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오페라단·합창단의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국립극장 전속이던 세 단체는 문화관광부 방침에 따라 지난해 12월 30일로 각각 재단법인 등록을 마치고 국립극장에서 독립했다. 자생력을 시험받게 된 것이다. 둥지도 예술의전당으로 옮긴다. 거기 상주단체로 가는 것이다. 어떤 조건으로 가느냐를 놓고 양측이 이번 주부터 협의에 들어간다. 이달 안에 상주단체 계약을 마무리짓는대로 바로 이사할 예정이다. 계약 조건은 예술의전당 연습실과 사무실, 극장을 무료로 쓰는 대신 공연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국립극장에는 국립극장의 모태인 국립극단과 전통예술 분야인 국립창극단·국악관현악단·무용단만 남게 됐다.국립극장의 이러한 구조조정은 전국 시·도립 공연장과 거기에 속한 예술단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서울시에서 독립한 세종문화회관은 산하 9개 단체 중 서울시향부터 올해 안에 재단법인으로 분리할 계획이다.
문제는 공연계의 지진을 일으킬 이처럼 큰 변화를 문화부가 비공개로 후다닥 해치웠다는 점이다. 세 단체의 독립·이전설은 국립극장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1998년부터 소문이 무성했지만 아무런 공개 논의도, 발표도 없었다. 문화부는 국립극장이나 예술의전당과 공식 협의를 거의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1999년 12월 중순 일방적으로 이를 통보했다. 소문에 휘둘려 새해 공연계획도 확정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던 세 단체는 새해부터 국립극장을 떠나라는 갑작스런 지시에 부랴부랴 법인화 절차를 밟았다. 한국음악학회와 음악평론가협회는 5일 성명을 발표해 문화부의 이런 태도를 「행정 편의주의」라고 비판하면서 합리적인 의견 수렴을 요구했다. 문화부는 10일에야 비로소 『세 단체가 독립법인이 됐으며 예술의전당으로 간다, 현재의 단장들이 예술감독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어쨋든 일은 저질러졌다. 이제 관심사는 세 단체의 독립 실험이 성공할 것이냐이다. 이들은 여전히 국가 예산 지원을 받는 국립단체이지만, 동시에 독립법인으로서 운영은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전에는 나라에서 준 돈만 갖고 움직여야 했고 공연 수익이 생겨도 국고로 들어갔다. 벌어봤자 내 돈이 아니니 굳이 열심히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대충 때우기식 공연이 없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다르다. 나랏돈 말고 따로 외부 협찬이나 후원금을 끌어다 쓸 수 있고 표를 팔아 번 돈은 그 단체 것이 된다. 또 1년 단위로 끊어지는 정부 예산회계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2년 3년 이상의 장기계획을 짜는 것도 가능해졌다. 공연의 질과 재정이 좋아질 바탕이 마련된 셈이다. 예술단체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점에서도 이번 구조조정은 일단 바람직한 방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과정과 방식을 문제삼지 않는다면.
그러나 독립 원년인 올 한 해 살림살이는 더 쪼들릴 것 같다. 세 단체의 올해 예산은 공연 제작비와 인건비를 합쳐 발레단 18억, 오페라단 10억, 합창단 17억원으로 작년(발레단 19억, 오페라단 10억, 합창단 12억)과 비슷하다. 공무원 월급 인상에 맞춰 인건비가 약간 늘었을 뿐 제작비는 거의 그대로다. 국립극장에 있을 때는 무대장치나 의상을 국립극장 예산으로 만들었지만 예술의전당으로 가면 따로 돈을 들여야 한다. 결국 제작비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계산인데, 예산은 그대로이니 공연회수를 줄이지 않는 한 부실 공연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예술의전당 측은 이 점을 염려하고 있다. 시설은 공짜로 빌려주고 이익은 커녕 적자만 떠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가운데 세 단체의 예술의전당 시대가 막을 올렸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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