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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토함산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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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토함산을 오르며

입력
1999.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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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 모닝 콜 전화소리가 단잠을 깨운다. 가벼운 행장을 차리고 숙소를 떠난 것이 6시 정각. 아직 사위는 캄캄한 어둠과 적막이다. 불국사 정문 옆으로 난 등산로에 접어들고부터는 가로등 불빛이 없어져 발길이 더디다. 한참을 지나니 어둠에 눈이 익어 어렴풋이 길을 짐작하겠다. 머리 위 별숲 속에 북두칠성이 반짝인다. 아직 별이 그렇게 많고, 빛이 밝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별빛이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는 것도.■혼자 걷는 밤길의 무서움도 참 오랜만의 경험이다. 신작로처럼 넓은 등산로에 사나운 짐승이 나올 리 없건만 가랑닢 밟는 소리가 조금만 커도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겁쟁이가 우습다. 등산객을 만나면 반가울 줄 알았더니, 무서운 마음이 앞서는 것은 또 왜일까. 마주 오는 등산객을 향해 쏟아내는 헛기침이 상대를 해칠 의사가 없음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사람이 산짐승보다 무섭다는 옛사람들의 말도 떠올랐다.

■숙소를 나선지 50여분만에 토함산 정상에 닿는다. 해발 745㎙ 산상의 새벽바람은 맵지만,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여명을 내려다보는 감동으로 참을 만하였다. 어둠이 걷혀갈수록 반대편 발 아래 서라벌 땅의 불빛은 스러져 갔다. 일출관광을 온 한 무리 여학생들의 재재거림도 자연의 소리처럼 들려 싫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7시가 되지 않았다고 석굴암 가는 길을 철책으로 막고 있는 「제도」가 탈진세(脫塵世)의 꿈을 비웃는다.

■석굴암의 해는 7시 20분에 떠올랐다. 먼 동해의 구름밭을 헤집고 치솟는 빨간 불 덩어리는 어제도, 100년전에도, 1000년 전에도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욕심에 눈이 멀어 헐뜯고 시기하고 속이는 인간사처럼 덧없는 것이 또 있을까 싶었다. 불과 3~4분만에 해가 바다위로 떠올라 사위가 밝아지자 간밤의 숙취가 괴로워지기 시작하였다. 저 아래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겨울 주말새벽의 진세 벗어나기 몸부림은 2시간만에 끝나고 말았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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