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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신임 두터운 천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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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신임 두터운 천용택

입력
199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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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택(千容宅)국정원장은 국민의 정부들어 가장 잘 나간 인사들중 한사람이었다. 새정부 출범때 예비역 중장출신임에도 당당히 국방장관직에 올랐고 이어 국정원장에 발탁됐다. 그에 대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신임도 두터웠다. 그런 그가 어이없는 말 실수로 낙마를 했다.천원장의 부상과 침몰은 극적이다. 전남 완도출신으로 지연과 학연이 변변치 않았던 그는 육사(16기)를 나왔음에도 현역시절에는 이렇다할 주목을 끌지 못했다. 예편후 그는 비상기획위원장으로 한때 김영삼(金泳三)정부에 몸담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운이 트이기 시작한 것은 95년 국민회의 창당때 임동원(林東源) 당시 아태재단사무총장의 소개로 국민회의에 입당, DJ와 인연을 맺으면서부터 천원장은 전국구로 15대 국회에 진출한 뒤 DJ의 안보분야 핵심참모로 부상했다.

97년 대선때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의 아들 병역비리를 선거 쟁점화하는데 공을 세웠고, 김대중후보의 해양경비대근무 근거를 찾아내 김후보의 병역시비를 잠재웠다.

또 안기부를 중심으로 진행돼던 북풍공작을 방어해 냄으로써 DJ의 당선에 크게 공헌했다. 천원장은 이 과정에서 치밀한 업무능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천원장은 육사동기인 이종찬(李鍾贊)전국정원장으로부터 국정원장직을 이어받을 때 『음지보다 더한 습지로 들어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전원장의 정치적 양지지향에 쏠린 비판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그가 에러를 한 것이지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여권일각의 동정론이 그의 재기에 한가닥 빛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이계성기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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