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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로 날지샌 99년] '세치혀'에 온나라가 휘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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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로 날지샌 99년] '세치혀'에 온나라가 휘둘렸다

입력
199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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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로 지고 샜다. 모두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청문(聽聞)과 수사와 추적이 국회에서, 특별검사실에서, 신문지상에서 일년 내내 지리하게 이어졌다. 정치인, 고관대작, 재벌에서 지방 공무원, 심지어 흉악범까지 쏟아낸 거짓말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국민, 그리고 국가다.그들이 처음부터 진실을 말했더라면 국가의 경쟁력을 거짓을 가리는 데 그렇게까지 쏟아 붓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민적 불신과 무력감, 소모적 논쟁, 민심 이반, 국력 낭비와 손실…. 검사가 검사를 수사하고 기자가 기자를 취재한 99년이었다.

우리는 99년을 「거짓말 공화국」에서 살았다. 세 치 혀의 간악함을, 거짓말의 해악을 실감한 한 해였다. 새해 새천년에는 우리 모두 정직하게 다시 시작하자.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

■ 말바꾸기, 말뒤집기의 정치

정치인만큼 거짓말을 많이 하는 직업도 없다. 툭하면 거짓말을 해야하는데다 내일 당장 탄로날 일도 진실인 것처럼 둘러대야 할 때가 있다. 그들은 『거짓말하는 게 곤혹스럽다』고 하지만 그 말 또한 거짓말일지 모른다.

흔히들 「선문답」이니, 「은유화법」이니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말 바꾸기」요 「말 뒤집기」와 다르지 않다.

올 상반기는 온통 내각제가 판이었다. 하네, 못하네, 안하네, 참 말도 많았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내각제 개헌 여부를 놓고 연일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를 무게있게 받아들이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그저 『저들끼리 거짓말 잔치 하고 있네』정도의 반응 뿐. 결국 내각제를 둘러싼 숱한 거짓말은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했다』는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참말에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합당론은 어떠했나. 「따로 따로」로 결론이 나기까지 수많은 말잔치가 있었다. 『합당 운운은 있을 수 없는 소리다』라는 말이 구르고 굴러 『당에서 조금 섭섭하더라도 국가적 견지에서 선택하는 것』으로 돌아서더니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옷로비 청문회는 「잘난」 여인네들의 세 치 혀에 휘둘리며 거짓말 경연장이 됐다. 온 국민이 애타게 찾았던 진실은 거짓말에 뒤덮여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겠다는 정치권의 약속은 뻔히 알고서도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며 속은 거짓말이 될 것 같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언론 문건」의 실체는 여태 오리무중이니 이를 둘러싼 말들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거짓말이 아닌 셈인가?

■ 구조조정 약속과 빅딜은 어디로

경제계도 올해 재벌·금융개혁 태풍이 몰아치면서 재벌총수 및 최고경영자의 구조조정 약속 불발과 빅딜 합의 파기 등이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다.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회장은 3월 30일 주채권은행에 제출한 재무구조개선약정안에서 연내 부채비율 199.5% 달성, 29조원 규모의 계열사 매각, 외자유치 40억달러 유치 등을 약속했으나 어느 하나 실현하지 못한 채 재계 무대에서 사라졌다. 김 전회장은 4월 최후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구조조정 약속은 꼭 지킨다』는 말을 두번이나 강조했으나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현대 경영진도 한라중공업 위탁경영설을 부인했다가 나중에 곤욕을 치렀다. 김형벽(金炯璧) 현대중공업 회장은 8월 30일 『한라중공업 위탁경영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부인했지만 현대그룹은 9월 8일 한라중 위탁경영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삼성 이건희(李健熙) 회장은 대우 김 전회장과의 삼성차_대우전자 대규모사업교환(빅딜) 합의를 파기한 채 6월 30일 삼성차를 전격적으로 법정관리 신청, 국민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LG도 위장계열사를 동원한 25% 이상의 데이콤 지분보유를 강력 부인한 채 공식지분 4.21%만 갖고 있다고 주장해 오다 반도체를 현대에 넘겨준 후 4월 27일 정부_재계 간담회에서 구본무(具本茂) 회장이 데이콤 인수의사를 공식표명하면서 「치마폭 지분」(당시 25% 가량)을 공개했다.

경제 관료 중에선 경기부양 및 재벌개혁 등을 둘러싼 말바꾸기와 혼선이 많았다. 강봉균(康奉均) 재정경제부 장관은 5월 25일 『경기부양성 추경 편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당정은 수일 후 추경편성 계획을 발

■ 성경에 손을 얹고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진다」는 피노키오 얘기가 진짜 거짓말이었음을 확인한 한 해였다. 옷로비·파업유도·씨랜드 화재·인천 호프집 화재·신창원검거·이근안 사건 등 99년을 장식했던 대형 사건 때마다 거짓말 경연대회가 벌어졌지만 누구의 코도 커지지 않았다.

옷로비의 주연 네 여인들은 저마다 「성경에 손을 얹고…」 「하나님께 맹세하고…」 라며 진실만을 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과는 이들의 「거짓말 사중주」에 일년 내내 국민들만 놀아난 셈이 됐다. 때문에 신문 제목에는 「누구 말이 맞나」 「가진 자들의 거짓말 게임…국민들은 식상한다」는 등의 표현이 지겹도록 되풀이됐다. 또 술자리 등 각종 모임에서 이 주제는 「마르지 않는 안주」가 됐고 마침내 『옷놀음에 이제 지쳤다』는 냉소로 이어졌다.

진형구(秦炯九) 전 대검공안부장과 강희복(姜熙復) 전 조폐공사사장은 파업과 관련, 서로 전화 한 통화 한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뗐다.

어이없는 화재로 어린 생명들의 목숨을 앗아간 인천 호프집이나 씨랜드 수련원 대표들은 공무원들과의 유착이 없었다고 강변했지만, 끝없는 뇌물고리로 연결돼 있었음이 드러났으며 결국은 철창 신세를 면치 못했다.

희대의 도망자 신창원은 자신을 서울까지 태워준 택시 기사에게 보답으로 200만원을 송금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실제로는 차비까지 빼앗은 강도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신창원과 이근안 사건과 관련해서도 당사자들은 몰론 경찰은 짜맞추기식으로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나고 말았다.

결국 99년 한국의 사회상은 사회 지도층의 잇단 거짓말로 극도의 불신 풍조가 넘쳐났으며. 국민 모두가 상처입고 망신 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특집] 한국일보가 뽑은 올해 10대 거짓말

▶그런 옷은 거저 줘도 안 입는다. 내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뒤에 모자가 달리고 고무줄이 있는, 아이들에게나 어울리는 점퍼를 내가 어떻게 입겠느냐/

연정희씨, 국회청문회에서 호피무늬 반코트를 구입하지 않았다고 강변하면서.

(진실_연씨는 줄곧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씨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 트렁크에 실어줬다고 주장했으나 특검은 외상구입을 넘어 누군가가 대신 돈을 지불할 것으로 보고 공짜로 가져갔다고 결론)

▶『코트는 12월 26일에 나도 모르게 배달됐다』 『옷값 대납 요구는 결코 한 적이 없다』 『여직원 이혜음은 사건이 터지자마자 겁이 나 달아나버려 연락이 안된다』/옷로비 청문회에서 연정희, 배정숙, 정일순씨의 주장.

(진실_특검 수사 결과 코트는 12월 19일에 배달됐고 연씨는 알고 있었다. 또 배씨는 옷값 대납을 두차례 요구했으며 정씨와 직원 이씨는 청문회를 앞두고 무려 100여 차례 통화했다)

▶양주가 독해 맥주를 타서 마시는 것이다/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 국회청문회에서 취중발언 당시 왜 폭탄주를 왜 마셨느냐는 질문에.

(진실_진씨는 당시 자신이 원하지 않던 대전 고검장 발령을 통보받고 검찰 선후배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양주 9잔과 폭탄주 4잔을 마셨다. 그는 평소 술자리에서도 폭탄주를 즐겨 마셨다)

▶아파트 중도금이 부족하던 중 호프집 사장 정성갑씨가 같이 살자고 제의해 전세금 3,000만원을 주고 살고 있다/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와 관련, 전 인천 중부경찰서 교통지도계장 이모경위가 정씨집에서 살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진실_이경위는 사건 관계로 알게된 정사장과 형님·동생하면서 지냈으며 전세금을 한 푼도 주지 않고 공짜로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청소년 수련시설 씨랜드가 무허가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으며 원장 박재천씨와는 일면식도 없다/ 김일수 전 화성군수,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며.

(진실_김 전군수는 97년 12월 사회복지과장 강호정씨에게 진입로가 좁다는 문제가 있더라도 운영인허가를 내주라고 지시했으며, 씨랜드에서 열린 행사에 6차례나 참석했고 박원장과는 행사 후 식사까지 함께 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말까지 순수내각제로 개헌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김종필총리, 2월 10일 인도 방문 중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진실_5개월이 채 못돼 생각에 변함이 있었다. 『우리가 처한 여러 상황을 고려해 연내 개헌은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번복)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는 데 공감하고 있다/ 올해초 여야 정치개혁 협상이 시작될 때 여야 국회의원 대부분의 말.

(진실_애초 「자기 희생」을 기대한 국민들이 어리석었나. 『선진국과 비교하면 오히려 모자란다』 『의원 줄이기가 정치개혁의 본질로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등의 이유로 꽁무니를 빼고 있다)

▶지난해 연말기준 재무제표 상으로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계열사는 없다/ 7월 26일 정주호 전 대우구조조정본부장, 부실계열사는 없다고 강조하며.

(진실_대우는 거대한 부실을 안고 타이타닉호처럼 침몰했다. 채권금융기관의 대우실사 결과에 따르면 ㈜대우 중공업 전자 등 계열사들은 부실규모가 32조원에 달했지만 분식결산과 장부조작 등으로 자산이 부채보다 많은 것으로 재무제표를 허위작성했다)

▶정부의 외압은 없었다. 어떤 압력에도 굴복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전경련의 전통이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 11월 2일 전경련회장단회의 후 당초 새회장에 내정됐던 정몽구 현대 회장이 갑작스레 고사한 것에 대해.

(진실_손부회장은 월간조선 2000년 1월호에서 『4대그룹 중 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현대에서 회장이 나오는 것은 곤란하다는 정부의 희망사항을 정회장에게 전달했다』며 당초 입장을 번복)

▶경기부양을 위한 추경예산 편성은 없을 것이다/ 강봉균 재정경제부장관, 5월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진실_여당은 수일 후 당정회의를 통해 중산층 및 서민보호를 명분으로 추경계획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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