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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화·경박을 버리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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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화·경박을 버리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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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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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문다. 더불어 100년과 1000년을 단위로 하는 세월의 마디가 꺾여 역사의 갈피속으로 넘어간다. 이 시간의 분절점에서 묵은 세기와 묵은 천년을 뒤돌아 볼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은 지난 한 해가 너무 힘겨웠던 때문일까.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극심한 혼돈과 갈등과 대결의 시대였다. 결국은 지켜본 민심만 크게 상처 입은 옷로비 사건이 상징하듯, 뻔한 일을 가지고 편을 갈라 서로 헐뜯고 속이기에 허송한 한 해였다. 『성경에 손을 얹고 진실을 말하겠다』던 청문회 증인들이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은 거짓말 잔치를 벌인 것을 필두로, 온갖 거짓과 책임회피, 무고와 독설이 국민의 귀를 어지럽혔다.게다가 지역과 당파와 계층과 소속으로 나뉘어진 2분법적 논리와, 무리하게 자신만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불신과 갈등은 확대재생산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과 실리추구에 눈이 먼 나머지 도리와 금도를 잃어버려 나라의 품격과 신뢰가 끝없이 추락한 해이기도 하다. 돈만이 이 세상 모든 가치에 앞서는 유일한 물신이 되어 초등학교 어린이들부터 주부와 노인들까지 「대박」을 꿈꾸는 세상이 된 것도 올해의 큰 변화였다.

이 부화하고 경박한 물질만능 풍조의 만연에 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인가. 더 이상 IMF 구제자금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마치 IMF 졸업을 한듯이 앞장서 떠드는 것도 국민을 들뜨게 하고, 전국 100곳에서 동시에 밀레니엄 축제 행사를 벌이는 것도 또 다른 거품의 재생산이 아닌지 걱정이다.

피셔 IMF 부총재가 『한국이 자금면에서 IMF를 졸업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한 말은 축사가 아니라, 개혁의 완성을 촉구한 고언으로 새겨들어야 한다. 그는 분명히 2000년말까지 IMF 프로그램이 존속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금융과 기업분야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이 말은 우리 사회의 개혁노력이 아직 크게 미진하다는 의미이며, 특히 정치와 공공부문이 여전히 반개혁적이라는 국민의 인식과도 일치한다. 화려한 경제지표와 주식시황의 그늘 속에 IMF 희생자와 실직자,빈곤층으로 전락한 사회적 낙오 대열이 한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옥문이 활짝 열려 장기수가 없는 나라가 되었다는 자긍속에 200억달러를 넘는 무역흑자를 뽐내듯, 지금 전국 고속도로는 밀레니엄 해맞이 관광차량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찬란한 불꽃과 레이저 광선이 전국의 밤하늘을 수 놓아 한국의 IMF 졸업잔치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2년전 이맘 때를 생각하면 꿈같은 일이지만, 그 기억이 너무 아파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겁이 나는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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