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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울림으로 되살아온 하얼빈 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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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울림으로 되살아온 하얼빈 총성

입력
2000.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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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이기웅 편역

열화당 발행, 8,000원

『성명, 나이, 직업, 신분, 주소, 본적지 그리고 출생지를 말하라』 『이름은 안응칠, 나이는 서른한 살, 직업은 포수, 신분은…, 주소는 평안도 평양 성외(城外)이고 본적지와 출생지는 주소와 같다』 1909년 10월 30일. 하얼빈 일본제국 총영사관.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안중근은 일본 관동도독부 검찰관 미조부치 타카오(溝淵孝雄)와 마주 앉아 있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체포된 지 나흘 만이다.

책은 표지며 판형부터 예사롭지 않다. 미술책을 번듯하게 내기로 이름 나 있는 열화당에서 만들었다지만 이번 편집은 읽는 사람을 잠시 압도할 정도다. 표지 하나 가득 메운 책 제목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재생지를 사용한 350여 쪽의 두툼한 분량. 씻은 듯한 얼굴의 신간이 아니라 마치 하나 가득 비장한 결의를 담은 두터운 종이 다발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용은 읽는 이를 더욱 제압한다. 책은 일본 관동도독부 뤼순(旅順) 감옥에서 1909년 10월 30일부터 이듬해 1월 26일까지 모두 11차례 검찰관이 진행한 피고인 안중근에 대한 신문기록과 그의 두 동생 정근, 공근에 대한 참고인 신문기록이다. 또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까지 재판장 심리로 6차례 연 피고인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에 대한 공판기록을 담고 있다.

『체포됐을 때 이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피고는 신에게 감사한다며 가

슴에 성호를 그었는가』 『그렇다. 그후 나는 대한만세를 불렀다』 『피고는 현재의 처지가 되어, 이 사진(처와 아이 둘)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가』 『별반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삼 년 전부터 국민의 진의를 성명하기 위해, 만약 자주적인 군함과 병력이 있으면 이토를 쓰시마 해상에서 맞이하여 저격할 희망으로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눈물을 삼키고 있었는데, 이번에 겨우 그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나의 이번 행위는 나 일개인의 생각 뿐만 아니라 한국 이천여 만 동포의 대표로서 결행한 것이다』

문물개화의 힘이 허약한 나라를 계발해주기 위해 일시 통치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앞세우며 안중근을 설익은 정치범으로 몰아붙이는 일본 검찰관과의 논쟁, 조선 말까지 중국에 딸린 나라 취급을 받던, 그래서 한민족은 독립의 역사란 거의 없다는 폄하에 맞서 민족을 옹호하고 거사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안 의사의 육성이 책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의 의거야 모를 사람 없고, 전기마저 허다한 데 이 책이 왜 이다지도 새로운가? 기록의 힘 때문이다. 번역에 잘못이 있을 가능성을 빼면 오차 없는 진실한 역사의 현장이, 담대한 민족혼의 기백이 책에는 살아있다. 일본 제국주의에게서 독립한지 50여 년, 지난 세기의 일을 두고 이리도 가슴 뛰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한 번 더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답은 이 책의 첫 장을 열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벤처 창업의 꿈을 불태우는 청년들에게, 주식 투자로 수십 억 돈 벌기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침침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고시 공부에 파묻힌 대학생들에게 뤼순 감옥 사형대에서 서른 둘에 스러져 간 꼭 90년 전 이 땅 한 젊은이의 외침이 들려온다. 겨울과 봄 사이 겨울강의 얼음장 깨지는 소리같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이기웅 열화당 사장

선각들의 육성을 그대로 들려줄 터…이기웅 열화당 사장 인터뷰

『나는 조금 흥분하고 있다』 이기웅(李起雄·사진) 열화당 사장은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를 내놓으면서 10일 그렇게 말했다. 왜 이런 책을 냈느냐고 묻자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아까운 전쟁이기 때문이다. 애국청년 안중근은 일본에 분개하고 만 것이 아니다. 동양과 세계의 평화를 생각했고, 조선의 비극적인 현실을 헤쳐나가려는 의지를 품었다. 대단히 폭넓게 아시아 정세와 세계 변화를 파악하고 국운을 읽어 간교한 정치가를 쏘아 죽이고 아주 조리있게 법정 투쟁을 벌였다』

이런 발간의 뜻은 책 서문에도 들어있다. 「하얼빈에서 한 발의 총성으로 이토의 죄를 성토하여, 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안 의사를 이어, 이제 우리가 온몸으로 온 정신으로 그 전쟁을 치러내야 한다」.

『공무원과 정치가를 만나면서 느꼈다. 교수들은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지 모르겠다. 민족의 운명이나 국가의 앞날을 풀어갈 의식이나 규범이 무엇이 있는가?』 그런 안타까움 때문에 이런 가공하지 않은 1차 자료의 발굴을 앞으로 계속하겠다고 한다. 도산 안창호의 공판기록과 강연록, 장준하와 함석헌의 육성을 덜고 더함이 없이 그대로 전하려는 계획이 이 사장의 머리 속에 그려지고 있다. 보기에도 선연한 글꼴과 편집 몇 가지는 벌써 준비해 두었다. 책 내용만큼 편집도 강한 인상을 주어야겠다는 심정이다.

『슬프다. 안일함과 무기력함,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점점 더해 가는 비인간적 개인주의, 방만한 소비생활, 자연파괴, 그리고 줏대없이 부유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행태를 볼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안 의사의 혼과 정신이 커다랗게 느껴진다』.

엊그저께 서점에서 이 책을 본 한 정훈장교가 전화를 걸어 단체 구입방법을 물었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을 많은 젊은이들이 전투적으로 읽어 그들이 용기를 회복하고 자신있는 삶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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