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일 0시. 테헤란 밸리는 새천년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의 타종소리와 함께 뜰뜬 축제분위기에도 불구, 차분하고 조용하게 새천년을 맞았다. 사무실을 환하게 밝히고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젊음이 넘쳐나는 곳이 IT(정보기술)산업의 요람 테헤란 밸리다.강남구 삼성동 삼화빌딩 10층에 위치한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 전직원 60명중 3분의 1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직원수보다 많은 컴퓨터 모니터의 열기와 직원들의 정열이 영하의 날씨를 녹이고 있었다. 열심히 토론을 벌이는 연구원들, 책을 보는 직원 등 각양각색이다. 차민석(23)연구원은 『Y2K바이러스 때문에 새천년 맞이 여행이니 휴일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야근을 하면서 새천년을 맞이했다. 그는 『올해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활황이 예상되는 만큼 바이러스방지 프로그램 개발 등 컴퓨터 보안문제도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라며 『앞으로 더욱 바빠질 것』이라는 말로 새천년 소감을 대신했다.
이런 사정은 대다수 벤처업체들도 마찬가지. 시스템 운영관련 직원들이 1일과 2일 전원 출근, 역시 바쁜 일과를 보낸 「오마이러브」천두배 이사는 『올해는 코스닥에 등록하고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회사가 뻗어나가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미래넷」의 김형무 이사도 『우리의 시장은 앞으로 무한대』라며 『직원들 모두 비전을 품고서 사기가 충천해있다』고 전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테헤란밸리 새천년 명암] 성공착각 '술판'
서울 강남을 동서로 관통하는 테헤란로.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몰려있어 어느새 「테헤란 밸리」라는 별칭이 붙었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빗댄 이름이다. 새천년의 화두가 인터넷과 디지털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낮과 밤이 따로 없는 「테헤란 밸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새천년이 오는지도 모른 채 오로지 연구·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과열된 거품」이라는 냉소적인 시각과 함께 일부업체들의 벤처정신 실종을 지적한다. 테헤란 밸리의 명암을 살펴본다.
테헤란로의 밤문화는 테헤란 밸리의 또다른 면이다. 벤처빌딩이나 벤처 센터 주변의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은 흥청망청이다. 지하주차장도 대부분 외제차 또는 고급차들로 만원이다. 때문에 기업이 커지면 제일 먼저 사무실부터 단장하고 차부터 바꾼다는 비아냥 소리도 들린다. 어느 벤처기업이 접대를 위해 아예 룸싸롱을 하나 샀다느니, 어느 업체는 1년 접대비가 5억원이 넘었다느니 하는 소문도 공공연히 나돈다.
투자를 유치했다는 사실만으로 성공했다고 착각하는 벤처기업들도 많다. 정부의 지원금으로 연구개발비로 사용하거나 시설투자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외형불리기에만 신경을 쓰는 벤처업체들도 있다.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1~2년 전만해도 라면을 먹으면서 밤새 토론을 해도 눈빛만은 살아있었다』고 말했다. 모벤처기업의 임모사장도 『라면야식에 새우잠으로 상징되는 도전정신이 사라지고 풍요로움에 젖은 모습이 최근들어 눈에 많이 띈다』고 지적했다. 임사장은 『조만간 거품이 빠지고 테헤란 밸리가 새롭게 재편되리란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벤처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승리하는 벤처와 패배하는 벤처의 명암이 확연이 갈리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하루에도 5,000여개의 인터넷 사업관련 사이트가 생기는 등 너도나도 벤처에 뛰어들기 때문에 기술과 집행력이 보장되지 않는 업체는 몰락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2000년은 모든 벤처기업들에게 또다시 「도전」을 요구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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