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참혹하다. 전쟁은 인간성까지도 말살한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죽임 당하는 잔인한 서바이벌 게임이다. 살상과 파괴만이 횡행하는 살벌한 전장에서 이성적 판단을 기대한다거나, 인도적 고려를 희망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일인지 모른다.올해가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일어난지 꼭 50년이 되는 해다. 반세기가 흐른 현재까지도 전쟁의 아픈 상처는 아물기는 켜녕 곳곳에서 덧나고 있다. 작년 10월 미국 AP통신 보도로 현재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노근리사건을 비롯, 전쟁참상이 다시한번 조명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는 미군 폭격에 의한 양민피해 사례등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노근리 사건만해도 미군들의 무차별 총격으로 200명이 넘는 무고한 양민들이 떼죽음 당했다. 모두가 개전초 인민군에게 밀리던 급박한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전쟁의 참화 만은 막아야 한다.
모든 전쟁이 다 그러하듯, 6·25도 전쟁터에서만 살상이 이뤄진 것이 아니다. 6일자 한국일보 1면 머리기사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개전직후인 50년 7월초 대전형무소에서 일어난 대대적 살육극은 충격적이다. 피란길에 허둥대던 당국이 대전형무소에서 사흘동안 1,800명의 재소자를 집단처형한 것이다. 대부분이 정치범인 이들은 이적행위 가능성과 피란에 지장이 된다는 이유때문에 처형됐다고 한다.
구랍 16일 비밀분류에서 해제된 미 국립문서보관소의 6·25관련 문건은 다시한번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개전초기 정치범 대량학살에 대한 구체적 물증이 드러난 셈이다. 집단 살육극은 정부가 남쪽으로 밀려 내려가면서 계속됐고 피해자도 엄청나게 늘었다.
제주 「4·3사건」의 유족으로 한맺힌 한 재미동포가 밝혀낸 이 정치범 집단처형사건은 그 진상이 더욱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야 할 것이다. 당시 주한 미대사관 육군무관이 작성한 이 비밀문서엔 현장사진까지 있다고 하니 진상을 밝히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거듭 강조하지만 전쟁은 피아(彼我)나 겨우 식별하는 이분법적 능력밖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인도적 고려나 이성적 판단에 대한 희망은 사치에 불과하다. 반세기가 지난 아직까지도 상흔이 곳곳에서 덧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전쟁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고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6·25가 주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전쟁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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