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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이제 시민운동가는 선출되지 않은 공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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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이제 시민운동가는 선출되지 않은 공직자"

입력
2000.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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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박원순, '미래의 권력' 시민단체의 얼굴들권력이 국가나 정부의 손을 떠나 본 역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일까. 국어사전은 「권력」을 이렇게 풀이한다. 「남을 자기 의사에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갖고 있는 강제력」. 그 권력이 이제 정부나 국가의 손에서 다시 시민에게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뿔뿔이 흩어져 미약하기 짝이 없던 시민들이 시민단체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를 현실화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행정 사법 입법부와 언론에 이어 제5의 권부로 등장한 시민단체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 두사람이 만났다.

■이석연(李石淵)

54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전북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79년 제23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한 뒤 법제처 법제관 등으로 일하다 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등을 거쳐 94년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경실련 시민입법위원회에 참여,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99년11월부터 경실련 사무총장으로 활동중이다. 「헌법소송의 이론과 실제」 등의 저서를 냈다.

■박원순(朴元淳)

55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경기고 졸업, 서울대 사회계열 중퇴, 단국대 사학과 졸업의 학력을 가졌다. 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구지검 검사를 거쳐 83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80년대 인권 변론을 많이 했으며 95년9월부터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자문위원,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이며 「국가보안법 연구」 등의 저서가 있다. 9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제정한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 흔히 2000년대 최고의 권력은 시민단체에 있다고 합니다. 공직생활을 했고 지금은 시민단체의 핵심인 두 분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박원순 = 과거에는 정부와 시장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양대 축이었습니다만 90년대 들어 사회가 다원화하면서 정부와 시장의 기능만으로는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이 스스로 권익을 찾아나선거죠. 인터넷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 추세는 갈수록 더해질 것입니다.

이석연 = 사회를 통제했던 국가 권력의 힘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시민운동의 성장은 필연적입니다.

◆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변호사 출신이네요.

박원순 = 저야 95년부터 사무처장으로 일해왔지만 두 달 전 이석연변호사가 사무총장이 된 뒤로는 「시민운동을 변호사가 다 말아먹는다」는 농담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현재 참여연대에도 상근 변호사가 있고 환경운동연합에서도 곧 상근변호사가 활동을 시작합니다. 시민운동에 변호사가 느는 것은 우리 사회가 법보다 주먹, 완력에 의존해오다 법에 의해 규율받는 시대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사법연수원에서 예비법조인들한테 강연할 때마다 『생활에 조금 여유가 있다면 시민운동에 뛰어들어보라』고 권유합니다. 아마 5년후에는 수십명의 변호사가 시민단체에서 상근 직원으로 일하게 될 겁니다.

이석연 = 미국서도 변호사들은 시민운동에 많이 참여합니다. 사실 변호사의 기본 역할, 즉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구현은 시민운동의 목표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변호사들이 아직은 그런 활동에 좀 소홀한 것도 사실입니다.

박원순 = 시민의 참여도에서도 아직 초보단계이지요. 시민단체라야 회원이 수백명에서 수만명에 불과합니다. 외국은 웬만한 단체는 회원이 수만, 수십만입니다. 재정 상태도 좋아 시민운동을 일반 직장 업무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완전히 독립운동입니다. 사람들이 시민운동 해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시민운동을 거대한 일로만 보는 시각도 있고요. 소액의 회비를 내고 격려전화 한통 하는 것이 시민운동이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이런 작은 활동들인데 말입니다.

이석연 = 시민운동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참여에는 소극적이지요. 그래서 재정문제가 늘 골치입니다. 경실련은 회원이 4만여명인데 회비를 내는 회원은 30%가 채 안됩니다. 그래서 회비보다 후원금 등에 많이 의존할 수 밖에 없었어요. 시민들이 한푼씩 내는 소액의 회비로 움직여야 시민단체는 제 힘을 내는데 말입니다.

박원순 = 저희는 처음부터 회원은 회비를 꼭 내도록 했습니다. 현재 월 3,600만원 정도의 회비가 들어오는데 경비로 4,000여만원이 지출되니까 재정상태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죠. 카페 운영 등의 수익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상근자들은 여전히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어요. 근본적으로는 시민운동을 지원하는 공공기금이 설립돼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은 공공재단에 모인 돈이 3,600조원이나 됩니다. 이중 기업이 낸 돈은 7%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개인이 냈어요.

이석연 = 사람들이 정치인에게는 돈을 많이 내면서도 시민운동에는 인색합니다. 왜 정치판에 돈을 내겠습니까. 반대급부를 기대하기 때문이죠. 정치판에 내던 돈을 시민단체로 돌리면 정치 개혁에 더 도움이 될텐데요.

박원순 = 올 총선을 계기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들이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투개표 과정의 부정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 저희 시민단체들은 좋은 정치인을 뽑을 수 있도록 출마자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려 합니다. 의정활동을 등한시하거나 재산 축적 과정에 문제가 있는 인사가 함부로 정치에 나서는 일은 막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이석연 = 여든 야든 지역갈등을 조장하거나 반개혁적인 인물이 당선되는 일은 막아야겠는데, 그런 활동을 하자면 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어 고민입니다.

◆그렇다면 직접 시민단체가 후보를 내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석연 = 과거 시민운동권이 연대해 후보를 낸 적이 있었는데 실패했습니다. 국민들은 우리가 정치에 나서기보다는 정치를 잘 감시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박원순 = 후보를 내는 순간, 공정한 관리자로서의 기능을 잃게 됩니다. 또 시민운동을 정치적 발판으로 이용한다는 비난도 쏟아질 것이고요.

이석연 = 총장을 맡은 뒤 상근자들에게 『총선에 나갈 사람은 지금 떠나라』고 했습니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특정 정파와 연대하면 방향성을 잃습니다. _ 김대중대통령이 시민단체들과 가까워서 정부와 거리를 두기가 힘들지는 않습니까.

이석연 = 현정부가 시민운동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옷로비 사건과 관련, 김태정 법무부 장관을 퇴진시키라는 요구를 묵살하는 등 우리의 주장을 외면한 것도 사실입니다. 정부와는 건전한 긴장, 갈등관계를 유지하는 게 올바르겠지요.

박원순 = 정부를 꼭 적대적인 대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긴장 관계를 잃을 때 시민운동은 쓰러지고 맙니다. 다만 시민단체에 회비를 내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간접 지원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석연 = 시민단체에는 엄청난 싱크탱크가 형성돼 있습니다. 정부가 시민단체 인사 몇명을 영입하려 들지 말고 그 주장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박원순 = 동시에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정부의 적절한 감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운동가들은 「선출되지 않은 공직자」이거든요. 도덕성과 정치적 중립성,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어렵습니다. 시민운동 내부에 자기 규제 시스템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요. 미국에서는 모금 전문단체인 유나이티드웨이의 간부가 모금액의 일부를 개인용도로 썼다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시민운동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얼마나 엄격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 시민운동에 뛰어든 뒤 보람이나 큰 성과로 기억할만한 일을 꼽는다면요.

박원순 = 휴대전화 사용에 따른 전파사용료의 폐지를 들 수 있어요. 특별검사제도 참여연대를 포함한 여러 단체가 요구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딸 아이가 『변호사가 되면 돈버는 변호사 되겠다』고 말하더니 요즘은 『나도 시민운동 하겠다』고 합니다. 참 힘이 됩니다.

이석연 = 화장품, 가전제품, 의약품 등은 무자료거래와 이에따른 세금 탈루가 많아 이를 철저히 파헤쳐주도록 관련 당국에 꾸준히 요구한 결과 무자료 거래가 뿌리 뽑히지는 않았지만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앞으로는 경제정의뿐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한 일에도 비중을 두려고 합니다. IMF 구제금융 이후 부의 불균형 등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만큼 우리는 사회적 약자, 노인 장애인 등 소외 계층의 문제에 적극 대처하겠습니다.

박원순 = 회원이 1만명을 넘으면(현재는 6,000여명) 일종의 공동체 운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회원 모두가 각자 위치에서 양심적이고, 사회 정의를 위한 일을 하는 거죠. 예를 들면 행동강령을 만들어 실천하고, 가게를 하는 분들은 「양심가게」를 운영, 지나친 이익을 배격하고 이익이 나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는 등의 일입니다. 회원들만으로 조그만 이상 사회를 만드는 시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시민단체의 힘이라는 것도 결국은 시민 하나하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진행·정리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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