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금수강산, 발길이 닿는 곳마다 크고 작은 절경이 펼쳐지는 게 우리 산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여행지는 어디일까.한국일보는 여행전문가 10명에게 추천을 의뢰, 지난 1세기동안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평가되는 여행지 7곳을 선정하였다. 지금까지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 자원이 소중하게 보존돼 영원히 사랑받는 국토의 보석이 되라는 염원도 함께 담았다.
추천인은 원로나 학계를 지양하고, 지금도 열심히 국토의 구석구석을 훑고 다니는 여행전문가를 중심으로 위촉했다. 추천 지역의 범위는 현재 일부만이 여행이 가능한 북한지역을 제외하고 남한에 국한했다. 추천인들은 「가장 빛나는 산하」로 평가되는 5곳을 순위 별로 꼽았다. 1위는 5점, 2위 4점, 3위 3점, 4위 2점, 5위 1점의 점수를 주었다.
추천인의 평가를 종합한 결과 모두 20곳이 거론됐다. 이중 설악산과 제주도가 각 25점을 받아 공동 1위를 기록했고, 지리산이 22점으로 3위에 올랐다. 한려수도와 동강이 12점으로 공동 4위, 경주와 안동이 10점, 6점으로 각각 6, 7위를 차지했다. 7위까지는 모두 3인 이상의 추천을 받은 곳이다. 그 밖에 울릉도, 섬진강, 오대산, 변산, 내린천등이 아름다운 여행지로 추천됐다.
설악산(공동 1위)
산은 저마다의 맛이 있다. 나름대로 내세우는 매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설악산이 당당히 최고의 여행지로 꼽힌 이유는 수많은 산의 매력을 골고루 품고 있어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웅장함과 섬세함, 영원성과 가변성, 포근함과 비정함이 모두 그 산자락에 들어있다. 바로 앞에 펼쳐진 동해바다도 한 몫을 거든다. 풍부한 산나물과 해산물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고 산과 바다의 낭만을 동신에 즐길 수 있다는 장점 설악산만이 갖고 있는 인기 비결이다.
IMF의 한파가 극심했던 지난해에도 250만여명이 찾았고 올해에는 29일 현재 방문객이 360만명을 넘어섰다. 정상까지 오르는 사람만 연간 6만여명에 달한다.
설악산의 봉우리는 약 7,000개. 금강산 1만2,000봉에는 크게 못미치지만 최고봉인 대청(1,708m)의 높이는 금강산 비로봉보다 70m가량 더 높다. 강원도 속초시와 양양군, 고성군, 인제군등 4개 시·군에 속하며 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금강초롱, 에델바이스, 반달곰, 산양등 회귀동식물의 보고이어서 81년 유네스코의 생물권보호지역이 됐다.
설악산의 정상부는 흙으로 된 육산이다. 그러나 해발 1,200m대로 내려오면 바위의 군락이 펼쳐진다. 바위의 웅자는 산 중턱까지 이어진다. 그 흙과 돌의 공짜기가 조화를 부린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크고 작은 폭포와 소, 담을 이루고 철마다 달라지는 나무의 색깔과 어우러져 미의 극치를 연출한다. 신흥사, 백담사, 봉정암등 역사가 유구한 사찰과 문화유적들은 설악산의 향기를 더욱 짙게 한다.
유명세에 걸맞게 설악산은 개발의 논리와 보호의 아우성이 맞붙은 우리 환경운동사의 첫 페이지에 있다. 현재 산의 동북쪽으로 빽빽하게 들어서있는 수많은 숙박·위락시설은 설악줄기의 많은 아름다움을 도려내고 들어선 것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62년 착공된 신흥사-권금성 사이의 케이블카. 설악산 관광개발협회가 5,000만원을 들여 10년만에 완공했다. 초기에는 신기한 문명의 익로 '설악의 명물'이 됐지만 지금은 환경운동가나 산사람들이 꼽는 '흉물 1호'이다.
90년대 들어 미시령 말미에 무더기로 들어선 콘도촌도 마찬가지. 여행객에게 안락함을 제공하는 대신 설악의 큰마님격인 울산바위 일대를 콘크리트 벽으로 가리고 있다. 최근들어 환경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무차별 개발은 많이 줄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당시를 기억하는 산사람들은 설악산의 풍요로웠던 아랫자락을 그리워한다.
정부는 2003년까지 금강-설악을 연계하는 대규모 문화관광권을 조성할 계획이다.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무사증, 무관세로 외국인들이 출입할 수 있다. 설악은 2000년대를 맞아 국제적인 여행지, 통일의 가교로 또 한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제주도(공동 1위)
수 없이 다녀온 사람도, 심지어 살고 있는 사람도 그 곳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새롭게 샘솟는 재미, 신기함, 아름다움…. 제주도의 으뜸 매력은 영원히 파악할 수 없는 「신비한 섬」이라는 점이다. 이국적 풍광을 바탕으로 섬 특유의 개성있는 생활과 문화, 우리 현대사의 큰 상처를 간직한 가슴아픈 역사까지, 눈과 가슴속에 담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제주의 신비함은 바다와 한라산 정상 사이 1,955㎙ 의 표고차에서 빚어져 나온다. 바닷가에 훈풍이 불지만 한라산의 눈은 녹지 않는다. 정상의 고산식물, 그 아래의 침엽수림, 이어진 난·온대림, 광활한 초원, 아열대의 수풀 등 고도차이에 따른 다양한 식물군(群)의 스펙트럼은 자연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이로운 역사이다. 계절의 조화까지 힘을 보태면 화려함은 더욱 절정을 이룬다.
바다와 섬이 일구어낸 아름다운 풍광도 지나칠 수 없다. 육각형의 주상절리가 뚜렷한 지삿개해안, 국내 유일의 산호해수욕장, 화산지형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암석과 해안선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 절경이다.
제주여행은 이러한 볼거리만큼이나 즐길거리도 다양한 게 또 다른 매력. 여행전문가들은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이 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레포츠에 적극 참여하면 제주에 대한 애착이 더 커진다』고 조언한다. 왕복 9시간이 걸리지만 보람과 만족을 보장하는 한라산등반, 어느 해안에서나 푸짐하게 횟거리를 마련할 수 있는 바다낚시, 초원을 달리는 승마, 스노클링등 갖가지 해양레포츠등 즐길거리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제주도에서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먹거리. 제주도에서만 제맛을 볼 수 있는 갈치, 고등어회등 신선한 해산물부터 이제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제주 토종돼지등은 여행객을 유혹하는 커다란 매력이다.
덕분에 제주도는 이미 세계적 관광타운이 되었고, 지금도 새로운 개발계획이 진행중이다. 제주도는 현재 3개 관광단지, 20개 관광지구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중간단계까지 공정이 진행된 중문관광단지를 비롯해 성산포해양관광단지, 표선민속관광단지등이 21세기에 새로 들어설 예정이다. 관광호텔, 콘도미니엄, 상가, 공연장, 박물관등 굵직한 시설이 한데 모인 대형 레저콤플렉스이다.
서귀포시 상예동 일대 8만5,000평의 부지에는 과천의 서울랜드와 맞먹는 대규모 문화체험형 테마공원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개발이 동반하는 것은 훼손. 한라산만 예로 들더라도, 93년부터 벌인 조사에서 모두 6만평에 가까운 식생지대등이 훼손된 것으로 조사됐다. 94년부터 매년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완전히 복구하는데에는 30년이 넘게 걸릴 전망이다. 개발과 보존의 조화는 제주도가 안은 영원한 고민이다.
지리산(3위)
남한 제2봉인 천왕봉(1,915㎙)을 중심으로 전남, 전북, 경남등 3개도에 걸쳐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산이다. 둘레만 800여리. 67년 한국 최초의 국립공원이 됐는데, 규모만으로도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봉우리는 높고 골은 깊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부드럽고 포근하지만, 안에 들면 가파르고 웅장하다. 산은 찾는 이들에게 쉽게 기쁨을 주지 않는다. 이 곳에서의 희열은 거친 여정을 이긴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산세의 아름다움이 다른 산에 결코 뒤지지 않으면서도 설악산등에 비해 개발이 덜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반 여행자가 아닌 등산인 중에는 설악산보다 지리산을 최고의 산으로 치는 이들이 많다. 손 때가 덜 탄 곳이면서도 곳곳에 이 민족의 사연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마한시대부터 격전장이었다. 몽고와의 항쟁, 임진왜란을 거쳐 여순사건과 빨치산 활동에 이르기까지 험한 산세는 전술에 이용됐고 계곡에는 많은 피가 흘렀다. 특히 현대사의 아픔은 「태백산맥」「토지」「지리산」등 우리 문학의 대표적인 대하소설들을 낳았다.
한려수도(공동4위)
절경의 바다. 경남 통영시 한산도에서 전남 여수시에 이르는 긴 해역으로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사람을 보냈다는 매물도를 비롯해 360여개의 유·무인도가 빛을 낸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바닷물, 무진장으로 노는 고기떼, 눈이 닿는 곳마다 감탄을 터뜨리게 하는 기암의 행렬….
바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지대인 남해군 금산은 파도의 공허함에 진한 양념을 치는 곳이다. 무너져내릴듯 바위절벽이 절묘하게 도열해있는 금산의 정상에 서면 다도해의 풍광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한려수도는 스스로를 내려다보는 높은 봉우리도 갖추고 있다.
이 지역은 임진왜란 당시 격전장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유적이 곳곳에 있다. 이순신장군의 병영터이자 한산대첩을 기리는 제승당을 비롯해 충열사, 세병관, 연대도등이 있다. 평화로움 밖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곳에서 만나는 전쟁의 역사. 야릇한 느낌을 들게 한다.
동강(공동4위)
대중적 유명도와 생태·환경보존의 역설적 상관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온전히 보존하는 최고의 길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 그러나 동강이 아무에게도 그 가치를 알리지 않은 무명의 오지였다면 이미 댐건설의 굴착기소리가 쩌렁쩌렁했을 것이다.
수도권의 상수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과, 경관은 물론 생태계를 보존해야 한다는 반대론의 팽팽한 대결은 김대중대통령의 「댐 건설 반대」의견이 나오면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분위기는 「댐 건설계획 취소」쪽으로 기운 것 같지만 아직 어정쩡한 상황이다. 동강은 무장이 해제된 상태이다. 이대로 봄을 맞고 또 한해가 지나간다면 인파에 밟혀 죽을 수도 있다. 강을 테마로 하는 국립공원이 하나쯤 있는 것은 어떨까? 이 곳을 아끼는 사람들은 정부의 신속하고 결단력있는 조치를 바라고 있다.
지켜낸 사람들의 정신이 빛나는 강, 「아리랑」이 흐르는 한국의 로렐라이 같은 강이 바로 동강이다.
경주(6위)
경주에 대한 느낌은 세대별로 다르다. 50, 60대는 이 곳에서 신혼의 꿈을 키웠고, 30, 40대는 학창시절 수학여행의 기쁨을 누렸다. 유명세가 수그러들만도 한데 여전히 손가락에 꼽히는 여행지로 사랑받는다. 저력이 놀랍다. 고도(古都)가 내뿜는 역사의 향기, 손색이 없는 자연경관, 오랜 여행지가 갖고 있는 푸근함이 그 저력의 바탕이다.
경주는 이제 관광지가 아니라 민족의 문화를 호흡하는 테마여행지이다. 요즘들어 그러한 인식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토함산, 불국사, 석굴암등 명소탐방이 주류였던 경주 여행이 최근 들어 경주 남산등 문화유산의 보고로 옮겨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흐름과 맥을 함께 한다.
서라벌 남쪽에 우뚝 솟은 해발 468㎙의 남산은 신라의 흥망성쇄를 한 눈에 보여주는 곳. 130여곳의 절터, 100여체의 석불과 마애불, 수많은 고분이 빽빽하게 자리한 야외박물관이다. 옷깃을 여미고 옛것에 대한 외경심을 갖는 여행, 경주여행은 남산을 중심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안동(7위)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에게 소개할만큼 우리 고유의 것을 많이 간직한 곳이다. 퇴계 이황의 유적등 유교문화, 하회탈로 대표되는 민속, 국내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인 봉정사가 전하는 부처의 세계등 민족의 철학을 대변하는 유·무형문화재 239점이 몰려있다.
추천인들은 특히 안동의 고건축물에 주목한다. 명필 한석봉이 현판을 쓴 도산서원을 비롯해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기와집등 우리의 목조건물은 대대로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안동은 아직 본격적인 여행지로 평가받기에는 준비가 덜 된 상황. 좁은 도로와 외지인의 입에 생경한 먹거리등이 특히 문제이다. 다음 세기에도 빛나는 여행지가 되기 위해 안동이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가장 빛나는 우리 산하 7
① 설악산
① 제주도
③ 지리산
④ 동강
④ 한려수도
⑥ 경주
⑦ 안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