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 손창현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으로서 상징을 통해 정보나 의견을 주고 받는 행위이다. 인간은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회적 삶을 영위해 나간다. 여기서 미디어는 정보를 시공간적으로 이동시켜 주는 매개물 역할을 한다. 앞으로 다가올 21세기를 디지털시대라고 할 만큼 정보통신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예고되고 있다. 20세기를 주도하였던 신문과 방송은 이제 양적, 질적면에서 훨씬 고도의 능력을 가진 뉴미디어들에 의해 그 영역이 침식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매스미디어가 지배하였던 산업사회가 집중화, 표준화, 그리고 대중화시대였다면, 새로운 미디어가 지배하는 사회는 분산화, 탈대중화를 지향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뉴미디어의 기술적 특성인 모든 전파신호의 디지털화, 영상화, 그리고 상호작용성으로 인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소모되지 않는 무한의 자원인 정보를 생산, 분배하기 때문에 정보의 상업화를 가져올 수 있다.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제공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상호 의사전달이 용이하게 해 준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수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혜택의 범위가 커졌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보를 선택, 관리하는 주도권이 송신자에서 수용자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수용자가 커뮤니케이션의 생산자, 주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렇게 낙관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정보문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뉴미디어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배가시키는 하나의 도구여야 하고, 정보화사회의 사용자들이 능동적 주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뉴미디어들이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들보다 더 많은 정보와 그 처리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칫 주체를 상실할 수동적 객체가 되기 쉽다. 결국에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게 되고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마저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여기에 개인의 정보가 상업적인 목적이나 정치적 목적에 의해 마구 유린될 소지도 안고 있다. 이는 최근 개인의 병원기록이니 쇼핑기록 그리고 주민정보 등이 나돌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사회통합도 점점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다매체, 디지털 시대 사람들을 자기의 관심에 따라 편향된 생각과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정보기술에 바탕을 둔 정보문화는 앞으로도 그 기술적 합리성에 의해 그 소구력이 더욱더 커진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개인 각자가 정보화사회의 내면적 의미를 분명히 인식하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그것은 새로운 사회철학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정보기술의 유용한 활용은 기술적 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철학과 사회지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수1 한송이
휴대폰, 홈페이지, E-메일, 국민PC보급, ADSL… 초기 정보화 사회를 겪고 있는 1999년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들이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어휘들이 지금은 친숙하게 쓰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현재를 정보화 사회로 여기고 있으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보화 사회 속에서의 삶의 모습, 즉 「정보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을 것이다.
산업 사회의 「도서 문화」와 「정보 문화」사이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커뮤니케이션의 방향성에 있다고 본다. 제시문에서 언급한대로 커뮤니케이션은 인간과 사회의 성장과 발달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핵심요소이고 인간 존재의 기본 요건이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도서 문화」는 한방향으로만, 단순한 전달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정보 문화」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PC통신등을 이용하여 정보 전달뿐 아니라 「참여」와 「정보 창출」까지 가능한 것이다. 즉, 수동적인 문화 수용자에서 능동적인 문화 생산자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참여를 통해 간접 민주정치를 보완하여 좀 더 실질적인 민주 사회를 만들 수 있으며 거대한 기업에 맞설 수도 있으며, 사회의 부당한 점들을 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사회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또한, 정보끼리의 교류를 통해 더 나은 정보가 만들어지기도 할 것이다.
또 다른 정보 문화의 특성은 공유성이라 할 수 있다. 제시문에서처럼 정보 문화는 넓은 공간에서 정보 유통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다른 이의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얻기도 하여 정보가 공유되는 것이다. 과거의 정보 독점에 따른 특권 의식이 사라지고 평등 의식이 확산될 것이다. 또, 공유를 통한 연대감, 유대감으로 인간 소외 문제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 공간, 돈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정보 문화」의 특성은 협력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 된다. 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신뢰와 이해가 필요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실된 마음가짐과 정확한 정보로 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인다면 장밋빛 「정보 문화」가 그려질 것이다.
■우수2 김한성
쿠텐베르크에 의한 인쇄술의 발전은 책을 대량 생산하여 대중화시켰다. 민중들은 손쉽게 책을 읽게 되었고, 책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었다. 인쇄술의 발전이 시민 혁명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요즘은 책의 기능이 컴퓨터의 기능으로 전환되는 시기다. 따라서 새로운 「정보문화」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매우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인쇄기술을 기초로 하는 「도서문화」에 대비되는 「정보문화」의 특성으로 쌍방향성을 들 수 있다. 과거 도서문화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제공하였던데 비해 정보문화는 지식 제공자와 수혜자가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정보문화의 파급효과는 도서문화에 비해 크다. 컴퓨터로 대표되는 정보 통신기기가 널리 대중화되어 있고,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이 매우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정보문화의 쌍방향성은 대중이 정보를 수용함과 동시에,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특성이다. 예를 들어 PC통신 소설에서 작가는 대중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대중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정보 문화의 쌍방향성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정보문화」는 대중의 권리를 확대시켜 준다는 점에 긍정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보문화의 쌍방향성의 부정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최근에 일어났던 거짓고발사건이 그 예이다. L회사에 불만을 품은 한 고객이 L회사가 탈세했다고 인터넷에 거짓 고발하자 네티즌들은 사실 확인없이 불매운동을 벌였다. 또한 익명성을 이용해서 연예인들의 포로노 합성사진을 인터넷에 게시한 행위 역시 쌍방향성을 악용해 타인의 존엄성을 훼손한 경우다.
정보 문화는 인간 생활의 편리성을 추구한 문화이므로 기술적으로 긍정적인 성격을 띤다. 하지만, 민주시민의 자세를 지키지 못할 때 정보문화의 앞날은 불투명한 것일 수밖에 없다. 민주시민의 양심에 따라 정보문화를 이용해 나갈때 정보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 할 수 있다.
■[논술강평] '뉴미디어'에 초점 논제 훌륭히 소화
손동현
인쇄술에 기초한 「도서문화」와 전자통신기술에 기초한 「정보문화」를 비교하여 그 특성을 대조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간략히 다룬다 하더라도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할 것이다. 또, 이 새로운 「정보문화」에 대해 평가적 전망을 한다는 것은 고교생으로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출제자는 정보문화가 갖는 여러 특성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 두 가지 것만을 중심으로 논술하는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 여러 특성 중 한 두 가지는 교과과정을 통해서, 또는 교과 외의 독서를 통해서 숙지하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보문화의 특성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들을 도서문화의 그것과 비교하여 간략히 열거해 보자. 그것들은 대체로 이른바 「뉴미디어」라고 불리는 정보전달 수단의 기술적 속성에서 비롯하는 것들이다. 우선 책을 통한 지식의 전달 및 확산에 기초하는 도서문화에서는 지식전달의 속도가 느리고 그 방향이 일방적이며 그 지식의 성격 또한 고정적 지속적인 것이다.
이에 비해 볼 때 정보문화에서는 정보의 전달 및 확산이 신속 광범하며 그 방향성 또한 일방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얼마든지 쌍방적일 수 있다. 유통되는 정보의 성격도 가변적 유동적이고 그 유효성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도서문화에서는 지식에 접근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용이한 것이 아니었으나 정보문화에서는 정보에의 접근이 누구에게나 가능해진다.
정보문화에서는 정보의 양도 도서문화에서의 지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증한다. 정보의 개방성과 다량성은 공유가능성을 높혀주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정보문화에서는 또한 도서문화에서와는 달리 정보의 쌍방향적인 유통에 있어 기술적으로 익명성이 가능하고 또 인간적인 친교가 이 익명적인 의사소통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의 의사소통도 기술적인 허점으로 인해 공개적으로 유포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해둘 만하다.
이러한 정보문화의 특성들은 여러 측면에서 인간의 생활에 반영될 것이고, 그 새로운 변모는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정보가 많은 사람에게 신속히 전달되어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얻을 수 있다면 이는 사회의 개방화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정보의 흐름이 쌍방향적이라는 측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무가치한 정보가 양산되어 정보의 지나친 풍부성이 판단에 혼란을 가져오고, 익명성 때문에 가능해진 부도덕한 내용을 담는 무분별한 정보제공은 사회의 건전한 기풍을 위협할 수도 있다. 또, 정보에 대한 접근 가능성이 더욱 높아져 정보의 공개성 공유성이 커진 점도 부정부패의 은폐를 어렵게 만드는 긍정적인 결과도 가져오지만, 개인적 사생활이 침해받을 수 있는 위험성도 높인다. 이른바 「해킹」이라는 것도 문제고, 잘못된 중앙통제에 의한 인권유린의 가능성도 문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 밖에도 더 많은 내용이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특성을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보고 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느냐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주 논술은 그 내용이 서로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예심을 거쳐온 글들은 대체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논술의 초점을 「뉴미디어」의 특성에 맞춰 논제를 잘 소화해낸 손창현(우신고)의 글을 이번 주 최우수작으로 뽑는다.
손군의 글은 도입 부분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논술의 방향을 잡고 있으며, 본론에서의 내용이 다소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춰 논술문 전체의 구성을 잘 도모한 점도 돋보인다. 결론에서 기술적 합리성은 올바른 사회철학적 조향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 또한 본론에서 서술한 자신의 생각을 격상시키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어법상의 잘못을 지적하면, (많은 학생들이 마찬가지지만) 복수형 어미 「들」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점은 개선되어야 한다. 이 점을 포함해 문법적으로는 형식상 맞는 문장이지만 어휘의 의미연관이 적절하지 않은 문장으로 『그런데 뉴미디어들이 인간들보다 더 많은 정보와 그 처리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라는 문장이 있다.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 검토해 보기 바란다.
정보문화의 특성 중 주요한 것으로 의사소통의 쌍방향성과 정보의 공유성을 들어 이에 대해 논술하는 한송이(울산여고)의 글을 우수작 1로 선정한다. 일상의 친숙한 현상들에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글의 서두를 시작한 점은 좋았으나, 신뢰와 이해를 통한 협력을 말한 결어는 다소 진부하다. (이를 표현한 문장 『위에서 제시한 「정보문화」의 특성은 협력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 된다』도 바로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의미연관이 적절한 어휘로 짜여지지 못한 또 다른 예이다)
우수작 2로 뽑힌 김한성(대원외고)의 글은 의사소통의 쌍방향성이라는 한 가지 특성에 집중시켜 자신의 견해를 폄으로써 내용을 비교적 분명히 잘 드러내고 있다. 형식상으로도 서두와 결말을 잘 관리한 무난한 글이다.
■[논술고사의 실제] 입선자 명단 (6명)
포항제철고= 김선호 오금고= 정유정 동경 세이센국제학교= 정연경 백암고= 김용진 이주연 과천고= 조효정
■[논술주제] 1월18일자
(문제) 다음 글은 조선 초기 문장가 권근의 수필 『주옹설(舟翁說)』 가운데 일부이다. 여기에는 뱃사람 노인의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비유적으로 담겨있다. 이 제시문을 참고로 하여,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삶」이라는 주제로 논술하시오. 아울러, 오늘날의 현실에서 자신의 주관에 따라 행동하며 사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함께 서술하시오.
(제시문) 아아, 손(客)은 생각하지 못하는가? 대개 사람의 마음이란 다잡기와 느슨해짐이 무상하니, 평탄한 땅을 디디면 태연하여 느긋해지고, 험한 지경에 처하면 두려워 서두르는 법이다. 두려워 서두르면 조심하여 든든하게 살지만, 태연하여 느긋하면 반드시 흐트러져 위태로이 죽나니, 내 차라리 위험을 딛고서 항상 조심할지언정, 편안한 데 살아 스스로 쓸모 없게 되지 않으려 한다.
하물며 내 배는 정해진 꼴이 없이 떠도는 것이니, 혹시 무게가 한 쪽에 치우치면 그 모습이 반드시 기울어지게 된다.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끔 내가 배 한가운데서 평형을 잡아야만 기울어지지도 뒤집혀지지도 않아 내 배의 평온을 지키게 되나니, 비록 풍랑이 거세게 인다 한들 편안한 내 마음을 어찌 흔들 수 있겠는가?
또 무릇 인간 세상이란 한 거대한 물결이요, 인심이란 한바탕 큰 바람이니, 하잘 것 없는 내 한 몸이 아득한 그 가운데 떴다 잠겼다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한 잎 조각배로 만리의 부슬비 속에 떠있는 것이 낫지 않은가? 내가 배에서 사는 것으로 사람 한 세상 사는 것을 보건대, 안전할 때는 후환을 생각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느라 나중을 돌보지 못하다가, 마침내는 빠지고 뒤집혀 죽는 자가 많다. 손은 이로써 두려움을 삼지 않고 도리어 나를 위태하다 하는가? (『동문선(東文選)』 중 「주옹설(舟翁說)」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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