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불패」의 기록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에 이어 인기 고공비행을 하고 있는 MBC 월·화 드라마 「허준」. 11월 8일 선을 보인 「허준」 은 방송 한 달 만에 가족 드라마로 인기를 끌며 시청률 1위로 올라섰다. 3·4일의 13·14회 방송분은 40%가 넘는 매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허준」 은 조선의 명의 허준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서는 세번째. 흑백 TV 시절이던 76년 MBC 일일드라마로 선을 보인 이은성 극본, 표재순 연출의 「집념」 과 91년 이상현 극본, 이재갑 연출의 MBC 미니시리즈 「동의 보감」도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허준」 의 인기 비결은? 사람들의 잠재된 성공 욕망과 인간의 얼굴을 한 영웅주의를 교묘히 자극하고 있다. 드라마 속 허준(전광렬)은 서얼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며 성공의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간다. 그냥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인물과 경쟁자의 무자비하고 간교한 탄압으로 눈물겨운 시련을 겪는다. 명의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 소외 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지순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적인 면모까지 더해진다. 시청자들은 이러한 허준의 모습을 보면서 부정과 권모술수로 권력과 금력을 잡는 사람들이 많은 현 세태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드라마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선과 악의 대립구조, 좌절과 극복이라는 순환구조는 시청자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드라마 방식이다. 사랑과 의학공부 과정에서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허준과 스승인 유의태의 아들 유도지(김병세). 두 사람은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관심을 끌어들인다. 생각하는 내용의 드라마보다 보기 쉬운 드라마를 선호하는 요즘의 시청자 심리를 최대로 이용한 대목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극으로서는 예외적으로 빠른 템포의 반전이 돋보인다. 4일 14회분처럼 정경부인의 병을 치료하지 못해 곤욕을 치르다 곧바로 반전이 이어지는 등 드라마가 역동적이어서 시청자들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다.
탤런트들의 개성이 어우러진 연기 화음도 이 드라마의 인기를 끌고 가는 원동력. 여성들, 특히 아줌마들의 절대적인 인기를 받고 있는 전광렬의 선 굵은 연기와 중견 연기자 이순재의 강약을 조절하는 내면 연기가 조화를 이룬다. 또 연기력이 좀 부족해 보이는 황수정과 홍충민은 대사를 줄이고 분위기를 강조하는 쪽으로 선회, 초반 시청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한 전략이 주효하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영웅상의 정형성에 얽매여 시대 감각에 맞는 새로운 인물 창출에는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영웅상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하며, 단순한 선악 구조는 이분법적 흑백 논리만을 심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만남/ 허준 역 전광렬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비아냥이 들려왔다. 2000년에 허준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진부한 사극이 잘 될 리 없다는 조소였다. 그러나 강추위에 용인 민속촌 등에서 야외 촬영을 하고 있는 전광렬(42)의 얼굴에는 생기가 돈다. 이를 악물고 연기한 「허준」이 안방을 평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준수한 외모와 당당한 체격으로 권위적인 이미지가 강한 전광렬. 그가 「허준」에서 대단한 변신을 하고 있다. 서자 출신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며 내의원까지 진출하는 인간적인 허준을 표출하기 위해서는 카리스마, 지적인 이미지, 그리고 따뜻한 감성까지 필요하다. 전광렬은 이 모든 요소를 무난히 소화하고 있다. 그동안 전광렬은 상황에 어우러지는 것이 아니라 맞추어 가는 어색함이 있었으나 「허준」에서는 자연스럽다. 『연기자들 상당수가 대사에만 신경 쓰고 지문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데 저는 둘 다 신경을 쓰지요』
여성 팬이 많은 데 대한 나름의 분석. 『자주 출연한 멜로 드라마에서 착하고 좋은 배역을 맡은데다 귀족적인 분위기가 풍겨서일 겁니다』
전광렬은 「허준」이라는 드라마가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가족 드라마로 자리잡은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고 한다.
「허준」 이 끝나면 영화 「러브 레터」 같은 담백하고 순수한 사랑을 그린 멜로 드라마 주인공 역을 하고 싶다며 『36개월 된 우리 아이가 훗날 「허준」을 다시 보면서 「아버지가 최선을 다했구나」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마지막회까지 열정을 쏟겠다』 고 말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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