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까지만 해도 인류를 괴롭혔던 천연두, 소아마비 같은 질병은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성병 등 감염질환도 항생제의 개발로 퇴치가 가능해 졌다.인간의 평균수명은 지난 100년간 무려 30년이 늘었다. 모두 20세기 의학이 이루어낸 성과들이다. 한국일보사는 의학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20세기 질병퇴치에 기여한 10대 사건」을 선정했다.
전문가들은 페니실린의 발견을 20세기 의학계의 최대 성과로 뽑았다. DNA구조 발견, 세계보건기구(WHO) 창설 등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 페니실린 발견, 항생제 개발의 첫 걸음
페니실린의 발견은 플레밍의 말처럼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었다. 영국의 미생물학자 플레밍은 1928년 우연히 포도상구균을 배양하고 버린 찌꺼기에서 포도상구균의 발육을 억제하는 곰팡이균을 발견하고 이 물질을 페니실린이라고 불렀다. 페니실린은 포도상구균은 물론 각종 세균을 죽이는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밝혀졌다.
1940년 영국의 병리학자 플로리와 생화학자 체인이 페니실린을 분말로 정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항생제 시대의 막을 열었다.
페니실린은 제 2차세계대전 중인 1942년부터 미국에서 대량생산됐다. 이후 여러 종류의 항생제가 잇따라 개발돼 임질이나 매독, 연쇄구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을 크게 줄이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항생제의 남용은 내성균을 만들어내 20세기말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이라는 새로운 숙제를 안겨주었다.
2. DNA구조 발견, 유전공학 발전의 기반
53년 4월25일 과학전문지 네이처에는 DNA의 이중 나선구조 그림이 실렸다. 미국의 제임스 왓슨, 영국의 프랜시스 크릭 등 세 명이 발표한 1쪽 분량의 짧막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반향은 엄청났다. 인류는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의학, 농업, 자원, 환경 등 다양한 과학적, 산업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생명 비밀의 문을 열게 됐다. DNA구조 발견이 인간 생명의 신비를 규명한 20세기 최대의 생물학적 성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3. 장기이식수술 성공, 생명연장의 연금술
동물실험을 통해 축적된 외과적 수술과 면역학, 약물학의 발전은 장기이식수술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다. 1906년 각막이식수술이 성공한데 이어 관절이식, 일란성 쌍둥이 사이의 신장이식, 뇌사자를 통한 신장이식, 췌장이식, 심장이식, 심장과 폐 동시 이식, 소장이식 등이 잇따라 성공했다.
특히 67년 남아공 버나드박사에 의해 시도된 심장이식수술의 성공은 장기이식의 결정체로 평가받았다. 부작용도 있었다. 장기이식은 뇌사자의 기준을 둘러싸고 거센 사회윤리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공학을 이용한 동물장기 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4. 인슐린 발견, 당뇨병 치료의 전기 마련
오늘날 당뇨병 치료제로 널리 쓰이는 인슐린의 발견은 현대 의학이 거둔 최고의 성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캐나다의 밴팅과 베스트는 1921년 췌장을 제거해 혈당이 상승한 개가 췌장추출액 주사로 혈당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순수한 인슐린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5. 복제양 ‘돌리’ 탄생, 생명과학의 개가
97년 2월 생후 7개월된 복제양 「돌리」의 탄생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영국 로슬린연구소 이안 윌머트 박사팀은 암양의 유전자를 다른 양의 난세포에 복제해 돌리를 만들어냈다.
생식세포가 아닌 일반 체세포를 이용, 모체와 똑같은 유전자 정보를 지닌 생명체를 탄생시킨 이 사건은 인간복제의 가능성을 열면서 격렬한 윤리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박사팀이 99년 7월 젖소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함으로써 21세기는 전혀 새로운 생명과학의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6. 첨단 진단기기의 발달, 치료효과 수직상승
20세기 첨단의학시대를 연 1등공신은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초음파, 레이저 등 첨단 진단기기의 등장. 정확하고 신속한 진단이 가능해지면서 치료효과는 놀랄 정도로 향상됐다.
특히 72년 영국의 전자기술자 하운즈필드가 CT를 임상에 적용한 것은 방사선 의학의 신기원적 사건으로 꼽힌다. 다양한 각도로 방사선을 쏘아 그 결과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CT가 등장함으로써 일반적인 X선 촬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보다 신체내부를 더욱 정교하고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7. 혈액형 발견, 안전한 수혈의 초석
지금과 같은 ABO 혈액형이 발견된 것은 불과 100년 전. 오스트리아의 병리학자 란트슈타이너는 1901년 인간의 혈액형에는 A, B, O, AB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ABO 혈액형을 구분하게 됨으로써 안전한 수혈이 가능해 졌으며, 특히 전쟁 중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란트슈타이너는 1940년 Rh 혈액형도 발견해 면역혈액학 분야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업적을 이뤄냈다. 오늘날 장기이식수술의 발전과 혈액은행 탄생에 결정적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8. 피임약 개발, 여성 해방의 물꼬
51년 미국 의사 그레고리 핀쿠스가 개발한 경구용 피임약은 여성을 임신의 공포에서 해방시킨 기폭제였다. 그는 배란을 막는 두 가지 호르몬을 배합해 피임약을 만들었다. 1900년 미국 가정의 평균 자녀수는 3.5명. 그러나 먹는 피임약이 보급되면서 출산율이 크게 떨어져 72년 이후 2.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서도 61년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설립돼 산아제한캠페인을 벌이면서 자녀수가 절반 이상 줄었다. 스스로 임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여성들은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해방돼 사회활동의 전기를 마련했다.
9. 에이즈 등장, 인류의 마지막 천형(天刑)?
「현대판 흑사병」으로 불리는 에이즈는 80년 11월 미국에서 처음 보고됐다. 에이즈 환자의 발견은 새로운 재앙의 예고편이자 인간이 전염성 질환을 완전 정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얼마나 환상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98년 6월말 현재 에이즈 감염자는 3,100만명이며, 이미 1,200만명이 사망했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보조약물은 개발됐으나 아직 예방백신이 나오지 않아 완치는 불가능하다. 비록 21세기에 에이즈 치료제가 개발된다 해도 현대인의 도덕적 타락이 계속되는 한 신종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10. 세계보건기구(WHO) 탄생, 범세계적 질병퇴치의 계기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만들어지면서 세계적인 규모의 질병 예방과 퇴치가 가능해졌다. 천연두의 박멸은 WHO의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80년 5월 WHO 제33차 총회는 『지구상에서 천연두가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77년 아프리카에서 마지막 환자가 발견된 이후 단 한 건의 환자 발생도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외과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1796년 종두법을 개발한 이래 180여년만에 천연두가 완전 정복된 것이다.
20세기 의학 연표
▲1901 란트슈타이너, 혈액형 발견(오스트리아)
▲1902 베일리스와 스탈링, 호르몬 발견(영국)
▲1903 파블로프, 조건반사설로 노벨의학상 수상(소련)
▲1906 홉킨스, 비타민 연구 시작(영국)
▲1906 각막이식수술 성공(영국)
▲1910 에를리히, 매독치료에 살바르산 사용(독일)
▲1918 스탈링, 심장의 법칙 발견(영국)
▲1921 밴팅과 베스트, 인슐린 발견(캐나다)
▲1928 플레밍, 페니실린 발견(영국)
▲1932 루스카, 전자현미경 개발(영국)
▲1935 도마크, 설파제 개발(독일)
▲1937 국가보장 보건의료제도 첫 실시(소련)
▲1938 항생제 개발 착수(독일과 호주)
▲1942 페니실린 대량 생산 성공(미국)
▲1948 세계보건기구(WHO) 창설
▲1951 핀쿠스 등, 먹는 피임약 개발(미국)
▲1953 왓슨과 크릭, DNA구조 발견(미국과 영국)
▲1954 엔더스, 소아마비 바이러스 배양에 성공(미국)
▲1962 항암제 개발 시작
▲1967 버나드, 심장이식수술 성공(남아공)
▲1971 얼 서덜랜드, 호르몬 작용체계 규명해 노벨의학상 수상(미국)
▲1977 로잘린 얄로우, 호르몬 연구로 노벨의학상 수상(미국)
▲1978 최초의 시험관 아기 「브라운」탄생(영국)
▲1980 WHO 천연두 박멸 선언
▲1981 핵전쟁방지 국제의사회(IPPNW) 설립
▲1981 에이즈 환자 첫 발견(미국)
▲1985 골드스타인과 브라운, 콜레스테롤 연구로 노벨의학상 수상(미국)
▲1989 전국민의료보험제도 실시(한국)
▲1996 로슬린연구소, 복제양 「돌리」 탄생(영국)
▲1998 화이자, 비아그라 시판(미국)
▲1999 서울대 황우석교수, 국내 첫 젖소 복제 성공(한국)
(가다다順)
김재호 강남성모병원 안·이센터 소장
민진식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원장
박기현 아주대의대 학장·이비인후과
양정현 삼성서울병원 내분비외과 과장
유형준 대한노인병학회 회장·한강성심병원 내과 교수
이재담 울산대의대 생화학 교수
현진해 고려대의료원 의무부총장·내과
황상익 서울대의대 의사학 교수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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