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디지털북 시대 원년"20-30년만에 종이책과 시장 반분
인터넷 혁명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출판도 빠질 수 없다. 벌써 몇년 전부터 세계 출판계는 전자책의 등장으로 적지 않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PC 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책 내용 전부를 내려받기로 저장해 두었다가 컴퓨터에서 읽는 것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 몇몇 나라에서는 전자책(e_book) 단말기가 적지 않게 팔려나간다. 책 모양의 휴대용 컴퓨터에 책 내용을 저장한 칩을 넣고 마치 책을 읽듯이 단말기의 화면을 보면 된다. 칩만 바꾸면 얼마든지 많은 양의 책을 손쉽게 가지고 다니며 읽을 수 있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종이 책의 건재를 낙관한다. 하지만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또 인터넷 초창기에 누가 지금처럼 기계와 통신의 승리를 짐작이나 했는가? 젊은 출판인들은 앞으로 몇 년 사이 디지털 책 판매시장이 급격하게 커질 것으로 점치고 있다. 전자책은 칩의 용량이나 단말기 무게, 가격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반도체 기술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하면 종이 책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인터넷 북스토어 아마존의 성공은 출판시장 변혁의 아주 짧은 서장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누가 과연 디지털 출판시장의 승자가 될 것인가? 2000년을 맞은 국내 출판사들은 차세대 출판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회사들이 자신들이 내놓은, 또 내놓을 책을 디지털 자료로 판매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드러내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 상반기에는 몇몇 출판사들이 그동안 진행해 온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들은 당분간 국내 디지털 출판계를 선도할 가능성이 크다.
전자책은 통신을 통해서는 3, 4년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서는 2, 3년 전부터 국내서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형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장서의 목록을 거기서 만날 수는 없다. 제공하는 책의 양이 많지도 않거니와 대개 무협이나 추리소설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선보일 일부 출판사들의 전자책 판매가 더욱 눈길을 끈다. 올해 국내 출판계는 그동안 내놓았던 다양한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좋은 책들을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는 명실상부한 전자책의 시대가 열리는 원년이다. 무협소설을 주로 내놓는 현재의 인터넷 전자책 판매업체들이 가격을 종이책의 50% 정도로 정한데 비해 이들은 종이책의 3분의 2 정도 가격을 매길 예정이다.
가격은 큰 차별이 없을지 모르지만 디지털로 사는 책은 큰 장점이 있다. 책을 보기 위해 서점에 나갈 필요가 없고, 부피가 종이책보다 작아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전자책은 한 권을 모두 사지 않고 책 내용 가운데 필요한 부분만 떼내어 살 수 있다. 종이 책은 개정·증보판을 따로 사야 하지만 전자책은 새로워진 책 내용을 언제든지 열어 볼 수도 있다. 또 잃어버리더라도 무료로 책을 다시 받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값싸고 가벼운 휴대용 기기가 보급되면 여러 권의 책을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 된다. 통신할 수 있는 곳에서는 세계 어디서든 실시간에 책을 구할 수 있다.
출판사에서는 출판 의뢰가 들어오는 원고들의 상당량을 이런 전자책의 방식으로 여러 사람에게 알려서 검증받을 수 있다는 점도 큰 강점으로 꼽는다. 현재 큰 출판사들은 연간 밀려드는 원고의 1% 정도 밖에 종이책으로 찍어내지 못하고 있다. 종이책이란 기본적인 제작비용이 있기 때문에 편집자가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 섣불리 출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책은 다르다. 컴퓨터 편집에도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종이책보다는 훨씬 적다. 원고를 편집해서 디지털로 띄우고 일부를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해 독자들의 반응을 본 뒤 정식 출판물로 내놓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출판시장이 지금보다 수십배 넓어지는 효과도 낳는다. 상반기를 목표로 디지털 책 판매를 준비하고 있는 한 출판사 관계자는 『20∼30년 안에 종이 책과 전자 책이 출판 시장을 반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큰 것은 저작권 보호다. 전자 책을 돈을 주고 내려받기한 개인이 그 정보를 무단으로 복제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작권 보호기술 개발에 출판사들이 고심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런 책 판매가 출판사는 물론 저작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을까를 확신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대중소설류는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고급 교양서나 전문서 등으로 책 판매가 넓어질 경우 채산성을 점치기 어렵다고 출판사들은 보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전자책 단말기, 국내 1년후 본격화
단말기를 통해 책 볼 수 있는 기기가 이미 미국과 일본에선 팔리고 있다. 누보미디어사의 「로켓 이북」, 소프트북프레스사의 「소프트북」, 에브리북사의 「에브리북」 등이다. 특히 「로켓 이북」은 최근까지 휴대용 단말기 가격이 40만원을 넘었으나 최근 199달러(23만원 정도)로 낮추는 등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내에서는 팜 파일럿, 셀빅, 윈도 CE, 윈드스톤 등 국내외 PDA(휴대용단말기) 회사들이 전자책 사업을 포함해 증권정보 등을 제공하는 사업을 두고 다투고 있다. 일부 회사는 증권사와 연계해 단말기를 무료로 나눠줄 계획도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 PDA 회사들이 내놓은 단말기는 화면이 작은 데다 용량이 크지 않아 독자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사업도 증권정보를 우선하면서 전자책 서비스는 끼워넣기 형식이다. 제대로 된 전자책은 적어도 1년 정도는 지나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국내 3-4개 사이트, 인터넷 전자책 판매중
국내에는 서너 곳의 인터넷 전자책 판매회사들이 있다. 98년 6월 국내에서 처음 문을 연 인터넷 전자책 판매회사 「웹폭스」를 비롯해 「타임전자서점」 「리얼북」 등이다. 초록배 카툰즈㈜에서 운영하는 「타임전자서점」(gboat.co.kr)은 「바로북(barobook)」이라는 자체 개발한 문서 형식을 통해 2,600여 종의 책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개는 이 회사에서 내놓는 무협소설이다. 바로북 읽기를 통해서는 텍스트와 그림을 배열할 수 있으며 움직이는 이미지와 배경 그림을 볼 수 있다. 저작권을 보호하지는 못한다.
온라인 서점 「YES 24」에서 운영하는 「웹폭스」(www.webfox.co.kr)는 인터넷 문서형식인 HTML 파일을 유료로 내려받기해서 책 내용을 볼 수 있다. 책 내용을 읽어 보는 정도에 그치며 역시 저작권 보호기능을 갖지 않는다. ㈜포인트텍에서 만든 「리얼북」(www.realbook.co.kr)은 HTML을 쪽 단위로 쪼개어 볼 수 있다. 이용료는 쪽 단위로 계산하며 역시 저작권을 보호하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팻브레인.컴」사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서점 「팻브레인.컴(www.fatbrain.com)과 누보미디어사의 「로켓 이북」(www.rocketebook.com)이 많이 알려져 있다. 팻브레인은 이-매터(e-matter)라는 이름으로 전자책을 팔고 있는데, 화면에서 책장과 같은 모양으로 책을 볼 수 있는 PDF(Potable Document Format) 형식을 이용하며 보안 기능을 가지고 있어 저작권을 보호한다. 로켓 이북은 HTML 32에 바탕한 자체 형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휴대용 단말기인 로켓 이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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