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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P 선문답 없이 즉문즉답

입력
1999.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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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은 여권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복잡미묘한 여러논란을 야기했던 합당문제가 이날 저녁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청와대 회동에서 불가로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합당이라는 정국구도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은 봉쇄됐으며 이제 그 자리에는 연합공천 등 기술적 차원의 줄다리기가 남았다.◇DJP 회동

김대통령과 김총리는 더이상 선문답(禪問答)을 하지 않고 즉문즉답(卽問卽答)으로 합당불가를 결론냈다. 김총리는 김대통령이 합당문제를 꺼내지 않으면 합당불가론을 개진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김총리의 남미순방 보고를 받고나서 『LA에서 합당않겠다고 했던데…』고 말문을 열자 김총리는 『죄송하지만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합당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한데 생각에 변함이 없느냐』고 재고를 요청했다. 김대통령은 합당의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최근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예시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김총리는 『합당을 하기도 전에 자민련이 쪼개진다』며 합당불가 입장을 거듭 분명히 했다. 자민련내 분란이 심각할 경우 여론조사상 나타난 합당의 시너지 효과가 실제 선거에서는 역으로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김총리의 설명을 경청한 뒤 『총리가 어련히 숙고했겠느냐』며 『총리 생각을 이해하며 존중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합당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청와대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은 회동후 공조를 유독 힘주어 강조했다. 합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공동여당의 균열로 등식화하는 것을 경계해서다. 박대변인은 『두 분은 다가오는 선거가 정치안정에 중요한만큼 협력해서 선거를 치르자고 합의했다』면서 『공조를 더욱 철저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대변인은 『여권 일각에서는 시간을 갖고 합당논의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김대통령은 얽힌 현안들을 하나씩 정리해야 한다는 구상 아래 이날 매듭을 지었다』고 전했다.

한편 김총리는 이날 김용채(金鎔采)비서실장을 회동장소에 대기시켜 회동이 끝나자마자 합의내용을 구술, 발표토록 했다. 김총리는 예정보다 5분여 늦은 오후 6시35분 회동을 끝내고 김대통령과 함께 국민회의·자민련 의원들이 대기중인 청와대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가 대기중이던 김실장을 타라고 지시했다. 김총리는 엘리베이터안에서 김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합당은 하지않는다」는 내용을 구술했다.

◇국민회의·자민련 합동만찬

김대통령과 김총리가 만찬장인 영빈관에 입장, 착석하자 참석자들은 회동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헤드테이블에 앉은 중진들과 문가에 자리잡아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구전으로 결과를 전해들은 일부 의원들을 제외하고 대다수 참석자들은 결과를 알지못해 무척 궁금해했다.

김총리는 만찬에 앞서 인사말을 하면서도 회동 결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김총리는 합당을 거부한데 대한 미안함을 김대통령에 대한 무한한 찬사로 대신했다. 김총리는 『파산 직전의 상황에서 9%의 성장을 이룩하고 순채권국이 된 것은 꿈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김총리는 『이 모든 것이 노심초사 국정을 이끌어온 김대통령의 지도력이고 국민 성원의 결과』라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모아서 대통령께 전한다』고 말했다. 김총리는 『유례없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런 일로 대통령께 걱정을 끼치고 국민에 실망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라며 『큰 공적이 한 사람의 잘못으로 무의미해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만섭(李萬燮)국민회의 총재대행, 박태준(朴泰俊)자민련총재가 『내년 총선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며『꼭 협력해 선거에서 승리, 국정안정과 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하자』고 말하며 건배를 제의했다.

만찬후 김대통령은 『정국안정이 실패하면 경제가 좌절할 수 있고 북한이 우리를 교란하려 할 것』이라며 총선승리의 당위론을 우회적으로 말했다. 김대통령은 『오늘 합당문제에 대해 내가 먼저 얘기했다』면서 『총리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합시다고 했다』고 합당불가 결론을 공개했다. 김대통령은 『협력은 한 길만이 있는 게 아니고 공조도 있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옷사건 등 최근의 사태와 관련, 뜻하지 않은 일로 속이 상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잘못도 있었지만 역사에 남을 공헌도 한만큼 자학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자』고 격려하며 만찬을 마무리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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