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한국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하였다. 일인당 국민소득 일 만 불 시대가 열리고 OECD 가입으로 선진국권에 진입했다는 환상에 젖어있던 일반인들에게는 뜻밖의 충격이었다. 한국의 외환위기를 시발로 현실화한 경제위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국제경제체제, 특히 놀라운 속도로 변화한 국제금융체제의 문제점과 한국의 내적인 경제구조의 문제가 복합되어 발생한 것이다.▲정치 경제가 얽힌 구조적 문제
우선, 한국의 내적인 문제점은 단순히 경제구조의 문제이기보다 정치와 경제가 얽힌 구조적인 문제였다. 외환위기 발생 직후 외부의 여론은 주로 동아시아 성장모델의 폐해, 즉 관치금융이나 정실자본주의의 부패와 비능률을 지목하였다. 정부가 금융기관의 인사와 대부에 깊이 관여한 관치금융은 금융기관의 대량 부실투자와 허약체질을 가져왔다.
정실자본주의는 정경유착으로 인한 비능률과 경제적 자원분배의 왜곡 등을 가져오고 경제위기의 심층적 원인을 제공하였다. 모든 상품과 서비스 분야의 시장이 과감히 개방되고 엄격해진 자유 시장경쟁의 원리가 지배적인 WTO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동아시아식의 성장모델은 적합치 않다. 외환위기는 바로 동아시아 모델의 폐기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 전까지 동아시아 성장 모델의 총아로 지목되던 한국은 하루아침에 실패 케이스로 지목되었다.
▲외환위기의 주범, 재벌
특히 한국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재벌들이었다. 재벌들은 「대마불사」의 신화를 좇아 방만한 차입경영으로 몸집 불리기를 일삼았다. 한국경제에는 경상수지 적자와 외채가 누증되었다. 97년 초부터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발로, 삼미 대농 진로 기아 등이 줄줄이 부도위기에 처하면서 경제위기의 징후가 노출되었다. 한보의 대출경위를 보면 사업성을 따져보지 않은 거액의 투자자금이 정치권의 개입과 거액의 로비자금 수수의 흑막 속에서 진행되었다.
한보의 부도는 한국의 정경유착 구조가 가져온 실패케이스이다. 자산 5조 원에 총부채 6조 6,000억원을 안고 있던 한보의 도산으로 금융기관들의 부실이 급증하였고 국민경제에 큰 부담이 되었다. 신용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던 30대 기업집단 중의 하나인 한보의 도산으로 외국 투자가들은 한국의 신용상태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그해 여름 태국발 외환위기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을 치며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대기업의 연이은 부도사태는 한국의 신용도를 저하시켰다. 기아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외국 금융기관들과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신용상태를 하향조정하였다. 한국경제는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기초여건이 튼튼하다는 정부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외국 투자가들은 한국 경제에 대한 신용등급을 계속적으로 낮추어 나갔고 이는 외환위기의 전주곡이었다.
▲한국 정부의 안이한 대처
재벌기업의 높은 채무 부담 외에 직접적으로 한국의 외환위기의 또 하나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금융체제의 성급한 자유화 조치였다. 특히 김영삼 정부 때 무더기로 허가가 난 종금사들은 외환시장에 뛰어 들어 무모하고 위험한 투자행위를 하였는데 장기 자산에 비해 과도한 단기외채를 누적, 채무 구조의 악화를 가져왔다.
한국의 내부적 문제는 경제구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정부와 정치권의 인식과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동남아의 위기를 보면서도 한국위기의 가능성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고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직전까지도 극구 위기의 가능성을 부인, 감추려하였다. 그해 초에 출범한 금융개혁위원회 안에 의한 금융개혁법이 이익집단과 정치권의 논리 속에 파묻혀 금융개혁의 의지가 지지부진해진 것도 한국의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데 한 몫 하였다.
▲국제금융체제의 급격한 변화
한국의 위기는 이와 같은 내부의 문제에도 원인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국제금융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오늘날 자본시장 자유화는 세계적인 추세이고 개도국도 거역하기 어렵다. 이러한 국제금융체제에는 사적 단기 자본의 거래량이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특히 고수익을 노리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각종 핫머니들의 움직임은 이익이 있는 곳에 한꺼번에 몰려갔다가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행태로 국제금융체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동남아에서 발생한 위기가 전염되면서 내부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한국 경제를 강타한 사건이다.
위기의 진원지인 태국의 경우를 보자. 위기 전 태국에는 자본시장 자유화로 많은 외국 자본들이 들어와 부동산 건설, 주식시장 붐을 일으키고 과소비의 거품경제를 만들었다. 경상수지 적자와 단기채무가 증가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외국 투자가들이 태국에 대한 신용을 거두어들이고 바트화의 투매를 시작함으로 위기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동남아를 휩쓸고 경제기초가 튼튼하던 홍콩까지 타격을 주어 홍콩정부는 홍콩달러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시장개입에 나서게 되었다. 이 파도는 곧 한국까지 올라와 외환위기를 유발시키게 되었던 것이고 금융위기, 경제위기로 일파만파로 확산되었다.
▲국내외적 요인의 복합적 산물
외환위기 발생 후 한국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IMF가 요구한 혹독한 구조조정의 시기를 겪었다. 적절치 않은 정책으로 흑자부도와 실업자 양산이라는 희생을 내기도 하였다. 해체되어 매각 대상이 된 알짜 기업들을 노린 외국자본들이 한국에 몰려들기도 하였다. 97년 표출된 한국의 경제위기는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의 복합적 산물이다.
내적으로는 변화한 세계경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한국식 모델의 좌초를 의미하는 사건이다. 외적으로는 불안정의 요소가 급증한 국제금융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이다. IMF식 처방의 결과 외국 투자가들이 돌아오고 외환보유액은 증가하였다. 그러나 단기 자본들의 집단 이탈 현상이 장차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한국은 이제 내부 집안 단속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투기성 자본의 움직임으로 불안정성이 증가한 국제금융체제의 개혁을 위해 국제적 여론 형성과 대안 마련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연구자료
▲김진영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도진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
▲백종국 「국제정치경제의 변동과 동아시아 모델」(이상 「신자유주의와 아시아의 경제위기, 그리고 한국」에서, 부산대학교출판부·1998)
▲마르코스 「제4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었다」(「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에서, 한울·1998)
▲손호철 「한국의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창작과 비평」에서, 1999년 봄)
▲강만길 「20세기 우리역사」(창작과 비평사, 1999)
■[현대사 다시쓴다] IMF가 남긴 말말말
유행어들은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한다. IMF를 맞아 쏟아진 신조어와 유행어들은 IMF 시대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을 엿보게 한다.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되자 『I M Fired』 『I M Finished』란 말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정리해고 위기를 넘긴 사람들은 『I M Fine』이라고 안도했다. 모든 상황에 IMF란 말이 따라붙자 『I M Fedup』(난 진절머리가 나)이라는 말도 나왔다. 해고의 위험에 떨던 사람들은 상사로부터 「박카스」를 보면 불길한 조짐을 느껴야만 했다. 광고에서 『내일부터 안나와도 돼』란 카피가 나왔기 때문.
실직사태가 급증하자 대학가도 몸살을 앓았다. 청년실업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면 「상실세대」가 등장한 것. 졸업 자체를 미루거나 학업을 마친 후에도 계속 학교에 머무는 사람들을 가리켜 「캥거루족」 「모라토리엄 인간」이라 불렀다. 취업 빙하기를 견디다 못해 외부와 연락을 끊고 외출마저 삼가는 학생들은 「잠수족」이라 불렀고, 방바닥에 딱 달라붙어 지내다 누가 와서 뒤집으면 돌아눕는다는 뜻으로 백수들을 「호떡족」이라 불렀다.
고사성어도 변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는 방바닥에 달라붙어 사는 신세를 뜻하는 말로 「남존여비(男存女卑)」는 정리해고시 여자 먼저 잘린다는 의미로 통했다.
IMF로 인한 대량해고로 고통받는 한편에는 치솟는 고금리로 호황을 누리는 특권 계층이 나타났다. 이들을 「특금층(特金層)」 「황금족」이라고 불렀다. 가방에 현금을 매고 다니고 해서 「백패커족」이라는 용어도 나왔다. 그들은 강남 술집에서 건배 구호로 『이대로』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온 국민을 씁쓸하게 만들었고 IMF가 가져온 극명한 현실에 치를 떨어야 했다.
차츰 경기가 회복되면서 일부에서 IMF 이전의 행태를 다시 보이자 『I M Fogetting』이란 말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IMF 대환란. 누구도 잊어서는 안되는 치욕적인 사건이고 이 말은 가장 경계해야할 유행어였다. 대신 IMF의 고난과 맞서 싸운다는 뜻의 『I M Fighting』에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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