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간다. 한 세기가 간다. 한 천년이 간다.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다.오늘은 1999년과 20세기와 두번째 밀레니엄의 마지막일 뿐 아니라 한 시대, 한 세상, 한 역사의 마지막이다. 이제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 신시대와 함께 신세계와 신기원이 열린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이 마지막 날을 전송하지 않으면 안된다.
격동의 세상을 지나오면서 용케도 살아남아 세기에서 세기로, 천년에서 천년으로 건너가는 우리 모두는 복된 두 세기의 사람들이요 두 천년의 사람들이다. 행운의 우리에게 새해, 새세기, 새밀레니엄의 3초(初)를 맞게 되는 새아침은 찬란하다.
우리는 대회전차의 동승자들이다. 이 감격의 시대를 함께 산다는 것은 큰 인연이요 동시에 운명의 공유다. 이 동시대인의 환희와 사명감으로 서로 손에 손을 잡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천년을 내다보는 눈으로 새해를 바라보고, 새해 한 해로 천년을 살듯이 새해를 맞자.
지나가는 20세기는 우리에게 치욕과 영광의 역사였고 시련과 행운의 역사였다. 그 연대를 거치는 동안 부정부패 등 갖은 악습과 병폐가 쌓여왔고 그 적폐가 부정직과 무신의와 호쟁(好爭)의 민족성으로 고질화했다. 이 구질서의 침전물들이 새 세기를 맞는 국운의 멍에가 되어 있다. 녹슨 국민운동의 나팔소리도 목쉰 개혁의 구호들도 모조리 무위였다.
인력으로는 도저히 어쩌지 못한 이 앙시엥 레짐(구체제)을 일거에 타파할 천시(天時)가 이제 왔다. 그것이 2000년이다. 천재일우(千載一遇)라고도 하고 천세일시(千歲一時)라고도 한다. 민족을 개조할 천년만의 호기요 천년만의 시운(時運)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한꺼번에 천년의 골을 훌쩍 뛰어넘는 것같은 대회심(大回心)의 2000년이라야 한다.
심기일전(心機一轉), 마음 하나 먹기에 달렸다. 이것은 혁명이다. 인력(人力)의 혁명이 아니라 천력(天力)의 혁명이다. 무혈혁명의 2000년이요 명예혁명의 2000년이다. 오늘은 그 혁명전야라야 한다.
21세기는 정보혁명이 가져온 광속(光速)의 세기라고 한다. 그러나 빛보다 더 빠른 것이 사람의 생각이다. 생각 하나만 바꾸면 된다. 사고혁명이 있으면 얼마든지 정보혁명을 앞지를 수 있다. 그러나 신세기에 적응할 사고구조를 개조하려면 구세기의 행태를 청산하는 의식혁명 없이는 불가능하다. 민족적 고질을 그대로 가지고는 광속시대의 경쟁을 이겨낼 수 없다.
오늘은 대제야(大除夜)다. 옛날 섣달 그믐이면 궁궐에서 악귀를 쫓기 위해 연종포(年終砲)를 쏘고 북을 울렸듯이, 또 민가에서는 빚이나 외상은 해를 넘기지 않고 섣달 그믐날 다 청산했듯이, 우리는 악귀와도 같고 적채(積債)와도 같은 묵은 세기의 잔재를 대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일소해야 한다. 요즘도 시골에서는 섣달 그믐이면 집집마다 마당을 깨끗이 쓸듯이, 설날이면 목욕을 하고 새 설빔을 입듯이, 천년만의 설날을 맞아 저마다 새국민으로 스스로를 일신해야 한다.
새해 새아침은 우리 모두 「2000년인」이라는 21세기형의 새로운 인간형으로 변신하는 날이다. 국가도 국민도, 정치인도 경제인도, 21세기형으로 개조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오늘 마지막 날을 인류 최후의 날처럼 보내자. 내일은 재탄생이다. 어제의 나는 오늘로 마지막이다.
오늘이 구악을 기른 20세기의 마지막 날이요 따라서 오늘이 그 구악의 마지막 날이라야 한다.
대화해와 대화합의 새천년을 맞자고 한다. 우리의 20세기는 분열의 세기였다. 사원(私怨)도 공원(公怨)도 구시대의 구원(舊怨)을 구세기와 함께 묻어버리자면, 구시대의 시대적 상황이 낳은 모든 불행한 기억들을 씻어버리자면, 구시대적인 유산부터 묻어버리고 씻어버려야 한다. 정도(正道)와 양심의 복원없이는 어떤 화해도 어떤 화합도 무의미하다.
서울에서 새해 아침의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강동구에서는 오늘 밤 자정 구청뜰에 세운 박두진 시인의 「해」의 시비를 제막한다.
이것은 광복의 기쁨을 읊은 시이지만, 지난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불사르고 새해 아침에 맑은 새 해가 뜬다면 새로운 광복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새해가 밝는다. 새 세기가 밝는다. 새 천년이 밝는다.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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