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지막 성탄절. 올해만큼은 예년처럼 흥청망청 속에 덧없이 보내기 보다는 아기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경건하게 맞아야 하지 않을까. 이 땅에 예수의 복음이 전파된 기독교 성지(聖地)를 찾아 보는 것이 그 방법중 하나. 신자가 아니더라도 역사기행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당고개성지(서울 용산구 신계동)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1893년 기해박해 당시 10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으로 9명의 성인이 탄생한 의미깊은 곳이다.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였던 최양업신부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의 일화가 유명하다.
마리아는 마카오로 유학을 떠난 최신부를 제외한 네 아이와 함께 옥에 갇혔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일시 배교(背敎)를 하고 출옥한 마리아는 아이들을 도망가게 하고 혼자 옥에 돌아온다.
동냥으로 살아가던 자식들은 부모가 처형되기 전 날 사형집행인을 찾아가 고통스럽지 않게 한 칼에 베어줄 것을 부탁하고 이에 감동한 집행인은 그 약속을 지켰다. 용산전자상가의 나진상가 17동과 욱천고가차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왼쪽 길을 따라 150㎙쯤 오르면 된다. (02)707-0933
■구산성지(경기 하남시 망월1동)
김성우 안토니오를 비롯해 많은 성인이 탄생한 유서깊은 유적지이다. 방송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장소로 자주 사용될만큼 주변 경관이 좋은 곳으로 연인이나 가족나들이 장소로도 좋다. 특히 성지를 둘러싸고 있는 구산마을은 성인의 후손들을 비롯한 가톨릭교인 120여세대 500여명이 150여년간 신앙공동체 생활을 해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지는 구산성당에서 도보로 15분 남짓 거리에 조성돼 있다. 사람 키보다 약간 높은 담장이 둘러쳐진 성지에는 노랗게 물든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가운데 돌계단이 있는 둔덕 위에 성모자상이 자리잡고 있다. 중부고속도로 하일IC에서 미사리조정경기장 방향으로 3.4㎞ 지점에 있다. (0347)792-8540
■미리내성지(경기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미리내는 은하수를 뜻하는 순 우리말.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한 신자들이 이 곳에 교우촌을 형성했다. 밤이면 집집마다 흘러나오는 불빛이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신부와 그의 어머니 우르술라, 김신부에게 사제서품을 준 페레올주교의 묘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72년부터 본격적인 성역화작업이 시작돼 89년에 103위 성인기념 대성전이 완성됐다. 기념성당과 예수의 박해를 묘사한 15점의 청동조각물이 있는 「십자가의 길」, 「게쎄마니동산」, 성모성당등 시설과 전시물을 돌아보는 데에만 2~3시간이 걸린다.
주변에 5개의 크고 작은 저수지가 둘러싸고 있어 넉넉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영동고속도로 용인IC에서 빠져 45번국도를 타고 송전리-이동저수지를 거치면 이정표가 나온다. (0344)674-1251
■해미읍성(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전통가옥이 보존돼 있는 사적공원으로 유명한 곳.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자리잡았던 이 곳에서는 충청지역의 수많은 신자들이 잡혀와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1866년에는 무려 1,000여명이 이 곳에서 순교했다.
성내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을 가두었던 감옥터가 남아있고 교인들을 매달아 고문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있다. 성문 밖 도로변에는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평택-삽교천-당진-운산을 거쳐 647본 지방도로를 타면 도착한다. 서울서 3시간30분 정도 소요. (0455)688-4116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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