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를 울리는 노사관계 변화의 신호음이 신선하다. 서울지하철공사 노조가 「무파업」을 선언했다. 배일도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은 4일 『파업행위를 통한 기존의 투쟁방식이 아닌 성실교섭의 원칙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파업을 전제로 한 「벼랑끝 협상방식」 대신 모든 노사문제를 대화로 풀겠다는 것이다. 지하철 노조는 지금까지 연쇄파업과 총파업에 앞장 서면서 민주노총 소속의 강성노조로 인식돼 왔다.새 천년을 맞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 중의 하나가 구태의연한 형태의 노사갈등이었다. 지하철 노조의 변신선언은 노사문화에서 의미있는 변화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강성노조가 2000년대를 맞는 시점에 무파업의 원칙을 천명했다는 출발이 중요한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IMF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잃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얻은 것도 있다는 희망적 사실을 말해 준다.
지난 연말 지하철공사 노사는 2001년말까지 정원 1,621명을 감축하고 4조3교대제 근무형태를 3조2교대제로 전환하는 대신, 임금을 도시철도공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인상한다는 데 잠정 합의한 바 있다. 이 타결안은 오는 11일로 예정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최종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하철 노조는 노조 활동이 그 동안 조합원들의 의사가 무시된채 소수 간부들에 끌려왔음을 인정하고, 시민 생활의 변화를 고려해 운행시간을 연장하자고 제안하는 등 이미 혁신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의 변신 선언은 지난해 4월의 지하철 노조 파업이 가져온 긍정적 결과로 이해된다. 당시 파업은 시민과 여론의 지지를 거의 얻지 못했다. 서울시민들은 연례행사 처럼 되풀이돼 온 지하철 노조 파업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1주일 이상의 불편을 감수했다. 그 후 10월 선거에서 배일도 위원장이 새로 선출됐다. 배위원장은 이번에 『조건이 달라진 시점에서 조합원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노조활동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노조의 정치활동이 보장된 지금 노조활동과 투쟁방식도 달라져야 지지를 얻는다. 전에도 지적한 바 있듯이 당당하게 정치적 발언권을 획득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이제 붉은 머리띠를 벗어 던지고 합리적인 주장과 대안을 펼쳐야 한다. 대신 재계와 정부도 혁신적 발상과 방식으로 답하여 산업평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지하철 노조의 이번 무파업 선언은 후진적 노사정 관계에서 벗어날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과 평가를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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