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함께 기획해 올해 초부터 1년 동안 연재한 「현대사 다시 쓴다」가 51회 「경제위기와 IMF」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100년의 우리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50대 사건을 새롭게 조명한 이 특집은 지나온 한 세기에 대한 반성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가올 새 시대를 부끄럼없이 맞기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한해 동안 연재를 지켜 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한국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글을 보내왔습니다.20세기를 넘기면서 이 한 세기의 민족사를 객관적으로 되돌아보려는 노력들이 많다. 그러나 타민족에게 강제지배된 시대와 민족 분단시대로 이어진 우리 민족의 20세기를 냉철하고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기를 넘기는 시점에서까지 20세기사의 「잔재」라 할 분단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그 역사를 얼마나 냉철하게 또 객관적으로 되돌아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21세기에 들어가서 20세기사의 「잔재」를 얼마나 속히 청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로 들어설 때의 한반도는 정치적으로는 입헌군주제조차 이루지 못한 전제군주제 아래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 일부 들어서기는 했으나 자율적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는 처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갑오개혁을 통해 양반·상놈의 신분제가 제도적으로는 일단 폐지되었다 해도 현실적으로는 엄존한 상태였으며, 사상적으로는 성리학 유일체제가 일단 무너졌으나 근대사상이 아직 한 시대의 지도사상으로 자리잡지 못한 상태였다.
이같은 중세적 정치·경제·사회·사상 체제를 청산하고 자율적 근대화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주권주의를 이루는 정치적 변혁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채, 다시 말하면 한반도에서는 일본의 명치유신이나 중국의 신해혁명 정도의 정치변혁도 일어나지 못한 채 일본의 강제지배를 받게 되었다. 한반도지역이 일본의 강제지배를 받게 된 것은 인도가 영국의,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로 된 것과는 다르다. 한반도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세계사 위에서 같은 문화권 안의 거의 비슷한 문화수준의 다른 국가에게 강제지배되는 유일한 지역이 되었다. 이 점에 대한 깊은 역사적 성찰이 필요하다.
남의 강제지배 아래 들게 된 문화민족 사회가 해야 할 최고 최선의 과제는 물론 민족해방운동이다. 그 때문에 20세기 전반기 한반도 지역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민족해방운동이며, 이 운동의 가장 큰 목적은 일본의 강제지배에서 해방되어 국민주권의 근대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일이었다. 다만 이 운동의 전개과정에서 우익노선과 좌익노선이 양립됨으로써 해방 후 어떤 성격의 민족국가를 수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차이점이 있었다.
전체 민족해방운동이 우익노선 중심으로 추진되면 해방 후의 한반도에는 자본주의 국가가 수립될 가능성이, 좌익노선 중심으로 추진되면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좌우익 어느 쪽도 민족해방운동을 독자적으로 주도하지 못했고, 그 위에 민족해방운동세력 자체의 투쟁만으로 해방되지도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을 패망시킬 연합국의 경우, 한반도에서는 자본주의국가 미국도 사회주의국가 소련도 독자적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있지 못했다. 그 결과가 38도선의 획정과 미·소 양군의 분할점령으로 나타났으며, 따라서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의 결산이기도 했다.
38도선이 그어지고 미·소 양군이 분할점령함으로써 민족해방운동세력의 좌익은 극좌화하고 우익은 극우화해 갔다. 그런 상황에서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하려면 현실적으로 친미·반소도 아니고 친소·반미도 아닌, 그리고 순수 자본주의도 순수 사회주의도 아닌 그런 성격의 국가를 수립할 수밖에 없겠는데, 1945년부터 48년까지 「해방공간」의 전체 민족사회가 그런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만 하지 못했다. 한때 극좌세력과 극우세력을 배제한 중도파세력 중심의 통일국가 수립이 시도되었으나 곧 실패하고, 좌익세력은 38도선 이북에 친소 사회주의국가를, 우익세력은 이남에 친미 자본주의 국가를 세움으로써 민족이 분단되고 말았다. 분단국가들이 성립된 지 2년 후에 일어난 6·25 전쟁은 전쟁의 방법으로라도 통일하려는 「몸부림」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북쪽에서 다음에는 남쪽에서 통일할 뻔 했으나 한반도가 가진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한 원인이 되어 결국 어느 쪽도 무력통일을 할 수 없었다.
3년간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난 후 60년대로 들어서면서 정치적으로는 남쪽은 군사통치체제·유신체제 등으로 이어졌고 북쪽은 주체사상체제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전쟁 후의 복구과정을 통해 남과 북이 모두 상당한 성장·발전을 이루었다. 70년대 초엽까지도 남북을 막론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민족사회 중에서는 경제적으로 일단 선두 그룹에 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족문제 즉 통일문제 해결에는 72년에 7·4 공동성명이 일단 채택되었을 뿐 구체적 진전이 없었다.
세계사도 그러했지만, 20세기 후반기 한반도의 역사는 90년대에 들어와서 큰 변화를 일으켰다. 경제적인 면에서 우선 북쪽은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제국의 경제통제를 계속 받은 위에 중·소 분쟁으로 타격을 받았고, 특히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 및 뒤따른 소련의 와해에다 자연 재해 등이 겹치면서 최악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남쪽의 경우도 60년대 이후의 정경유착 재벌중심 경제체제의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나면서 이른바 IMF체제로 전락했다. 전체 한반도 지역이 겪은 이같은 90년대의 경제적 상황이 21세기로 들어서면서 남북문제·민족문제의 해결에 어떻게 작용할지 의문이지만, 상호간의 경제협력이 남북의 위기를 타개하고 나아가서 민족문제 전체를 순조롭게 풀어 가는 길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90년대로 들어와서 남쪽에서는 군사통치시대가 끝나고 민간정치시대로 들어가면서 민주주의가 확대되어가고 있으며, 북쪽에서도 권력상속의 형태로나마 통치자가 바뀌었다. 그것을 계기로 민족문제·남북문제에서도 오랫동안 계속된 대결구도를 화해구도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금강산 관광사업 등을 통해서 화해정책이 어느 정도 정착해 가고 있다.
20세기 세계사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 바로 동서 냉전으로 연결되었고, 특히 동아시아는 러일전쟁과 일본의 한반도 강제지배, 그리고 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6·25전쟁 등으로 연속되어 정말 평화스럽지 못했다. 21세기의 동아시아는 20세기보다 평화로워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근대화 과정에서 탈아시아주의로 가서 제국주의를 배웠던 일본이 다시 아시아국가로 돌아오는 일, 중국이 강대국이 되어서도 평화주의를 유지하는 일, 중국이 평화주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미국군이 물러가는 일 등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이 불가결한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강만길
■[현대사 다시쓴다] 시리즈를 마치며
한국일보 연중기획 「현대사 다시 쓴다」는 구한말 의병투쟁을 시작으로 97년 국제통화기금 관리를 받기까지 한반도에서 100년 동안 벌어진 역사의 기록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 근현대사 전공 유병용, 정영국, 정용욱, 이완범, 한도현 교수가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50대 사건을 뽑았다. 역사의 물길을 바꾼 사건, 한민족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일이 중심이었다.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경제·문화·사회 사건이나 흐름도 포함했다.
글은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따로 맡겼다. 두 서너 번 중복해 글 쓴 사람 몇을 빼면 모두 40여 명의 역사학자, 사회과학자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기획의 뜻대로 전문가들은 사건이 갖는 역사의 의미를 새롭게 짚으려고 노력했다. 진보 성향의 소장학자들은 그동안 드러내고 말하기 어려웠던 역사 이야기들을 이 기획을 빌려 과감하게 이야기했다. 사건들이 100년 역사의 앞뒤로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차분하게 정리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
알져지지 않은 사실(史實)을 처음 공개하는 「특종」도 눈길을 끌었다. 정문연 이완범 교수는 「8·15 해방」편을 쓰면서 38도선 획정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굴, 이 기획 연재를 통해 처음 알렸다. 이교수는 미국 국방부 해제 비밀문서에서 38도선은 미국 단독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 포츠담에서 협의해 정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남북 분단의 시작이 미·소 협의의 「국제 정치행위」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다.
피와 죽음, 투쟁과 쟁취의 100년을 우리는 지나왔다. 남는 것은 다가올 21세기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이다. 50가지 사건을 보며 어렴풋하게라도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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