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대형 뮤지컬 두 편이 신년 연극계에 둥실 떠오른다. 혼돈의 시간들은 현재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가? 지금 우리에게 동물들의 사랑 방식은 무엇을 말하는가?■
일식
-격변의 한국사 무속음악에 담아
한국사 대전환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건져 올린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일식(日蝕)」, 개들의 만남과 헤어짐에서 우리 시대 사랑법을 읽어내는 인터 C&A의 「황구도(黃狗圖)」.
「일식」이 독특하다 함은 우선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방식에 있다. 일식으로 대낮에 사방이 캄캄해졌다. 가로등을 고치러 나간 전기수리공들이 어둠에서 100년 전의 역사를 본다. 구한말의 을미사변, 형장 가는 전봉준, 아관파천의 고종 등 과거의 혼돈상들이 현재의 그들을 붙든다. 이윤택 작·연출.
당황한 수리공들 앞에 펼쳐지는 것이 삼국유사 중 한 장면. 해가 둘 나타난 신라의 혼돈기에 월명은 세상을 위한 노래 도솔가를 지어 바친다. 궁에서 탈출한 아리따운 처자 유실이가 부르는 도솔가에 민비는 비로소 해원, 전기수리공들에게 세상의 빛을 회복하게 한다. 신라의 한이 풀려 조선을 어루만지고, 마침내 오늘을 밝힌다는 역사 인식이 깔려 있다.
뮤지컬하면 얼른 떠올리는 서구 음악적 어법을 배제하고 무속 음악을 도입, 철저히 우리식으로 만들었다. 거의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경기도 당굿 음악을 근간으로 한 작품들이 모두 23곡, 1시간여의 음악.
특히 망국적 상황에 절망하는 고종의 굿거리 장단을 백성과 궁녀가 휘모리로 받는 8분여의 장면은 압권이다. 전통 선율을 디스코 장단으로 마무리짓는 작곡자 원일의 재기가 번득인다. 그는 『브로드웨이식의 뮤지컬에 길들여져 있는 관객들에게는 새 지평으로 다가설 것』이라고 말했다. 하용부 정동숙 등 이윤택의 연희단거리패 50명이 펼치는 악가무의 향연이다. 1월 21~30일 문예회관대극장. 월~금 오후 7시30분, 토 오후 4시 7시30분, 일 오후 3시 6시30분. (02)763_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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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구도
-사람보다 진실한 개들의 사랑그려
때로, 개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황구도」는 똥개 아담과 스피츠 캐시와의 독특한 사랑이야기다. 마당에서 사는 아담과 집안에서 귀염받는 캐시는 엄연히 다른 신분. 신분을 뛰어넘은 둘의 사랑은 수컷 스피츠의 출현으로 깨진다. 아담은 집을 뛰어 나와 거리의 똥개 눈썹을 만나 사랑을 이룬다. 조광화 작, 최용훈 연출.
이번의 음악은 서구 팝 일색이다. 발라드나 라틴 팝 등 모두 17곡을 작곡가 이형주가 썼다. 주요 캐릭터는 각각 테마곡을 가져, 음악만으로도 무대 상황을 짐작케 한다. 영화 「노랑머리」의 이재은, 「주유소 습격사건」의 강성진, 「드라큘라」의 조승룡 등 스크린의 얼굴들과 뮤지컬 배우 전수경 한성식 등 모두 18명이 출연한다. 93년 초연한 이래, 보완을 거듭해 왔다. 23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화·목 오후 7시30분, 수·금·토·일 오후 4시 7시30분, 월 쉼. (02)764_3375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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