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인간은 때때로 극복하기 어려운 역경과 고통에 처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페스트로 인한 재난의 상황(제시문 A)에서 고통받는 오랑 시(市) 주민들의 사고와 행동이 나타난다. 제시문 (가), (나), (다)의 세 인물(기자 랑베르, 신부 파늘루, 의사 리유)이 각각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을 정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지어 비판적으로 논술하라.[제시문]
(가)랑베르는 몹시 흥분해서 말했다. 그는 파리에 아내를 두고 온 것이었다. 사실 정식 아내는 아니었지만 아내나 마찬가지였다. 시가 폐쇄되자 그는 곧 아내에게 전보를 쳤다.
처음에는 그저 일시적인 것이려니 하고 편지 왕래나 할 방도를 궁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랑의 동료기자들은 자기들로서는 아무 방도가 없다고 말했고, 우체국에서는 상대도 하지 않았고, 도청의 한 여자 서기는 그에게 콧방귀를 뀌었다. 마침내 그는 두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만사 순조로움. 곧 다시 봅시다」라고 쓴 전보를 한 장 접수시킬 수 있었다. …(중략)… 『이건 그야말로 인도적인 문제입니다.
서로 마음이 잘 맞아서 살고 있는 두 사람에게 이러한 이별이 어떤 건지를 아마 선생님께서는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리유는 금방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자기도 그걸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랑베르가 아내와 다시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다시 결합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바이지만, 포고와 법률이 있고 페스트가 있으니, 자기의 역할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지요』 입맛이 쓰다는 듯이 랑베르는 말했다. 『선생은 이해하지 못해요. 선생님 말씀은 이성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추상적이십니다』 …(중략)… 『아! 알겠어요』랑베르가 말했다. 『공적인 일이라는 말씀이시죠. 그러나 공공복지도 개개인의 행복으로 성립되는 것입니다』
(나) 그 달 말경에, 우리 시의 고위 성직자 측에서는 집단기도주간을 설정함으로써 그들 특유의 방법으로 페스트와 싸우기로 결정했다. 대중 신앙심의 표시가 담긴 이 행사는 일요일에 페스트에 걸렸던 성(聖) 루가에게 드리는 장엄한 미사로 끝맺기로 되어 있었다. 그 기회에 파늘루 신부는 강론을 위촉받았던 것이다.
…(중략)… 『그렇습니다. 반성할 때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일에 하느님을 찾아뵙기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서너 번 무릎을 꿇는 것으로 여러분의 그 죄스러운 무관심에 대한 대가를 하느님께 갚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미지근하지는 않으십니다. 그처럼 드문드문 찾아뵙는 관계 정도로는 하느님의 넘쳐흐르는 애정을 만족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중략)…
그것은 확고하게 악을 선으로 변화시키는 신의 뜻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도 또 다시, 죽음과 고뇌와 아우성의 길을 통해서, 그 빛은 우리들을 본질적인 침묵으로 이끌어 가며, 모든 생명의 원천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광대무변한 위안입니다. 나는 이 위안을 여러분에게 가져다주고자 했습니다. 부디 여러분은 이 자리에서 응징의 언사를 듣고 돌아가시는 데에 그치지 말고 여러분을 진정시키는 「말씀」도 잘 듣고 가시기 바랍니다』
(다) 『그래도 선생님은 파늘루 신부처럼 페스트에도 그것대로의 유익한 점이 있어서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고 여기고 계시겠죠!』 리유는 답답해서 머리를 흔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병이 다 그렇죠.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 있는 것은 페스트에도 역시 있습니다.
하기야 몇몇 사람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구실도 하겠죠. 그러나 그 병으로 해서 겪는 참상과 고통을 볼 때, 체념하고서 페스트를 용인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눈먼 사람이나, 비겁한 사람의 태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리유는 어조를 높였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타루는 그를 진정시키려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중략)… 『결국……』 의사는 말을 계속하려다가 타루를 물끄러미 보면서 또 주저했다. 『당신 같은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세요? 그러나 세계의 질서는 죽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니 만큼, 아마 신으로서도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편이 더 낫고, 신이 그렇게 침묵하고 있는 하늘만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 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논술 해설] 인문계열 수험생 대상으로만 치러진 2000학년도 서강대 정시모집 논술고사에선 「고통과 역경에 처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주제로 수험생 자신의 견해를 펼칠 것을 요구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중 고통의 상황에 놓여진 인물들의 사고와 행동이 나타나는 부분을 제시문으로 준 뒤, 제시문에 나타난 세 인물(기자 랑베르, 신부 파늘루, 의사 리유)이 각각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을 정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수험생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지어 비판적으로 논술하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인간이 역경을 대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고난의 상황에 각각 달리 대처하는 소설 속 세 인물의 입장을 정확히 파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그 중 어느 입장이 자기에게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 설득력 있게 논술할 것을 주문했다.
나아가 수험생들은 서로 대조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세 인물을 통해, 이 입장들이 서로 양립할 뿐만 아니라 보완될 수도 있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답해야 했다.
각각 다른 입장과 역할 때문에 누구의 태도가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무엇보다 수험생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포괄적으로 반영된 답안을 요구했다.
고전(古典)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읽기 능력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표현능력을 검증하는데 출제 의도가 있다. 제시문을 정확히 읽고 분석해야만 좋은 답안을 낼 수 있도록 구성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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