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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리는 90년대] 일본과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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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리는 90년대] 일본과 아시아

입력
199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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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대다수는 최근 한 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올해의 색으로 「회색」을 꼽았다. 불안과 고독 등을 뜻한다는 회색은 99년뿐만 아니라 90년대 전체의 일본을 상징하는 색조라고 할 수 있다.일본의 90년대는 거품경제의 붕괴와 함께 열렸다. 90년 1월 급격한 주가하락이 시작됐고 92년부터는 부동산 가격의 하락도 본격화했다. 89년말과 현재를 비교할때 3만8,900엔대였던 닛케이(日經) 평균주가는 1만8,700엔대로 48% 수준에 머물고 있고 주요 도시의 상업지역 지가는 3분의1 이하로 떨어졌다. 이에 따른 자산 손실이 800조-1,200조엔으로 추산되고 있다. 95-96년 잠시 되살아나는 듯하던 경제가 97년말 이래 「전후 최악의 불황 국면」으로 떨어져내린 것도 거품 붕괴의 후유증이다. 자산 가치의 폭락에 따른 대량의 부실 채권이 금융불안을 야기시킨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그러나 회색의 10년을 마감하는 99년에 들어 일본 경제는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수십조엔을 잇따라 쏟아부은 대형 경기대책 덕분이지만 경제 회복의 최대 관건으로 꼽혀온 「자신감 회복」은 분명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소비 심리가 회복되고 있고 4.9%에 달했던 실업률도 11월 4.5%로 떨어지면서 실업자가 다시 300만명 아래로 줄었다. 내년 3월말 마감되는 99 회계년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5% 이상의 플러스를 기록할 것이 확실하다.

미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에 비하면 일본의 9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이다. 그러나 일본이 10년간 제자리 걸음만을 한 것은 아니다.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는 가장 큰 수확을 거두었다. 「일본은 운명적으로 아시아 국가의 일원」이라는 90년대의 인식은 메이지(明治)유신 이래 이어진 「탈아입구(脫亞入歐)」의 방향을 트는 커다란 변화이다.

우선 90년대 들어 대아시아 무역의 비중이 커지면서 경제적 의존관계가 커졌다. 일본의 대아시아 무역은 90년대 들어 북미를 제치고 단연 1위로 올라섰고 통화·금융위기의 여파로 무역량이 감소한 98년에도 비중은 크게 낮아지지않았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이런 추세를 가속할 전망이다.

또 아시아 경제위기는 일본과 아시아의 끈을 더욱 튼튼하게 했다. 300억달러 규모의 「미야자와(宮澤) 플랜」 등 두드러진 위기 지원책은 아시아 각국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 경제위기를 통해 아시아 각국은 흐릿했던 일본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깨닫게 된 측면도 있다.

아시아와의 경제적 유대 강화는 정치적 발언권의 강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98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일본 외교의 최대 과제의 하나였던 「한국벽」을 넘었다. 「중국벽」이 아직 버티고 있으나 그 또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낮아졌다. 북한과의 대화도 진전되고 있다.

자위대가 일본 주변사태, 즉 「극동의 유사시」 미군을 지원하는 형태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관련법의 성립도 정치적 발언권 강화와 무관하지않다. 이에 따른 미일 안보체제의 강화는 냉전 종식 이후 동북아 안보의 기본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아시아에 보다 깊숙히 발을 내딛는 일본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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