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무엇이기에 왜 이다지도 제 인생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일까요』자신의 긴 머리를 가위(결국 가위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로 싹둑 잘라내는 강렬한 퍼포먼스(1990년 「거울 속의 여행」)로 첫 개인전을 시작해 무당에게서 배운 사성으로 필연(畢姸) 지숙(止淑) 말연(末姸) 남희(男希) 필남(必男) 끝순 꼭지 섭섭이의 이름을 몇시간이나 불러댈 때(94년 「도박전」)는 아무래도 신기가 오른 것이 아닐까 섬뜩한 생각마저 들게 했던 행위예술가 안필연(40) 경기대 교수.
덕수궁 분수대에 들어가 빨래를 하며 역사의 묵은 때를 씻어내는 퍼포먼스(99년 「소통과 불통전」)에서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서늘했다. 그러던 그가 최근 행위예술가로서의 이름을 잠시 접고, 자신의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충만한 기운을 땅에 쏟는 데 몰두하고 있다.
작년 그는 분당 시그마Ⅱ하우스텔의 「큰길의 문」 「빛의 샘」 「맞춤풍경」을 비롯, 전주 월드컵 주경기장내 온뜰 환경조형물 「낙수」 「월드컵폭포」 「바람나무」 「폭우」 등의 환경조형물을 완성했다. 최근엔 12대 1의 경쟁을 뚫고 과천시 「새천년 기념조형물」 공모에도 선정됐다. 96년 LG패션회사 신사옥 내부에 설치한 「날으는 만화경」을 시작으로 그가 이제까지 완성한 내·외부 조형물은 20여개에 이른다.
『나의 혼을 빼놓았던 바람과 맞부딪칠려면 땅의 기운밖에 없다 생각했지요. 극단 무천의 야외극장과 그옆에 환경조형물을 만들러 죽산에 간 날이었어요. 바람이 무척 불어 입고 간 옷이 날아가 버릴 것 같고, 귓가엔 윙윙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나를 붙잡았지요. 어떻게 하면 저수지를 휘몰아쳐 불어오는 바람을 그 땅위에 한바탕 훼기쳐, 잠재울 수 있을까 생각했지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땅의 기운을 빨아들이려 금속성의 대형 하수도 배관용 강관을 설치하고 야외극장은 우레탄 막으로 쌌다.
죽산 야외극장의 환경조형물 외에 98년 완성한 서울 강서구 쌈지공원내 조형물 「동쪽을 여는 열쇠」, 강서구청 매화공원내 조형물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평택 안중면 현화리 늘푸른 아파트내 야외극장 「문이 있는 극장」과 그에 속한 조형물 「열려라 참깨」 등에서도 그의 작품 화두는 드센 바람의 기운을 땅의 기운으로 눌러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땅의 기운만으론 부족한 것을 깨닫고 그는 유리를 매개체로 선택했다. 『특별히 유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깨지는 특성 때문이에요. 유리로 환경조형물을 만들겠다고 하면 시공업체 사람들은 대부분 반대하지요. 깨지고 다치고, 또 사람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죠. 하지만 유리의 속성을 잘 몰라 하는 말입니다. 섭씨 1,350도에서 서서히 냉각한 유리는 다이아몬드 칼로만 잘라집니다. 유리가 주는 공포감, 긴장감이 저는 좋아요. 낮에는 빛의 반사를 통해 유리의 양감과 깊이감을, 밤에는 내부의 빛을 감싸고 있는 얇은 표피로 화려함을 던져주고 싶어요』
5개월 전 완성한 분당 하우스텔의 환경조형물은 유리의 장점이 무엇인지 일반인들에게도 잘 말해주고 있다. 다양한 색채를 발산하는 유리구슬을 금속의 프레임 속에 넣어 만든 「빛의 샘」은 맑고 투명한 유리의 진솔한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스스로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큼 좋아하고, 돈벌고 싶어 일한다는 안필연씨. 그러나 그녀와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이라면 그녀가 돈 욕심 이전에 늘 작품 욕심이 앞서 있음을 알고 있다. 처음에 정한 재료나 공법으로 프로젝트를 끝내면 큰 돈을 벌 수도 있으련만 그녀는 작품 욕심으로 인한 변덕 때문에 큰 돈을 벌기는커녕, 늘 예산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땅에 홀려서, 바람에 넋이 나가, 유리의 영롱함에 몰입된 채 그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새롭고 재미난 것이 무엇인가 늘 좇고 있다. 그 새로운 일 중엔 잠시 환경조형 일을 접고, 7월 호주 아들레이즈 현대미술관 개인전, 4~8월 동양 12개국 72명작가가 참여하는 「페스티벌 오브 비전」의 종합예술제 참가도 기다리고 있다. 안씨는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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