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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민생법' 미루기만 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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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민생법' 미루기만 할건가

입력
1999.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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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민법개정안 처리과정을 보면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가 한눈에 드러난다.여야 3당총무들은 최근 동성동본 금혼제도 조항을 존치시킨 국회 법사위의 민법개정안이 여론의 비판을 받자 아예 『총선이후로 법처리를 미루자』고 합의했다. 성가신 법이니 일단 제쳐놓고 보자는 편리한 인식이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당초 입법을 졸속추진했던 법사위 의원들도 저마다 변명을 늘어놓았다. 『가족법 문제는 두부자르듯 단칼에 해결할 수 없으니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뒤늦은 「숙성론」에다, 『유림이 「할복하겠다」고까지 나서는데 총선을 앞둔 우리가 힘이 있겠느냐』는 푸념까지 곁들였다. 게다가 새로 정해야할 금지대상 근친혼의 범위에 대해 아직 충분한 여론수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거론했다.

그러나 동성동본 금혼규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2년여 전인 97년 7월에 일찌감치 내려졌고, 정부측 개정안은 지난해 11월16일에 나왔다. 그런데도 법사위는 올초반 공청회와 법안심사소위를 한번씩 연 뒤 서랍속에 치워두었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지난달 24, 26일에야 다시 소위를 열어 허겁지겁 개정안을 냈던 것. 여론수렴할 시간이 모자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얘기다. 한 법사위 의원은 『사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시점』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당장 표 떨어질 것이 뻔하기때문에 아무리 위헌요소가 있더라도 외면하고 갈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민법 개정안 처리과정에는 이처럼 민생에 대한 무관심, 표 지상주의 등 우리 정치의 고질적 문제가 그대로 함축돼 있다. 무엇보다 법치(法治)의 원칙을 세워야 할 국회가 스스로 법 질서를 경시해버린 점이 가장 거슬리는 대목이다.

정치부 이태희 기자

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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