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만남] '어두운 곳을 밝히는 스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만남] '어두운 곳을 밝히는 스타'

입력
1999.12.25 00:00
0 0

안성기-김혜자●김혜자씨...김혜자(金惠子) 월드비전 친선대사

41년 서울생.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생활미술을 전공했다. 62년 KBS 탤런트1기로 방송에 데뷔했으며 69년 MBC로 옮긴뒤 「전원일기」「겨울안개」「사랑이 뭐길래」「엄마의 바다」「그대, 그리고 나」등에 출연했다. 83년 영화「만추」로 마닐라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88년 연극「19 그리고 80」으로 동아연극상을 받았으며 88, 92년 MBC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안성기씨...안성기(安聖基) 유니세프 친선대사

52년 대구생. 5세때인 57년 「황혼열차」로 영화에 데뷔한 뒤 당시 영화에서 아역을 도맡았다. 동성고와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를 졸업하느라 배우활동을 중지했던 그는 78년 「병사와 아가씨들」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80년 「바람불어 좋은 날」, 81년 「만다라」 「안개마을」, 84년 「고래사냥」, 85년 「깊고 푸른 밤」 등으로 대종상을 휩쓴 80년대 최고의 인기배우이다.

사람들은 어둡고 구석진 곳보다는 밝고 화려한 세상을 좋아한다. 실패한 사람보다는 성공한 사람을 반긴다. 그래서 스타는 갈채와 환호속에 살지만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은 돌봐주는 이들을 찾기가 힘들다.

이때문에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불쌍하고 약한 이들에게도 돌리는 스타들은 별처럼 아름답다. 지구 반대편 가난한 나라에서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전투가 벌어지고 돌림병이 번지는 사지를 마다않고 찾아다니는 스타 두 사람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났다. 함박눈은 하늘의 축복처럼 내렸다.

- 김혜자씨는 월드비전, 안성기씨는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로 전세계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돕는 일에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기아돕기운동에 나선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김혜자= 92년 애정을 많이 쏟았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끝난 뒤였어요. 여행이나 다녀와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월드비전쪽 사람이 『올해부터는 우리나라가 월드비전에서 도움을 주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며 『처음으로 도와줄 나라가 대기근을 겪고 있는 에티오피아니 한 일주일 함께 가자』고 제의해왔어요.

가보기 힘든 아프리카로 여행이나 가보자는 생각으로 건들거리면서 떠났습니다. 그렇게 간 그곳에서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가뭄으로 완전히 말라 갈라져버린 강 바닥에는 사람과 가축의 뼈가 뒹굴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새다리였어요. 내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있는 것도 모르고 산 것이 죄스러웠어요.

그들의 처참한 모습은 제가 인생을 잘못 산 것같은 느낌마저 줬어요. 낮에 그 고통의 현장을 다니다가 밤에 아디스아바바 힐튼호텔의 화려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울 때마다 죄의식은 더 강렬해졌어요. 이 지옥 속에서 안성기씨처럼 잘 생긴 서양 의사들이 예방접종을 하고 있더군요.

주사 맞는 아이는 울 기운도 없어 축쳐져있고 아이를 안고있는 엄마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아이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슬펐어요. 그런데 의사들이 마치 자기 아이와 노는 것처럼 그 아이에게 권투하는 시늉하고 즐거운 표정을 지어보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순간 저도 이들처럼 늠름하게 굶주리는 아이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제가 본 것을 그대로 전했어요. 이것을 인연으로 이듬해 월드비전 친선대사가 됐고 르완다 소말리아 방글라데시 라오스 베트남 보스니아 캄보디아같은 나라들을 찾아다녔어요. 처음에 참상을 전할 때는 얘기만 하면 눈물보가 터지더군요. 요즘엔 우는 것보다는 더 소상하게 현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눈물을 꾹 참고 있어요.

안성기= 다섯살 때까지 유니세프가 구호물자로 주는 우유를 먹고 자랐지요. 전쟁통에 제대로 못먹은 어머니의 젖이 나오지 않아서요. 딱딱하게 굳은 탈지분유를 솥에 넣고 쩌먹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있는 모습의 유니세프 마크가 어릴 때부터 무척 친숙했어요.

그래서인지 88년부터 유니세프의 행사가 있으면 참여했어요. 94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설립되고 외국을 돕는 입장이 되자 어릴 때부터 져온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니세프쪽의 제의도 있고해서 같은 해 친선대사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친선대사로 다녀온 나라만도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베트남 몽골 부탄 등 6개국이나 됩니다.

또 다른 이유를 말하자면 제가 워낙 우리 아이를 좋아합니다. 해외에 나가면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의 사진이 붙은 지갑을 펴들고 바보처럼 웃곤하죠. 자식을 이렇게 사랑하다보니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귀해보이더군요.

김혜자= 다녀왔던 여러 빈국 가운데 르완다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고마수용소 옆에 큰 호수가 있었는데 작은 나룻배에 수십명씩 올라타고 난민촌으로 밀려들었죠. 그런데 도중에 뒤집히는 배도 많고 졸다가 빠지기도 해 호수에는 시체가 둥둥 떠다녔어요. 하루는 무장경호원이 동승한 차를 타고 가는데 길에 빨간꽃이 온통 펴서 마치 드라마의 한장면같더군요.

「정말 드라마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캄보디아도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수도인 프놈펜 한거리에서 어린이들이 비닐에 부탄가스를 넣어 흡입하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눈길 한번 주는 사람이 없더군요. 애들이 배고픈 것도 문제지만 병든 영혼은 어떻게 고쳐야 하나 정말 답답했죠.

안성기= 저는 소말리아 난민촌에서의 장면이 잊혀지지 않아요. 방금 병들어 죽은 아이 옆에 가족들이 서있더군요. 우리같으면 통곡을 할텐데 아버지도 안울고 형제들도 안울어요. 눈물이 말라버린 것이죠.

김혜자= 저는 기독교인인데요. 비극의 현장만 돌아다니다 보니 「하나님이 죄없는 아이들을 왜 죽이나」하는 갈등을 겪게 돼요. 그러나 그런 현장으로 봉사하기 위해 온 사람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더군요. 그들은 『이것도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일을 거부할 수 없다』면서 봉사해요. 이런 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싹 사라져요.

저도 그래서 저를 인기탤런트가 되게 한 것도 그분의 예정이었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이 일을 하다보니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나요. 에티오피아에 한국전쟁 참전용사촌이 있어요. 그들을 돕고 자녀들을 우리나라에 취업시키기 위해 이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 16년간 봉사해온 한국의사가 있었어요.

- 국내도 IMF로 어려운데 외국까지 가서 아이들을 돌볼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김혜자= 월드비전의 경우 성금의 60%를 국내에 지원합니다. 태백 폐광촌에 가보면 아버지는 진폐증으로 누워있고 어머니는 도망가버린 가정이 많아요. 아이들은 빈집에서 술 담배를 하죠. 이런 탄광촌어린이 돕기와 진폐증환자 지원사업에 이 돈을 씁니다.

또 해외지원금 가운데 상당부분을 북한 국수공장 운영에 사용하고 있어요. 작년 8월에 (북한에) 갔더니 아이들이 젓가락이 없어 숫가락으로 국수를 떠먹더군요. 너무 안쓰러워서 올때 판문점으로 오면 교통비를 북한 돕는데 쓸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다른 데로 빼돌리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좀더 적극적으로 북한을 도와줘야 해요.

안성기= 유니세프도 30%정도를 국내에서 씁니다. 그러나 얼마를 국내에서 쓰냐 하는 것을 떠나서 어느 쪽에 우선순위가 있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굶는다고 해도 점심을 못먹는 정도지만 빈국에서는 하루에 한끼 먹기가 힘들어 굶어죽는다는 것입니다.

김혜자= 남을 돕는 것은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꺼번에 많은 돈을 내고 부담을 털어버리려고 하면 안돼요. 보리밥을 먹이더라도 매일 먹여야지 한끼만 거하게 차려주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친선대사활동과는 별개로 고아 1명을 지원하는데 저는 철저히 이런 원칙을 지킵니다.

안성기= 저도 장애자단체와 환경단체에 개인적으로 소액을 기부하고 있는데 소액이지만 중단하지 않고 내려고 합니다. 요즘에는 자동이체라는 편한 수단이 있어서 애용하고 있죠.

김혜자= 제가 많은 봉사활동을 하니까 저를 속여서 이익을 취하려는 전화가 많이 걸려와요. 또 어떤 사람들은 혹시 정치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해요. 그러나 저는 KBS탤런트1기로 연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아버지가 『톨스토이가 사람들한테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좋은 배우는 얼마든지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배우만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안성기= 앞으로도 유니세프가 부르면 언제나 달려갈 생각입니다. 1년에 두 달 정도는 친선대사로 외국의 현장을 방문하고 국내의 행사에 참여하는 데 쏟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해본적 없어요. 봉사는 그 자체로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의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말로 하는 100번의 교육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진행·정리=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