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평생 잊지못할 일] "고교졸업후 시작한 오리사육..."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평생 잊지못할 일] "고교졸업후 시작한 오리사육..."

입력
2000.01.05 00:00
0 0

나는 그때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었다.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오리를 키우기로 했다. 동네 앞에는 섬진강 물이 흐르고, 물에는 다슬기며 물풀이며 고기들이 강이 빡빡하도록 살고있으니, 오리를 키우면 사료도 안들고 얼마나 좋을까.그래 오리를 100마리 키우면 그놈들이 하루에 적어도 알을 60개는 낳지 않을까. 가만, 알이 60개면 하나에 80원씩만 해도 육팔은 사십팔, 4,800원 이네. 한달이면, 일년이면, 아니 그럴게 아니라 오리를 한 200마리쯤 키워버려, 그러면 그 돈이 얼마야. 나는 밤마다 오리와 알값을 늘리고 줄이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마침 그때 졸업한 학교에서 10만원의 융자를 받았던 것이다.

집 앞 텃논을 빌리고, 거기다가 삼칸 집을 그럴듯하게 지었다. 한칸은 방을 들일 요량이었고 두칸은 오리를 집어 넣을 생각이었다. 오리를 100마리 사왔다. 교과서대로 정성껏 키웠다. 오리는 무지무지 잘먹고 잘도 컸다. 아침에 간단하게 밥을 먹여 강물로 내몰면 밥통이 터져라 다슬기를 잡아 먹었다. 그때까지는 참 멋있었다.

오리들은 참으로 통통하게 잘도 컸던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사료를 주면서 나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랬더니 호루라기를 불면 강에서 놀다가 우루루 집으로 달려왔다. 큰 오리가 될 때까지 한마리도 안죽고 쪼로록 커주었다. 105마리였다. 아, 그런데 나는 욕심을 너무 부리고 말았다.

한참 떨어진 마을에서 오리를 키우던 사람이 다 큰 오리 200마리를 판다는 것이었다. 나는 200마리를 덜컥 사버렸다. 그게 화근이었다. 300마리로 늘어난 오리는 장난이 아니었다. 사료는 엄청 많이 들고, 오리들이 노는 강물은 이제 좁았던 것이다.

엉망이 되어갔다. 배가 고픈 오리들은 강물 아래로 한없이 내려가 해가 지고 캄캄해도 집에 올 생각을 안했다. 얼음이 언 강물을 이리저리 건너며 오리들을 집으로 몰아와야했다. 사냥꾼들이 다니며 물오린줄 알고 총질을 했다. 나는 읍내 조합에 가서 외상 사료를 구해와야했다. 정기화물 차량은 사료를 차부에다 부려놓고 갔다. 나는 사료를 30분 거리의 우리 동네까지 지게로 일일이 져 날라야했다. 무겁고 춥고 세상은 겁이 났다.

사료를 짊어지고 오다 쉬며 강물을 바라보았다. 오리들이 얼지 않은 강물 속에서 다슬기를 잡아먹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망해가고, 그리고 지게밑에 앉아서 꺼칠한 얼굴에 들이치는 찬바람을 맞으며 울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박고 어깨를 들먹이며 들길에서 혼자 울었다. 30년전 어느 겨울날이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