로 나루를 내어 뭍을 드나들었다. 김정호는 「대동지지」에서 「밤섬은 전체가 수십리의 흰 모래밭이다. 주민들은 매우 부유하고 번창하다」라고 기록했다. 그와 거의 동시대의 대사헌 김재찬(1746-1827)은 밤섬의 삶의 풍경을 「밭 가운데서도 조개를 캐고, 울타리 아래로 배가 닿는구나」라고 노래했다.

밤섬은 강물 속의 섬이다. 내륙이면서도 육지가 아니다. 뭍과 매우 가깝지만, 알맞게 떨어져 있다. 밤섬은 적당한 격리감으로 아늑하다.

이 거리가 삶을 윤택하게 하고 풍속을 자유롭게 했던 모양이다. 명종실록에는 「밤섬의 사람들은 홀아비나 과부가 생기면 따로 혼처를 구할 필요없이 동거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배를 타고 강물을 건너 섬을 드나들 때 남녀가 서로 껴안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밤섬이 폭파되자 이 아름다운 섬의 후손 400여명은 섬을 지켜주던 수호신의 사당을 앞세우고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했다. 섬은 새들의 마을이 되었다. 높은 곳이 모두 깍여나간 섬은 이제 홍수 때마다 물에 잠긴다.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퇴적물들이 이 섬에 쌓여서 섬의 토양은 새로운 활기를 찾아간다. 새들의 땅은 비옥해져가고 있다. 사람이 때려 부순 섬을 흐르는 강물이 살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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