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라는 불에 너무 가까이 가면 데일 수도 있다』 김태정(金泰政)전법무장관에 이은 박주선(朴柱宣)전청와대 법무비서관의 구속, 천용택(千容宅)국정원장의 경질을 보면서, 한 여권인사가 탄식조로 한 말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사정과 정보를 총괄해온 핵심들이 낙마한 현실은 「힘과 화(禍)」라는 권력의 양 극단을 잘 보여주고 있다.김대통령 주변에서 상처를 입은 핵심 인사는 김전장관이나 박전비서관만이 아니다. 국민회의에서 조세형(趙世衡)전총재대행이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에 책임지고 퇴진했으며 김영배(金令培)전총재대행은 김종필(金鍾泌)총리와의 불화로 3개월만에 물러났다.
청와대 남궁진(南宮鎭)정무수석도 문희상(文喜相) 이강래(李康來) 김정길(金正吉)씨에 이어 벌써 4번째다. 이들 전 정무수석은 출마 등의 이유로 사퇴해 문책성은 아니었지만, 잦은 교체는 정국운영의 차질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김중권(金重權)전비서실장은 장수했지만, 내년초 신당출범 때 정치권에 진입하려던 구상이 어긋난 채 일찍 물러났다. 이종찬(李鍾贊)전국정원장도 올 연말 사퇴를 기대했었지만 5·24 개각때 경질된 데 이어 언론문건 파동으로 타격을 입어야 했다. 각료 중에서는 주양자(朱良子)전보건복지 박정수(朴定洙)전외교 배순훈(裵洵勳)전정통 손숙(孫淑)전환경장관 등이 이런저런 이유로 중도하차했다.
정권 출범후 2년도 안된 기간에 권력 중심의 주요 인사들과 각료들이 낙마한 것은 우선적으로 개인들의 과오와 실수 때문이었다. 아울러 과거에는 관행이라는 미명아래 묵인되던 문제들이 단죄받는 시대변화도 한 원인이 됐다. 정치현실의 측면에서 보면 소수정권이라는 한계가 핵심인사들의 낙마와 상처를 초래했다. 야당이 공동정권의 틈새를 벌리며 끊임없이 공세를 취하고, 그 공세로 인한 혼돈이 여권에 「읍참마속(泣斬馬謖)」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질이 적절한 때를 못맞춰 민심수습의 수단이 되지 못하고 점차 경질과 단죄의 대상이 권력 중앙으로 쏠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자칫 「약체 정부」라는 인식을 보편화해 정국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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